21년 7월 다섯째 주

최악의 생일 주간

by Baker Lee

7월 26일 월요일


네이버 앱을 열자 상단에 케이크가 나오고 팡파르가 울리며 리본이 날렸다. 가입한 사이트에서 보내준 생일 쿠폰이 문자로 도착했다. 오늘은 내 생일이며 몸이 바쁜 월요일이기도 하다.


설의 손가락 끝이 벗겨졌다. 내가 한동안 앓았던 주부 습진이었다. 혹시나 다른 사람에게 옮길까 봐 고무장갑을 따로 써야 하나 설이 걱정했다. 무좀도 아니고 뭐 옮길까 싶어 걱정하지 말고 그냥 쓰라고 했다. 물 쓰는 걸 줄여야 한다고, 하나 마한 얘기를 했다. 물 쓰는 일을 줄일 수가 없는 위치인데 말이다.


이제는 박주부에 가까운 포토박이 정성스럽게 끓인 갈비찜으로 저녁을 먹고 큰 딸이 사 온 아이스크림 케이크로 생일을 맞이했다. 어제 생일 전야제 외식에서 현금 100만 원을 투척하더니 오늘은 5만 원권 100장을 돌돌 말아 고무줄에 묶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아이들은 ‘로맨틱 가이’라며 추켜세워주었다. 이제 생일이라는 것이 그다지 흥미 있는 나이도 아니고, 각자 알아서 좋아하는 걸 온라인 쇼핑으로 구입하는 것으로 챙겨 오던 생일이었는데, 갑자기 현금이 몰려오니 조금 생경했다. 아직 삽도 뜨지 않았지만 내년에는 새 집이 완성된다는 가정 하에, 집안에 새로 들일 가전제품을 구입하라는 돈이기도 했다. 케이크 촛불을 끄기 전, 소원을 빌라고 주문을 했고, 내가 비는 소원이 뭔지 안다는 듯, 꼭 그 소원은 이루어질 거라고 장담했다. 혹시나 ‘새집이 빨리 완성되었으면..’하는 소원이라고 생각했을까. 안타깝게도 내가 머릿속에 생각한 것은 ‘배낭여행’이었다. 어쨌든 소원은 이루어질 것이다. 언젠간, 꼭.


7월 27일 화요일


케이크를 만들어야 하는 날은 맘이 바쁘다. 조금 일찍 카페에 왔더니, 범과 설이 옥수수와 복숭아를 놓고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커피 머신 옆에는 다른 종류의 원두 봉투가 놓여있었다. 지난주부터 원두가 떨어져 가고 있었는데, 또 주말을 보내고 어제 주문을 한 모양이다.


종업원 최의 변명은 이러하다. 원두가 소비되는 주기에 따라 주문을 하고 있었는데, 요즘 그만큼 소비가 덜 되고 있었고, 주문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보니 금요일이고, 금요일에 주문하면 주말을 지나 월요일에 도착하게 되고, 주말 동안 박스에 담긴 원두가 택배차에 방치되면 그만큼 맛이 떨어지니 월요일에 주문을 한 것이고, 결국 주문하기 전에 남은 원두를 다 써버렸기 때문에 읍내에 하나뿐인 로스팅 가게에서 두배가 넘는 가격으로 한 봉지를 구입했지만, 거기 원두는 언제나 맛이 없어서 별로라고 한다. 주문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언제나 하는 이야기 패턴이다. 다행히 오전에 원두는 배달되었고, 그래서 맛이 그렇게나 없다는, 두 배 비싼 원두는 봉투에 다시 담겨 어딘가에 처박혔다.


담주에 저녁 약속이 생길 것 같아서 하루 저녁 마감을 해줄 수 있는지 민감독이 물었다. 영업시간은 밤 12시로 되어 있지만, 내가 저녁에 출근을 해야 한다면 그날만은 임시로 10시까지만 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밤 12시 마감은 꼭 지켜야만 하는 카페의 철칙이라며,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지켜왔던 룰이 깨지게 되니 꼭 12시까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그게 왜 꼭 지켜야 하는 룰인지 모르겠다고 했고,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면 2시간을 앞당겨서 마감을 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누구나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생길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 우리 카페는 일하는 사람이 많은 건데 그걸 왜 못 지키는지 의아해했다. 못 지키는 것이 아니라 왜 꼭 지켜야 하는지 모르겠으니, 12시 마감을 지키고 싶으면 10시에 와서 본인이 12시까지 있으라고 했다. 그랬더니 술을 마실 수도 있어서 그렇게는 할 수 없을 거 같은데, 그렇담 술도 먹을 수 없는 저녁 약속은 취소해야겠다며, 이제 술도 못 먹는 불쌍한 사람이라는 넋두리를 했다.


이 카페가 생기기 전, 종업원 최와 민감독이 운영했던 같은 이름의 카페가 있었다. 그때부터 오던 손님들을 ‘단골’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으며, 자신들의 단골을 위해 다시 똑같은 이름으로 카페를 열고자 해서 그렇게 하라고 허용은 했지만, 그게 본인들의 제2 카페처럼 인식하라고 한 허용은 아니었다. 분명 운영 주체가 다르고 형태가 다른데, 자신들이 해왔던 것을 자꾸 여기에 끌어다 맞추고자 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름을 똑같이 쓰라고 허용한 것이 문제의 시발점이 된 거 같다. 내가 생각하는 철칙이란, 커피가 떨어지기 전에 원두를 주문하고 쟁여둬야 하는 것이고, 테이블을 깨끗하게 하고 설거지를 깔끔하게 하고, 맛이 좋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기분은 아주 더러워졌으며 아마도 한동안 이 상태가 지속될 것이다.


오늘부터 8월 8일까지 카페는 10시까지 영업해야 하고 그 이후는 테이크아웃만 가능한, 신념을 깨는 행정명령이 떨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7월 28일 수요일


어제 만든 초콜릿 케이크를 진열하고 쿠키를 굽고 작년에 받았던 보건증을 다시 갱신하러 보건소를 갔다. 음식점 종사자들이 받아야 하는 검사이다. 벌써 1년이 넘어 다시 받아야 할 시기가 되었다. 다시 카페로 돌아오는 길, 그동안 모아 왔던 캔과 우유팩을 재활용하러 읍사무소를 갔다.


재활용품을 받는 간이 사무소에 종이 박스를 한가득 뒤에 실은 트럭이 있고, 분명 그 트럭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옷가지들을 재활용 테이블에 올려놓고 검사하는 사람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재활용품을 받아서 무게를 재고 포인트로 올려주는 직원은 옷의 경우 입을 수 있는, 그러니까 말 그대로 재활용이 가능한 옷만 받을 수 있는데, 아저씨가 가져온 옷들은 아마도 의류 재활용 박스에 있었던, 사람들이 버리다시피 한 옷들이었던 모양이다. 직원은 여기가 쓰레기 버리는 곳이 아니라 재활용 장소라는 것을 계속 상기시키고 있지만, 씨알도 안 먹히는 얘기를 하고 있다며 아저씨는 성질을 부리고 있었다. 내가 가져간 캔 310원어치를 영수증으로 쓰며 직원은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억장이 무너지고 기분이 더러워지는 건 어디서나 마찬가지이다.

우유팩은 사무소 재활용 부서에서 휴지 한 개와 종량제 봉투 하나로 바꿨다. 읍사무소에도 큰딸처럼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7월 29일 목요일


어제부터 범은 휴가를 갔고, 카페에는 오전에 두 명의 손님 외에는 오지 않았다. 단골 장이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무슨 내용이었는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은 감기고, 계속 졸리기만 하다. 나른한 여름, 꼼짝도 하기 싫은 몸, 어수선한 마음. 어딜 가지 않아도 내 몸이 휴가를 원하고 있다. ‘벌써 7월이 끝나가다니’와 ‘아직도 7월이라니’가 충돌하는 상황.


7월 30일 금요일


수정사항이 반영된 설계도를 가지고 황선생이 왔다. 이제 거의 확정이 되었다. 화장실 부분 조금 수정하고 다음에는 벽체가 올라간 모형을 볼 수 있겠다.


재가 와서 둘째 고등학교 견학 가서 들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재의 첫째 딸과 나의 둘째가 같은 나이, 같은 초등학교 출신이라 서로의 관심사가 비슷하다. 규모가 크던 작던 농어촌학교는 대부분 비슷하다. 정시보다는 수시로 대학을 가는 비율이 높다는 것. 워낙 아이들 학력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대도시 아이들과 정시로는 승부를 볼 수가 없다. 정시가 공정한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공정하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플로리스트 신과 스콘을 좋아하는 의, 종업원 최가 예비 사회적 기업을 준비하고 있다. 법인을 어떤 것을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7월 31일 토요일


카페 문을 열자마자 초등교사 단이 물놀이 가는 옷차림을 한 아이들과 함께 왔다. 황선생과 미팅을 가졌다. 우리가 집을 지는 것과 동시에 단의 집도 지어질 예정이다. 두 가족 모두 설계를 하고 있으며 이제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다.


단골장이 달달한 바닐라라테 커피를 사주었고, 숙과 정이 차를 마시러 들렀으며, 유치원 교사 진이 동료 2명과 함께 와서 적립된 포인트로 음료를 마셨다. 3일째 매일 출근 중인 오가 팔빙수 셰이크와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리고 스콘을 차례로 맛보며 열공하였다. 학교 밖 청소년 윤은 청소년지원센터에서 주는 쿠폰으로 바닐라라테를 매번 먹었었는데, 요즘 꽂힌 음료 수박 스무디를 본인 돈을 내고 먹었다.


화장실을 잠깐 다녀온 사이, 민감독이 까만 옷을 입고 아이들과 함께 등장했다. 요양원에 계시던 시어머니가 오늘 돌아가셨단다. 장례를 치르러 먼 도시로 곧 떠나야 했다. 밤 12시까지 영업을 고수하더니 피치 못할 사정이 이렇게 금방 생길 줄이야. 단축 영업은 어쩔 수 없게 되었고, 그나마 설이 휴일 초과 근무를 해준다고 하여 10시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부터 3일 동안 저녁 10시까지 문을 열 것이며, 나와 설이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일을 해야 한다.


몸 군데군데 좁쌀 같은 두드러기가 났다. 땀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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