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귤청을 만들다
8월 9일 월요일
책 두 권을 빌려갔던 라가 책을 반납하고 차를 마시고 갔다. 도서관에 근무하는 정이 도서관 휴관일이라 한가롭게 카페에 들렀다.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지난주 토요일에 줬던 팥빙수 셰이크에 아이스크림을 빼먹었다는 것을 고백했다. 지금 먹고 있는 수박 스무디에 아이스크림을 올려달라며 농담을 했다. 아이스크림이 빠진 줄 몰랐다고. 굳이 말하지 않았다면 정작 마신 사람은 몰랐을 일이었군.
작년 이맘때 청귤청을 만들었다. 1년이 지나 다시 청귤의 계절이 왔다. 일거리가 하나 늘어나는 거라 내키지는 않지만 그래도 같이 도와줄 설이 있으니 청귤을 주문했다.
8월 10일 화요일
길 건너 현수막 광고회사 맹이 지인들과 함께 왔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 끝마다 ‘ㅆㅂ’가 붙었다. 거친 말버릇 가진 그는 특이하게 에스프레소를 시켜서 먹었는데, 나갈 때 맛이 아주 좋다고 얘기를 해주었다. 칭찬을 해도 말속에 욕이 섞여 있는 것 같아 기분은 그저 그랬다.
쌍화차와 아이스크림, 팥빙수 셰이크를 맛본 2층 문중 사무실 어르신들은 새로운 음료를 원했다. 어른 입맛에는 물론 달달한 것이 딱이다. 설이 달달한 다방커피 같은 바닐라 라테를 추천했다. 거동이 불편하신 물주 어른이 바닐라 라테를 마셨고, 아주 흡족해하였다. 이제 한동안 이 메뉴로 갈 것 같다.
8월 11일 수요일
설이 지난 주말 근무로 오늘 두 번째 대체 휴일을 쓴다. 오늘 쉰다는 것을 어제 들었는데 그럴 줄 알았으면 하루 늦게 청귤을 시킬 걸 그랬다. 월요일에 주문한 청귤이 오늘 도착을 했다. 어쩔 수 없이 하루 보내고 내일 작업을 해야겠다.
황선생과 마지막 평면 도면 이야기를 나누었다. 크게 보면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 덩어리 크기를 시공하기 편하게 맞췄다. 덕분에 화장실 크기가 조금 커졌고 현관이 넓어졌다. 화장실 앞에 작은 파우더 공간을 넣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제 평면 도면은 마무리하기로 했다.
2층 사무실 어르신들이 와서 어제 맛본 새 메뉴를 주문했다. 달달한 맛을 거부할 수가 없나 보다.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는 팔 앙금에 물기가 있으니 팥을 폐기 처분하겠다고 저녁에 종업원이 카톡을 보냈다. 먹어보고 판단을 했다고 하는데, 만든 팥이라 그런지 버리는 게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있다면 그냥 놔두라고 하고 내가 다 먹어버려야겠다고 다짐했다. 팥 좋아하는 1인으로서 버려지는 팥은 너무 아깝다.
8월 12일 목요일
세탁기를 돌리는데, 세탁기 물이 하수구로 빠지지 못해 화장실에 물이 가득했다. 4년 전부터 매년 한 번씩 하수구가 막히고 있었는데 또 그 주기가 돌아온 것이다. 벽 시멘트가 조금씩 떨어지고 벌레들이 들어오고 전기가 누전되는 것도 큰 일이지만 이 집의 가장 큰 문제는 하수구가 자주 막힌다는 거다. 시기도 꼭 이맘때쯤 찾아온다. 1년만 있으면 새 집에 들어갈 수 있을 텐데, 결국 그 새를 못 참고 또 업자를 불러서 뚫어야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사실 업자라고 해봐야 전동으로 뚫는 큰 기계로 하수구를 쑤시는 건데, 그렇게 불러서 10여분 일을 하고는 15만 원을 받아간다.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일, 작년의 그 사람을 다시 불러 뚫었고, 15분 만에 15만 원을 지출했다. 더 이상 그 사람을 보고 싶지 않다.
배송 온 지 하루 지난 청귤을 청으로 담갔다. 오전 내에 끝내고자 열심히 둘이 썰었다. 설이 미리 가져온 큰 양푼 두 개와 카페에 있는 작은 양푼에 담고 설탕을 양에 맞춰 부었다. 오전 내내 청을 썰었더니 어깨는 뻐근했고, 카페 안은 청귤 냄새로 가득했다.
8월 13일 금요일
랩으로 싼 양푼 속 청귤청에 설탕이 완벽하게 녹아있었다. 설이 정말 잘, 많이 저은 덕에 설탕은 잘 녹았는데 너무 휘저어서 슬라이스 한 청귤 알맹이들이 다 떨어져 나갔다. 너덜너덜해졌다. 데코 하면 그렇게 예쁘지는 않겠다. 그 말을 했더니, 설이 신경이 쓰였나 보다. 괜한 말을 했나. 이미 벌어진 일이니 담에 더 예쁘게 담으면 되는 일인데.
다음 주 월요일이 대체공휴일이 되었다. 설과 범은 직원이므로 법정공휴일에 쉰다. 3일 동안 카페에 나오지 않게 되니 재료 준비를 해둬야 하는 설이 조금 바빠졌다. 폐기한 팥만큼 다시 또 준비를 했다.
문중 사무실 어른들이 방문했다.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은 바닐라 라테 맛에 빠졌다. 하지만 이틀 전 함께 맛본 어르신들은 다시 팥빙수 셰이크로 회귀하였다. 카페 전화가 울렸다. 카페 바로 앞에 온 손님이었는데, 자신이 강아지를 안고 있어서 들어오기가 좀 그렇다며 아이스 아메리카를 주문했다. 유리문 너머 앞 포대기에 강아지를 감싼 젊은 처자가 있었다. 주문한 음료를 주고 계산을 하고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어르신들은 자기 애를 키울 나이에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면서 혀를 끌끌 찼다. 강아지는 그저 마당을 지키는 용도이며 크게 키워서 잡아먹던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을 것이다.
지난번 포토박이 행사 촬영을 갔었던 고등학교 교장이 가족사진을 찍었다. 4명 모두 예술가들이라 전체적인 가족 기운이 밝았다. 그동안 찍었던 가족 촬영 중 가장 비싸게 결재를 하고 갔다. 고를 사진 컷 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언니가 새로운 세무서와 계약을 하게 되었다며 우리 회사도 함께 넘길지 물었다. 아직까지 알아보지 않고 있었는데 그렇게 해주면 나야 땡큐다.
8월 14일 토요일
확진자가 2 천명 대가 되고 방역 4단계가 다시 연장되었다. 3일간의 휴일 첫날, 다들 집에서 ‘꼼짝 마’를 하고 했다. 카페는 한가했고, 어제 주문받은 홀케이크를 만들며 오전을 보냈다.
황선생이 입체 도면을 가져왔고, 다음 주 화요일부터 근처 작업장에서 같이 일을 하자고 포토박에게 이야기했다. 당분간 포토 박은 일용잡부 박이 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