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1차 접종
8월 16일 월요일
광복절이 일요일이어서 오늘은 대체 휴일. 직원들은 쉬고 대표인 민감독과 이사 직함을 가진 나는 나와서 일을 한다. 택배 보낼 게 있어서 택배회사에 갔더니, ‘오늘은 원래 쉬는 날’이라면서도 주문을 받았다. 쉬는 날이지만 쉬지 못하는 곳은 어디에나 있다. 한산한 오전, 나는 스콘 반죽을 만들고 민감독은 자몽을 사다가 청을 담갔다.
작년 카페 공사를 시작할 즈음 인근 거리에 새로운 카페 하나가 오픈했다. 브라운 색의 매장 대문, 조명과 간판이 도시 추세에 맞게 꽤 세련되어 보여서, 인테리어 분위기와 커피 맛을 보기 위해 그곳에 가본 적이 있다. 학교 근처이고 주변에 밥집도 있는, 걸어 다니다가 들어가기 좋은 중심권에 있어서 유동인구가 많았다. 이후 카페는 젊은 주인 부부의 감각과 이곳 젊은이들의 욕구와 잘 맞은 덕에 꽤나 핫한 커피 매장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신 맛이 조금 도는 커피맛이 나랑 맞지 않아서 이후에는 먹어본 적이 없지만, 에그타르트나 스콘 종류를 함께 선보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있어서 가끔 소식을 보는데, 오늘 빵과 음료 재료가 떨어져서 일찍 문을 닫는다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당일 만든 빵이 모두 팔려나가다니, 이런 구석에 있는 카페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날 만들어 그날 파는 날이 과연 여기에도 올까.
8월 17일 화요일
대체휴일이 끝나고 읍내의 중학교 두 군데가 개학을 했다. 일용잡부 박이 된 포토 박은 황선생을 따라 작은 집을 짓는 현장으로 아침 일찍 갔다.
늘 그렇듯이, 하루의 시작은 케이크 시트를 만드는 것. 반죽기가 있지만, 따뜻한 물로 중탕을 하면서 계란을 휘핑해야 해서 핸드믹서를 이용한다. 개인 소유로 가지고 있던 핸드믹서로 하다가 반죽기 날이 하나밖에 없어서 필요할 때마다 씻어서 써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핸드믹서를 하나 더 장만했었다. 여유분의 반죽기 날이 있는 것으로. 그런데 오늘 휘핑하다가 반죽기 날 2개가 끊어졌다. 반죽기 기둥에 십자 모양으로 꽃봉오리를 만들듯이 이어져온 부분이 꼭하고 절단이 나버린 것이다. 10년 가까이 써 온 핸드믹서 날은 아직도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이제 산지 몇 달 되지도 않은 것이 날아가다니. 처음 봤을 때 두께가 조금 얇다 싶더니만.
재봉 회원 재의 남편 생일이라며 티라미수 케이크를 주문했다. 오늘 만들어 둔 케이크 시트가 있어 다행이다. 냉동실에 하나 남은 마스카포네 치즈를 해동시키려고 냉장고에 넣어두고 퇴근했다.
팔토시인 줄 알고 작업장에 챙겨갔는데, 가서 보니 머리띠 두 개였다며, 오롯이 8월의 뜨거운 햇살을 받은 두 팔뚝이 시뻘게져서 포토박이 돌아왔다. 지금 건축 현장의 건축주는 서울대를 나온 어떤 집안의 70대 장손이다. 그는 집안에서 모두의 받들어 모심을 당한 장남에게 흔한, 전형적인 안하무인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땡볕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뜨끈한 차를 내오고 갓 찐 밤호박을 주는, 다른 사람의 처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그런 사람 말이다.
큰딸 단기 아르바이트가 끝났다. 본인이 스스로 사주겠다고 얘기하기도 전에 각자 뭘 사달라고 요구하는 가족 전통에 따라 곧 통장에 찍힐 아르바이트비로 뭘 사달라고 할까 하는 즐거운 고민을 시작했다.
8월 18일 수요일
지난주에 이어 막내딸 유치 두 개를 빼러 치과에 가야 했지만, 어제 주문받은 티라미수를 만드는 일에 신경이 쓰여서 나 대신 큰딸을 보호자 삼아 들려 보냈다.
아줌마 손님 4명이 와서 새로 회원가입을 하고 아메리카노 2잔과 대추 밀크티, 오미자차를 주문했다. 음료를 주고 조금 있으니 회원 가입한 미가 와서 빈 잔을 하나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미자가 맛이 없다, 대추차도 별로다 라며 눈을 찡그렸다. 다른 사람이 시킨 커피나 나눠마셔야겠다며 빈 잔을 들고 자리로 갔다. 솔직하게 대놓고 얘기하는 게 나쁘진 않다. 어떤 부분은 귀담아들을 충고가 섞여있는 것도 있으며 맛에 대해 다르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래서, 어찌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침묵을 하는 대다수 사람들이 다 음료가 맘에 든 건 아닐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맛없다는 사람들 입맛에 맞출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가볍게 흘려듣고 넘기면 좋겠는데, 앙금이 오래가는 나 같은 스타일은 그 말이 아마도 두고두고 생각이 날 것 같다. 그렇다고 뭐 뾰족한 수가 있어서 해결할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월요일에 민감독은 구입한 자몽의 반만 청으로 담아놓았고, 나머지 자몽이 그대로 냉장고에 있었다. 팔 재료가 떨어질 때쯤 만드는 민감독의 습관에 비추어볼 때, 자몽이 시들시들해질 때까지 냉장고에 그대로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혹시나 시간이 난다면 설이 담아주면 좋겠다고 했다. 점심 이후 즉시 자리를 잡고 자몽청 만들기에 돌입한 설. 처음 하는 작업이라 요령이 없어서 속도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드문드문 손님들이 몰려오고 그럴 때마다 하던 일을 멈춰야 하니, 내가 퇴근할 시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작업이 끝나지 않았다. 카운터를 맡아줄 누군가 있어야 편하게 일을 할 텐데,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갈 수가 없어서 조금 늦게까지 카페에 머물렀다. 나중에는 손님을 응대하는 설을 대신해 나머지 자몽 알갱이를 내가 손질하고 있었다! 이런 그림을 원했던 건 아니었는데.
8월 19일 목요일
드디어 1차 백신 접종을 맞는 날이다. 10시에 예약한 병원에 가니 함께 예약한 사람들이 북적였다. 문진을 작성하고 ‘모더나’라고 쓰여있는 목걸이 팻말을 목에 걸고 차례를 기다려 의사를 만났다. 나에 대한 확인 절차 후, 어떤 부작용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이야기를 듣고 주사실로 가서 간호사의 간단한 브리핑을 듣고 백신을 맞았다. 조금 걱정한 건 사실이었는데, 베테랑 간호사라서 그런지 주사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주사 맞은 왼쪽 팔에 묵직한 근육통이 있었다. 혹시나 많이 아프면 일찍 집에 들어갈까 했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다행스럽게도.
점심을 먹은 손님들이 몰리는 12시 10분 무렵, 소나기가 무섭게 내렸다. 카페에 있던 2팀의 손님들이 빗속을 뚫고 나간 후, 빗줄기가 다시 잠잠해졌다. 일기 예보 상으로 다음 주까지 이런 국지성 소나기가 내릴 거라고 한다.
8월 20일 금요일
팔이 조금 더 아파온다. 건드리면 엄청 아픈데, 실수로 문에 부딪히고 벽에 문대니 엄청난 고통이 몰려왔다.
담주 개학을 해서 기숙사로 들어가야 하는 둘째 딸이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코로나 검사를 하러 보건소에 갔다. 야외에 마련된 검사소에서 인적사항을 적고 줄 서서 검사를 받으라고 한 후, 지난번에 장티푸스 검사받은 후 받지 못한 결과 증명서를 찾으러 보건소 건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온도 측정을 하고 인증을 하고 영수증을 주고 증명서를 발급받고 나왔는데, 그 5분 남짓 걸린 시간 동안 둘째 딸은 아직도 앞사람을 기다리며 검사를 못 받고 있었다. 바로 앞에서 검사받던 사람은 엄마와 아들이었는데, 약간의 정신지체가 있던 아들이 검사원의 면봉이 코에 들어가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계속 거부하며 코를 가리고 있었던 거다. 검사자나 보호자나 다 여자들이라 성인 남자가 코를 가리고 ‘무서워’를 외치며 검사를 거부하는 걸 제압할 수가 없었다. 다시 그 소동을 보며 또 5분이 지났지만, 엄마가 아들을 쥐어패며 때려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자 검사를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속상한 엄마의 마음이 물이 되어 똑똑 떨어져 내 발을 적셨다.
8월 21일 토요일
비가 오는 오전, 카페 뒷문이 열려있었다. 어제 설이 행주를 빨아서 빨래 틀에 널어두고 문 잠그는 걸 잊었나 보다. 빨래 틀에 널어놨던 행주들은 바람에 다 날아가 바닥에서 비를 맞고 있었다. 다시 빨래를 거둬들여 빨고 카페 안에 널어두었다.
여전히 팔 통증이 조금 있어서 이쯤 되면 하던 케이크 시트 만들기는 잠깐 쉬어야겠다 맘먹었다. 오늘은 카페 일만 보는 것으로.
큰딸은 읍내에 새로 생긴 마라탕으로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러 떠났고, 단의 설계안을 마무리 지으러 황선생이 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고, 점심으로 피자를 시켜 그들과 함께 나눠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