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8월 넷째 주

장마 그리고 확진자들

by Baker Lee

8월 23일 월요일


초등학교가 개학하는 날이다. 이제 2021년의 절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전에 쓰던 핸드믹서를 꺼냈다. 새것을 쓰다가 믹서 날이 두 개 망가지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셈이다. 두 가지를 사용해보고 다시 돌아와 보니 차이점이 느껴졌다. 믹서 날 자체가 조금 두툼하고 적당하고 묵직한 빠르기로 소음도 적은 편이었다. 너무 빨리 돌지 않아서 믹서 날과 그릇의 마찰이 적기 때문에 망가질 일이 거의 없던 것 같았다. 뭐든 새 거가, 뭐든 빠르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닌 것이다.


읍내에서 에스프레소 맛이 가장 좋다고 했던 손님이 계속 카페를 찾고 있다. 이 에스프레소 단골이 주로 마시는 방법은 에스프레소 한 잔과 시원한 물 한 잔을 받아서 나름의 공식으로 섞어서 마시는 것이다. 에스프레소 전용 잔이 따로 있지만, 아포가토 주문 때 커피를 담는 알라딘 램프처럼 생긴 잔에 에스프레소를 담아 준다. 섞어서 따르기 쉬우라고. 함께 오는 주변 사람들이 그가 까탈스럽다고 얘기를 했지만, 까탈스러움이 한 곳에 꽂히면 이렇게 단골이 되는 법이다. 반대로 그런 까탈함이 입맛에 안 맞는 메뉴에 꽂히면 사정없이 맛없다고 얘기해버리기도 한다.

가을장마가 이어지고 오늘은 태풍이 몰려온다는 예보가 들린다. 여름이 끝나가고 메뉴를 정리해야 할 때. 이번 시즌 마지막 수박 한 통을 사서 씨를 빼놓았다.


큰딸 아르바이트비의 첫 지출 품목은 텔레비전이 되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선물을 뭘로 할까 고민 중이었는데, 때마침 할아버지 방 텔레비전이 돌아가시고 말았다. 로켓 배송으로 주문을 마쳤다.


8월 24일 화요일


어제부터 거리두기 3단계가 2주 연장되었다. 접종자 포함하여 4인까지만 손님으로 받을 수 있다. 태풍 영향으로 비가 오고 흐린 하루, 이래저래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 아이들 방학이 끝나고 카페 방학이 시작된 느낌이다.


250만 원의 희망지원자금이 들어왔다. 통장 잔고에 숨통이 조금 열렸다. 아주 조금.


8월 25일 수요일


쿠키 반죽을 하는 날이다. 4배 반죽을 3번 하기로 결정하고 만든 반죽을 스튜디오 쪽에 있는 작은 냉동고에 넣으려고 갔는데, 냉동고가 잘 안 닫혀 있었는지 성에가 너무 많이 끼어있었다. 게다가 누가 먹다 냉장고에 넣어둔 물만두는 냉장고 밖에 꺼내진 채 하루가 지난 상태였다. 어제 설이 먹태를 소분하여 이곳 냉동고에 넣으면서 만두를 꺼내고 정리를 하다가 다시 넣는 걸 잊어버렸고, 문을 잘 안 닫아놔서 물기가 그대로 얼어붙은 것이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냉동고 서랍을 모두 꺼내 닦고 그전부터 붙어있던 성에를 모두 제거하였다. 다시 깔끔해졌다.


8월 26일 목요일


아이들이 개학을 하면서 재봉 모임도 다시 시작되었다. 여름 내내 얼굴을 볼 수 없었던 회원들이라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고 점심을 거하게 먹었다. 장마가 지나고 다시 햇볕이 쨍쨍해져 카페에도 우울한 분위기가 가시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월화 수채화 모임이 오늘도 그림을 그리러 카페로 왔다. 옛 수채화 모임 회원이었던 나이 드신 어르신이 오랜만에 와서 그림 그리는 회원들에게 맥주를 한 잔씩 사주었다.


지난주에 이어 계속 집 공사 잡부일을 하는 포토 박은 긴팔을 입고 가면서 쓸데없이 팔토시를 챙겼고, 대신 얼굴 가리개를 놓고 가는 바람에 오늘은 얼굴이 벌겋게 익어서 돌아왔다.


8월 27일 금요일


다음 주 월요일에 개강하는 큰딸이 오전 8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일이 있어 조금 늦게 출근한 설이 아침 청소를 하고 있을 때 단골 장이 왔다. 손님이 아니라 가족처럼 생각한다면서 바 의자에 앉아있는 장을 두고 대걸레로 바닥을 열심히 닦았다. 월수금 요일을 정하고 바닥을 닦고 있다지만, 아무튼 너무 자주 일을 하는 것 같아 1주일에 한 번만 해도 된다고 했다. 단골 장은 유리 세정제나 물티슈의 유해한 화학성분을 이야기하며 유리를 자주 닦는 건 본인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며 거들었다. 어느 카페나 음식점을 가도 우리만큼 깨끗한 화장실은 없다고 자부한다.


오후 무렵, 읍내에서 1명, 내가 사는 면에서 1명, 총 두 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읍내 확진자가 하루에 5시간씩 머물렀던 사우나가 난리가 났고, 다른 지역에서 온 유흥업소 종사자가 확진이 된 면에서는 모든 면민이 다 검사를 받으라는 행정명령이 떨어졌다.


8월 28일 토요일


읍내 확진자가 다녀간 사우나 때문에 엄마랑 사우나를 갔다 왔다는 막내딸 친구는 어제 조퇴를 하고 검사를 받으러 갔다. 네덜란드로 유학을 가기 위해 모든 준비를 마치고 30일 날 비행기표를 예매한 단골장의 막내딸은 하필 그 사우나를 다녀와서 항공권을 취소하고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면 소재지 확진자 관련 12명이 추가 확진되었다는 재난 문자가 도착했다. 이렇게 많은 확진자가 나온 건 처음이다. 한동안 사람들이 몸을 사리고 돌아다니지 않을 것 같다. 대도시의 확진자들이 이제 지방 곳곳으로 퍼지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면민 모두 검사를 받아야 해서 우리 가족도 모두 검사를 받았다. 보건소 앞 임시 선별 검사소에는 한 명의 검진자가 있던 지난주와 다르게 세 곳의 검사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앞서 검사를 받은 사람들이 모두 재채기를 하고 기침을 해대는 것을 보니, 코 검사가 많이 아픈 것 같았다. 먼저 검사를 받은 둘째 딸은 지난주에 받았던 검사와 다르게 너무 아프다며 동생을 걱정했다. 내 차례 검사에서 눈물이 찔끔 났다. 막내딸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많은 사람을 검사해야 하는 비상사태로 인해, 숙련되지 않은 검사자가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집에 가는 내내 나는 머리가 아프고 둘째 딸은 귀가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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