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7월 5일 월요일
장마가 계속되고 있다. 범이 벌어진 비상구 문틀을 실리콘으로 마감한 덕분에 비가 새지 않았다. 황선생과 만나 정식 설계 계약을 맺고 원하는 집의 모양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곧 1차, 2차 설계안이 마련되고 결정의 순간까지 여러 번 고쳐질 것이다.
점심을 먹고 온 설이 갑자기 배 아픔을 호소했다. 속이 메슥거리고 토할 것 같은 느낌에 병원을 가기 위해 남편을 불렀다. 남편이 온 와중, 카페 라테 용 우유가 없는 걸 발견하고 설에게 우유를 주문해 줄 것을 부탁했다. 나도 참, 생각이 없지, 그 아픈 사람한테 주문 전화를 부탁하다니. 우유 대리점 신 사장이 전화를 안 받아서 결국 주문은 실패했고, 설이 병원에 간 것을 알릴 겸 종업원 최에게 전화를 해서 우유 주문도 덧붙였다. 늘 간략한 점심으로 때우는 중인데, 오늘 먹은 스콘 한 조각과 옥수수 한 개가 내 뱃속도 그렁그렁하게 만들었다.
한동안 중단했던 수채화 모임이 다시 시작되었다. 월요일인 오늘 모였지만, 담주부터는 화요일에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7월 6일 화요일
폭우가 쏟아졌다. 집 바로 위 밭에서 내려오는 모든 물은 배수관을 통과해서 논도랑으로 흘러가도록 되어 있는데, 배수관 입구에 있던 철망이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나뭇가지들과 온갖 쓰레기가 함께 흘러들어 가 물 통로를 막아버렸다. 빠져나가지 못한 물줄기가 우리 집 마당으로 넘어 들어와서 정화조 수위를 높이니, 화장실 변기에서 넘칠락 말락 하는 뽀글뽀글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포토박이 빗속에서 삽으로 구멍을 파 통로를 뚫었다. 집 안으로 똥물이 넘치는 걸 막았다.
지역 일대가 폭우 피해로 방송마다 등장하는 바람에, 서울에 있는 부모님들의 안부전화가 이어졌다. 서울이 큰 것처럼 여기도 엄청 넓은 지역이라는 걸 그들은 자주 잊는다.
어쨌든 피해가 많이 난 건 사실이다. 가는 도로가 침수된 곳도 있어서 조금 천천히 출근을 했다. 동네에서는 축사에서 쏟아진 토사물들이 거리를 뒤덮은 게 제일 심한 피해였던 거 같다. 그 길을 달려오느라 차가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집과 마찬가지로 카페도 습기를 흠뻑 머금었다. 어제 주문 들어온 스콘 20개를 만들어놓고 비가 계속 내려서 일찍 퇴근했다.
7월 7일 수요일
지난주 수요일, 민감독이 근처 시에 있는 카페 두 군데로 선진지 견학을 가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직원들의 복지 차원인지, 학습 차원인지 알 수 없지만, 함께 바람 좀 쐬러 가자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설은 그곳이 사회적 기업인지, 출발하는 시간이 조금 애매하지 않은지, 하는 의견을 냈는데, 그런 그에게 민감독은 그냥 가면 될 것을 왜 그렇게 토를 다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옆에서 듣기에도 조금 불편한 말이었다. 결국 내가 일이 생겨서 지난주에는 가지 못하고 1주일 뒤로 미루었는데,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이렇게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말이다.
어제라도 언질을 주었으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을 텐데, 어쨌든 약속한 건 그대로 진행이 되었다. 케이크를 만들려고 준비한 시트는 그대로 냉장고에 넣어두고 마지못해 같이 나섰다. 하지만 출발하려고 보니, 누구 차로 갈 것인지 결정도 안되어 있었다. 누구는 차 상태가 안 좋다 하고, 누구는 트럭이라 좀 그렇다 하고, 누구는 보험이 부부특약으로 되어 있다 하고(근데 그게 무슨 문제인지 지금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다) 그래서 운전을 너무 하기 싫어하는 내가 세 사람을 태우고 이 빗속을 왕복 2시간 넘는 거리를 운전하고 갈 수밖에 없었다. 준비한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갈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안 간다 했으면 가지도 못할 견학이었다.
1시간 넘게 운전하여 넓은 대지에 갤러리와 숙박시설과 카페가 함께 모여 있는 곳에 도착했다. 비가 쏟아졌다가 그쳤다가를 반복하는 사이, 4가지 음료를 시키고 조각 케이크 2개를 먹으며 이런저런 품평을 하고 다시 차를 타고 1시간 넘게 운전하여 오다가 읍내에 와서 늦은 점심으로 국수를 먹었다. 분명 다들 배가 고팠을 텐데 이렇게 식사시간을 제 때에 포함하지 않은 주먹구구 견학 스케줄은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
7월 8일 목요일
하루 전날 영수증 내역을 점검하는 건 내 오전 루틴 중 하나다. 전날 진열한 케이크가 제대로 잘 팔렸는지, 어떤 손님이 저녁에 다녀갔는지, 무슨 음료가 잘 팔렸는지 점검해 볼 수 있다. 어제 견학 간다고 오전에 카페를 나서는 바람에 체크를 못했다. 화요일 내역을 살펴보다가 스콘 20개 주문한 의가 포인트 결제만 하고 스콘 결제가 안된 걸 발견했다. 설의 실수였다. 나이 들 수록 잔소리를 줄여야 하는 걸 알면서도 또 잔소리를 너무 늘어놓았다. 내 노동력이 그냥 쓱싹 없어지는 거 같았다. 쏟아놓고 보니 설이 또 마음 상했을까 걱정이 되었다. 의가 적립해 둔 포인트로 계산을 마무리했다.
어제 주문 들어온 마카롱 60개를 계산할 때 설이 카드로 계산하기 전, 나에게 ‘맞죠?’라며 포스기 화면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계산할 때마다 무척 신경을 쓸 거 같다. 설의 빼빼 마른 몸이 더 꼬챙이가 되어가게 된다면 그건 내 탓일 수도..
포토 박이 다른 읍내 고등학교 정기 연주회 촬영을 가는 날이다. 서울에서 일하던 스타일 대로라면 이런 행사 촬영은 스튜디오 막내들이 하는 잡일 중의 하나였을텐데, 이젠 부려먹을 직원도 없는 처지에 카페는 매출도 안 나오니 포토 박은 눈 딱 감고 수락을 했다. 촬영 날이 다가올수록 하기 싫은 티를 팍팍 냈다. 작년 사진 강의를 들었던 회원 열을 불러서 함께 가자고 했다.
월요일에 급체를 했던 설이 체력 저하됨을 느끼고 개인 PT를 신청, 오늘 첫 강습을 받고 왔다. 스쿼트 여파로 설의 하체 근육이 뭉쳤다.
7월 9일 금요일
카페 내 잡다구리 한 물건들을 넣어두는 작은 창고 맞은편에 신에게 받은 오븐이 있다. 오븐이 없었을 때에는 거기에 빈 박스를 쌓아두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계속 치우곤 했다. 오븐이 자리 잡고 보니 택배 빈 상자를 쌓아두는 일이 조금 뜸했는데, 오늘 아침에 정리 안된 빈 박스가 놓여있는 걸 보았다. 1년 동안 쌓인 화가 잠깐 치밀었다. 단체 톡방에 사진을 찍어서 거기에 빈 박스를 놓지 말라고 말했다. 또 변명이 돌아왔다. 늘 하던 말, 깜빡 잊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다음에 해야지’ 하고 놔두면 잊어버린다고 날렸다. 그 말이 기분이 나빴는지, 자몽청이 떨어졌으니 자몽 사다가 청을 담가달라는 멘트가 날아왔다. 바쁘면 말고 라는 쨉과 함께. 그만 닥치고 내 일 좀 해달라는 말 같아서 기분이 더 더러워졌다.
7월 10일 토요일
설이 출근하지 않는 주말이라 오전 오픈을 하고 오랜만에 청소를 했다. 유리문 앞에 하루살이들이 한 떼가 모여서 죽어있었다. 우산꽂이대에도 떨어져 붙은 벌레들이 많아 물로 씻어내려 했으나, 손으로 박박 문질러야만 떨어질 거 같아 그만두었다. 테이블에 떨어진 벌레들을 바닥에 떨구고 바닥 전체를 청소기로 밀었다. 바쁘게 오픈 준비를 하는데 손님 도착. 가족들이 나들이 가는 와중에 문이 열린 걸 보고 들어온 듯하다. 오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차분하게 포스기 전원을 누르고 준비금을 적어놓고 커피 그라인더를 작동하여 밤새 쌓여있던 커피 분말을 담아 한두 잔 흘려보내고 주문한 커피를 만들었다.
행사 촬영했던 사진 후반 작업을 위해 포토박이 출근했다. 점심을 먹으러 나갔는데, 오늘따라 모든 식당에 사람들이 그득그득 가득 차서 깜짝 놀랐다고. 수도권이 점점 비상사태로 치닫고 있는 와중에 조금만 늦으면 어디 돌아다닐 수도 없게 생겼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조급하게 여행을 떠나온 건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30분 기다려 짜장면 먹고 온 건 오랜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