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작업대 자리 정돈
6월 21일 월요일
집에서 쓰던 오븐 수납장을 가져왔다. 현재 카페에서 쓰는 오븐 또한 내가 쓰던 것이니, 다시 자기 자리를 찾아간 것이다. 오븐이 있던 곳으로 믹서기 두 대를 이동했다. 이제 믹서기가 있던 자리가 비어서 음료 세팅하는 공간이 조금 넓어졌다.
첫 방문 손님이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에이드용으로 쇼케이스에 있는 탄산수를 보더니, 하나 사고 싶다고 했다. 재료용이라 팔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천 원만 받고 손님에게 건네주었는데 그녀가 캔 뚜껑을 열고 단번에 500ml를 마시고 빈 캔을 주었다! 탄산수 원샷은 처음 본다.
싱크대 밑에서 계속 물이 센다. 오픈할 때부터 문제였다. 요 며칠 바닥이 흥건했다. 수도 배관에서 정수기, 커피머신, 빙수기로 들어가는 공급선을 여기저기 연결을 해두었는데, 빙수기로 빼낸 연결부위가 문제였다. 종업원이 T자 연결관을 사 와서 고쳐보겠다고 얘기한 지가 한참이 지났는데 여전히 수리를 안 하고 있었다. 흥건한 바닥을 닦고 새는 연결 부위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아침 커피를 마시고 있던 단골장이 와서 함께 들여다보았다. 남자들이 왜 이걸 고치지 않는지 타박을 하면서.
손님이 다 가고 커피를 한 잔 마실까 해서 커피를 내리는데 갑자기 기계가 아픈 ‘웅’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게다가 물도 안 나왔다. 몇 번을 해도 안 되는 기계. 아는 사람을 불러야 했다. 10분 후 종업원이 와서 보니 머신으로 들어가는 수도가 잠가져 있었다. 단골장이 이것저것 돌려보다가 그걸 잠겄던 모양이다. 종업원이 온 김에 수도 새는 걸 언제 해결할 거냐고 재촉했더니, 바로 사 와서 새로 연결을 했다. 연결 호스를 바꾸긴 했지만, 그래도 완벽하게 고쳐지진 않았다. 이제는 10초에 한 번씩 똑! 떨어지는 수준. 줄줄 새던 거에 비하면 그나마 나아진 편.
쌍화차와 아이스크림을 즐겨먹는 위층 문중 할아버지 멤버들이 왔다. 주로 계산을 하는 A 할아버지가 ‘레지’를 불렀다. 사무실 관리하는 B 할아버지가 ‘레이디’라고 부른 거라며 황급히 단어를 바꿔주었다. 어쨌든 나와 설이 졸지에 다방 ’ 레지’가 되어 A 할아버지가 사주는 음료를 마셔야 했다. 반드시 본인들이 차지하고 있는 테이블로 가서 같이 앉은 채로.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시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역시나 그냥 심심한 어른들이 매일 모여서 한 사람씩 돌아가며 점심을 쏘고 있었다. 총멤버는 8명이고 한 끼 식사 요금으로 15만 원을 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8명이 15만 원을 점심에 쓴다는 것은 밥만 먹지는 않는다는 것. 먼 거리 횟집에 가서 약주도 한잔 걸치고 오는 것이다. A 할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한 관계로 민감독 아버지의 차를 자주 얻어 타고 있어서 보답하는 의미로 여기 카페로 와서 차를 마셔주고 있다. 주로 친분이 있는 민감독에게 음료를 자주 사주었는데, 오늘은 특별히 우리에게도 한 턱 쏘았다.
6월 22일 화요일
냉동실에 있는 사브레 쿠키 반죽이 하얀색만 남아있어서 초코 반죽을 만들었다. 노른자만 필요한 쿠키 반죽 덕분에 새로 달걀흰자를 모을 수 있게 되었다.
설이 야간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면 본인의 시간을 좀 줄이면서 그만큼 월급에서 떼어서 아르바이트생에게 주는 것도 좋겠다는 의견을 주었다. 시간을 얻고 돈을 반납하겠다는 것이다. 저녁을 온전히 책임지는 종업원 최 씨가 조금이나마 자유로운 시간 활용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정작 저녁 아르바이트생을 찾기는 하늘에 별따기라는 사실.
6월 23일 수요일
믹서기를 옮기고 보니 전선이 너무 지저분해서 상판에 구멍을 뚫어달라고 범에게 부탁했다. 구멍을 뚫고 선들을 아래로 빼서 꽂으니 아주 깔끔해졌다.
설이 팥빙수 재료들을 모두 넣고 믹서기에 갈아서 레드빈 셰이크를 만들었다. 아직 판매를 시작하지 않은 팥빙수의 다른 버전을 만들어본 셈이다. 시식을 했는데, 기존 팥빙수보다 훨씬 먹기도 좋고 만들기도 편했다. 사실 팥빙수 기계 사용과 뒤처리 문제 때문에 섣불리 시작을 못하고 있었는데, 이 음료라면 굳이 빙수 기계를 쓰지 않고도 쉽고 맛있는 음료가 가능하겠다. 무겁고 못생기고 자리만 차지하는 꼴 보기 싫은 빙수 기계를 다시 치워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이번 주말 열리는 옆동네 대안 장터에서 팔아볼까 하고 마카롱을 만들었는데, 영 모양이 나오지 않았다. 오늘까지 세 번째 만들고 있는데 계속 꼬끄 위쪽이 갈라지고 터졌다. 여름이 와서 그런 건지, 반죽이 문제인지, 머랭이 잘 안 만들어진 건지 도통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솜씨가 점점 없어진다.
6월 24일 목요일
고정멤버가 한 명 줄어든 채 재봉 모임이 이어지고 있다. 혹시나 한 명이라도 빠지면 둘이 앉아 바느질을 해야 할 판이다. 수다 떨 아줌마가 필요하다.
손님들에게 음료를 가져다주는 것을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했더니, 재봉 회원 조가 진동벨을 쓰라고 했다. 종업원 최가 중고로 사둔 진동벨이 있긴 하다. 뭐 얼마나 손님이 많다고 진동벨까지 갖춰놓아야 하나 싶어서 구석에 처박아두었는데, 일일이 부르지 않아도 되니 그걸 활용해도 나쁘지는 않겠다. 막대기처럼 생긴 구닥다리 중고 진동벨에는 엔제리너스 로고가 박혀있고 엔제리너스 음료 사진이 붙어있다. 음료 사진은 카페 명함으로 대체가 가능할 텐데, 플라스틱에 새겨져 있는 카페 이름은 바꿀 수가 없다. 뭔가 스티커를 붙여서 가려야만 사용할 수 있겠다.
6월 25일 금요일
수박 스무디가 잘 팔린다. 시원한 여름 메뉴로 자리를 잡았다. 오후 장사를 하는 종업원이 수박 담아놓은 비닐을 일회용으로 해놓았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설이 수박 한 통을 썰어서 씨를 다 빼고 무게를 재서 재활용 가능한 지퍼백에 넣은 후 냉동실에 차곡차곡 얼려놓은 원재료를 가지고 음료를 만들게 되는데, ‘재활용 가능한 지퍼백’에 넣었기 때문에 지퍼백을 씻어서 잘 말려놔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는 얘기다. 1회용 비닐이라면 뜯어서 재료를 넣고 쓰레기통에 넣으면 간단하게 끝날 일이겠지만. 알게 모르게 1회용 사용이 많아서 많은 쓰레기가 나오는 카페지만, 조금이라도 1회용을 줄여보고자 하는 설의 노력에 토는 달지 말아야 한다. 계속 불편함을 감수해보자고 했다.
예비 사회적 기업과 사회적 기업들을 점검하는 주간이었다. 어제 이곳에도 평가자들과 민감독이 만났다. 평가자 중 한 명이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인증 준비 작업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민감독은 현재 기업 자체의 영업 이익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 사회적 기업의 전환은 아직 생각할 수가 없다고 했더니, 그럼 이미 올해 계획 안에 있는 인증을 위한 작업들을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거냐며 벌점을 주었다고 한다. 사회적 기업으로 가는 길목에 있긴 하지만 올해 안에는 힘들다는 얘기였는데, 뭔가 벌점을 찾는 사람들에게 딱 걸릴 만한 이야기로 던져졌으니, 그들이 먹잇감을 낚듯이 잡아채간 느낌이다.
6월 26일 토요일
만들어놓은 마카롱 모양이 카페에서 팔기에는 너무 못생긴 탓에, 오늘 열리는 옆동네 장터에서 팔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제대로 모양이 안 나온 마카롱은 저렴한 맛에 사 먹는 장터 꼬마 손님들에게는 딱이다. 사실 모양이 이쁘지 않은 것뿐이지, 맛이 다른 건 아니니까. 양이 너무 적어서 초코머핀도 한 판 구워서 가져가야 했다.
양이 적어서 그런지 1시간 반 만에 다 팔았다. 장꾼들끼리 서로 사주는 맛이 있기 때문에 김장아찌, 떡볶이, 꿀떡 등등 이것저것 사 먹고 장을 보다 보니 손에 쥔 돈은 별로 없다. 그저 못생긴 마카롱을 처분했다는 기쁨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