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X
6월 7일 월요일
오늘로 세 번째 본다. 미스터리 한 그를.
양 쪽에 날개처럼 보라색 띠가 있는 분홍색 모자를 쓴 그는 알록달록한 꽃무늬 점퍼를 입고 비슷한 색감의 몸빼바지를 입었다. 항상 똑같은 차림이고 주문하는 음료 또한 똑같은 녹차 아이스이다. 분명 몇 번 왔으므로 앞으로도 올 것 같으니 평소 같으면 음료 10% 할인되고 5% 적립되는 회원가입을 권유했을 텐데, 왠지 그에게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제값을 다 받은 음료를 구석진 자리에 앉은 그에게 서빙을 한다. 출입문 근처 테이블에 있던 스포츠클럽 카탈로그를 읽던 그는 이제 책장에 있는 책을 골라 읽기 시작한다.
점심이 지난 시간,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온다. 자리가 하나 둘 차기 시작하자, 그는 구석자리에서 남은 음료 잔과 물 잔을 가지고 입구 쪽 테이블로 옮긴다. 옆 건물 사장 맹과 친구 3명이 자리를 잡고 수다를 떤다.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그가 사라진다. 남아있는 음료가 없으므로 테이블을 정리한다. 그러다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그가 다시 그곳에 앉아 있다. 분명 간 줄 알고 자리를 치웠는데 다시 앉아서 뚫어지게 앞 테이블 수다 떠는 네 남자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조금 섬뜩하다.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테이블에 한 손을 올리고 비스듬히 앉아 그들을 노려보듯 바라본다. 수다는 끊이지 않고 그녀도 움직이지 않는다. 부담스러워 그 모습을 애써 보지 않는다. 한순간 다시 보니 또 그가 사라졌다. 이곳저곳 카페 안을 둘러보는 나를 보고 설이 혹시 ‘그’를 찾는지 묻는다. 설도 그가 무척이나 이상했던 모양이다. 수다 4인방 남자들이 ‘그’가 누군지 물어본다. 왜 자기들을 계속 바라보고 있는지 불쾌해한다. 마침내 수다 4인방은 그를 미친 X라고 결론을 짓는다.
6월 8일 화요일
예비 사회적 기업에게 시설 장비 지원해주는 사업을 올 초 신청을 하고 실사 심사를 받았고 오늘 결과가 나왔다. 영상제작 관련 컴퓨터와 외장하드만 지원이 결정되었고, 사진 촬영 관련 노트북과 카페 관련 커피머신, 그라인더 그리고 베이킹 관련 오븐이 제외되었다. 최대 2천만 원을 지원해주는데 그에 맞춰서 최대 금액으로 지원서를 제출했지만, 최종 승인된 지원금액은 600만 원이 되었다. 만약 지원서 대로 2천만 원을 지원받았다면 자부담 20%가 있으니, 400만 원은 통장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돈이 있을 리 없으니 600만 원만 받게 된 건 한편으론 잘된 일이다. 이제 600만 원을 지원받으려면 120만 원은 가지고 있어야 하고, 잘하면 그 정도는 마련할 수 있겠다는 결론. 점검하러 나온 실사팀들이 사업에 대해서 뭘 알겠나 싶어 무시했는데, 그래도 생각은 제대로 박혀 있는 사람들이었나 보다. 투자할 곳과 하지 말아야 할 곳을 잘 알고 있다.
6월 9일 수요일
절약을 위한 몸부림. 하나, 아무도 없는 화장실 불 끄기. 둘, 우유팩을 씻어 말려 평평하게 잘라 모아 읍사무소에 가서 포인트로 받기. 셋, 몇몇 지인들에게 테이크아웃 캐리어를 모아 달라고 부탁, 혹은 지인들에게 케이크 상자도 갖다 달라 부탁. 넷, 쓸데없는 전원 꺼두기. 다섯, 재료가 덜 들어가는 레시피 찾아 바꾸기. 여섯, 이면지 활용하기.
6월 10일 목요일
바느질 모임 중, 뭔가를 꼬매고 있다가 케이크 시트가 다 구워진 소리가 들려 오븐에 가서 빵을 꺼내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 하던 일을 하려고 하다가 천장을 향해 솟아있던 바늘에 오른쪽 새끼손가락 세 번째 마디 부근을 푹 찔렸다. 금세 바늘을 빼내고 피가 조금 나고 말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부근이 쑤시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고 다시 보니 검붉은 색이 넓게 퍼져있었다.
바느질하다 보면 찔리는 건 다반사이지만, 이렇게 멍이 든 것처럼 색깔이 올라오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갑자기 온갖 상상력이 나래를 폈다. 파상풍인가, 그러면 근육이 마비가 오고 몸을 못 쓰게 되는 건가. 걱정되는 마음에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이도 저도 확신을 못하는 말을 했다. 바늘에 찔렸다고 파상풍이 될리는 없지만, 이렇게 환자가 불안해하니 파상풍 주사를 맞으라고 할 수도 있지만, 파상풍 주사는 3만 원이나 하니 맞으라고 하기도 그렇고 안 맞으라고 하기도 못하고, 덧나지 말라고 항생제 주사로 맞는 것도 괜찮은데 만약 파상풍일 경우 항생제로는 절대 치료할 수가 없다는,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았다. 그렇담, 항생제 주사를 맞으면 이 붓기가 금방 괜찮아지는지 물어봤으나, 그 또한 자신도 언제 어떻게 괜찮아진다고 확신을 할 수 없단다. 뭔가 찜찜한 이런 진료라니. 어쩔 수 없이 항생제 주사를 맞고 항생제 약과 연고를 처방받았다. 저녁이 되자 붉은색이 더 짙어졌다.
팥빙수 판매를 위해 설이 팥소를 만들었다. 포토 박은 읍내 서점 리모델링을 하고 있는 황선생을 도와 일당 받는 잡부로 공사일을 시작했다. 새로운 직업 도전이다.
6월 11일 금요일
어제 만든 팥소로 빙수를 만들어 시식을 했다. 옛날 빙수 스타일로, 얼음에다가 콩가루를 잔뜩 뿌리고 팥을 올리고 아이스크림 한 덩어리를 추가했다. 팥이 달지 않게 잘 만들어져서 맛이 좋았다. 혹시나 더 달달한 맛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연유를 조금 추가하면 될 거 같다.
포토박이 찍은 음료 사진들로 설이 작업을 하여 A4 사이즈로 만들었다. 카페 프린터로 뽑아보니 색감이 좋지 않아 좋은 프린터를 가진 조에게 어제 부탁을 해서 받았다. 내가 보기에는 아주 깔끔하게 나온 것 같은데, 해상도가 떨어진다고 민감독이 태클을 걸어왔다.
6월 12일 토요일
지난번과 같은 옷을 입은 미스터리 X가 오늘은 까만 봉지를 들고 아침에 들어왔다. 역시나 주문은 아이스 녹차. 나에게 먹으라고 찐 감자를 주었다. 들고 있던 까만 봉지에서 나온 감자였다. 배가 몹시도 불렀지만 큰 감자 하나를 아이스커피와 함께 먹었다. 그는 두 시간 가까이 앉아있다가 홀연히 사라졌다.
딸 생일잔치 때 쓸 치즈케이크를 예약한 조가 와서 만들어 둔 케이크를 찾아갔고, 주말이면 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단이 왔으며, 유통업을 하는 황이 와서 커피와 치즈 케이크를 먹고 갔다. 느릿느릿 흘러가는 토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