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에 힘쓰다
5월 31일 월요일
어수선한 월요일이다. 정수기 물을 물병에 받다가 물이 넘쳐버렸고, 카운터 테이블에 있던 시럽병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먼 테이블 근처까지 조각이 흩어지고 바닥은 끈적끈적해졌다.
오랜만에 카페에 온 포토박에게 카페 메뉴 촬영을 의뢰했다. 메뉴판을 다시 재정비해보라고 설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이런저런 이미지를 사용해서 샘플을 만들다 보니 직접 찍어보자 했다. 포토 스튜디오까지 있는 카페임에도 제대로 된 메뉴 사진이 없는 건 좀 아이러니하다. 사진을 걸어둘 만한 장소는 없긴 한데, 그래도 추천하는 음료 정도는 이미지가 들어가면 좋을 거 같았다.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실천하지 못하다가 설의 추진으로 성사가 되었다고나 할까. 새롭게 선보일 수박주스와 홍차 밀크티만 찍으려다, 이왕 카메라를 꺼낸 김에 다른 수제 음료도 찍어보았다.
이번 주 목요일 십여 명의 골프 회원 단체 사진 예약이 들어왔다.
6월 1일 화요일
두 직원의 지원금을 받기 위한 서류 작업을 주말부터 계속하는 중이다. 드디어 설의 서류는 모두 제출 완료하였고, 범의 지원서류는 종업원에게 부탁해두었다.
집을 어디다 지을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끝난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이야기를 듣고 온 포토 박은 다시 생각이 원점으로 돌아왔다.
기존 집을 허물고 지을 경우, 공사하는 동안 살 집을 마련해둬야 하고 물건도 치워야 하니 금전적인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 만약 밭에다 농가주택을 새롭게 지을 경우 그런 부차적인 번거로움은 사라진다는 장점이 있다. 집을 팔 생각도 있지만, 안 팔릴 경우 1가구 2 주택이 되어 골치가 아프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새집을 지을 때까지 기존 집이 팔리지 않는다면 등기를 말소해버리고 철거하면 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듣고 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공무원에게 다시 한번 확인해봐야겠다.
어제 촬영한 음료 사진은 포토샵을 거쳐 완성되었다. 설이 알아서 만들면 좋은데, 기껏 좋은 장비를 써서 멋지게 사진을 찍었는데 아마추어인 본인이 작업하면 안 될 거 같다고, 그나마 포토샵을 아는 민감독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민감독에게 공이 넘어갔다는 것은 그 결과물이 언제 나오게 될지 알 수 없어졌다는 말이나 같다. 얼른 해 달라고 푸시를 하지 않으면 작업을 언제 할지 알 수 없는 슬픈 예감.
6월 2일 수요일
읍사무소에서 재활용품을 수거하고 포인트나 현금으로 바꿔준다는 전단지를 본 적이 있다. 집에 모아두었던 헌 옷을 가지고 가보았다. 너무 낡은 몇몇 옷들을 제외하고 입을 만한 나머지 옷들의 무게를 재서 포인트로 적립해주었다. 그렇게 포인트를 주는 재활용품들 중에는 종이팩과 알루미늄 캔이 있었다. 카페에서 매번 나오는 우유팩과 캔을 돈 주고 사온 비닐종이 넣어서 재활용차가 수거해가는 날에 길바닥에 놓을 것이 아니라, 깨끗이 씻어 말려서 여기다 갖다 주면 쓸데없는 비닐 소비도 줄이고 환경도 보호하고 돈도 챙길 수가 있는 것이었다! 대부분 귀찮아서 안 하는 일. 카페 손님이 차고 넘치는 것도 아니니 설과 내가 조금 노력하면 너끈히 할 수 있겠다. 그동안 쌓아둔 우유팩을 깨끗이 씻어 말리고 잘라두었다.
카페 오픈 때 종업원이 구입해둔 팥빙수 기계가 있다. 한두 번 테스트 삼아 해보더니, 도저히 잘 안되고 일손이 많이 간다는 이유로 팥빙수 메뉴를 포기했었다. 기계가 문제인지 다룬 사람이 문제인지 알 길이 없으나, 열정 가득 직원 설이 기계를 한번 작동해보고자 했다. 크고 무거운 기계라, 쓰지 않을 거면 한쪽으로 치워놓자고 해서 구석에 방치해 두었는데, 둘이 힘을 합쳐 다시 원래 자리로 복구시켰다. 전원과 다른 기타 장치 연결은 종업원에게 부탁하라 하고 일찍 퇴근했다.
6월 3일 목요일
1시 조금 넘어 골프회원들이 속속 들어왔다. 총 17명의 아줌마들의 모임. 종업원과 설과 내가 17잔의 음료를 만들고 스튜디오에서는 포토박이 조명과 자리를 세팅하고 골프회원들은 테이블 세 곳을 차지하고 소리를 높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딱 한 장 짜리 모임 사진을 찍는 거라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1시간 남짓 카페 공간이 초토화되는 느낌이었다. 유기견을 키우며 산책을 하던 카페 회원 임이 마침 골프 모임 회원이기도 했다. 자신의 반려견과 함께 사진을 찍었음 하는 이야기를 했다. 조만간 개와 함께 프로필 사진을 찍는 첫 번째 손님이 될 수도 있겠다.
골프회원들이 오기 바로 전, 팥빙수 기계를 연결하고 테스트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작년에는 뭐가 문제였는지 알 길이 없으나 기계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얼음도 잘 갈렸다고 한다. 문제는 주변에 너무 많이 얼음이 튄다는 것. 가뜩이나 나무 상판이라 물기에 약한데 더 썩어나가게 생겼다. 그 모습을 인내심 갖고 잘 지켜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6월 4일 금요일
자다가 목이 따끔했다. 모기가 물었나 싶어 손으로 밀쳐냈다. 좀 지나서 오른쪽 다리 발목 위가 또 따끔했다. 불길한 예감으로 불을 켜보니 침대 위를 퉁퉁한 지네가 기어가고 있었다. 기겁을 하고 집게로 잡아다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다. 새벽 0시 30분이었다. 그러고 나니 잠이 안 왔다.
시골에 내려와 살면서 처음 지네를 봤던 날이 생생하다. 미싱을 한참 하던 때, 창문이 유난히도 많았던 집에 커튼을 만들어 달겠다고 재봉을 돌리던 날이었다. 열심히 재봉질을 하는데, 시야 왼쪽으로 뭔가 기다란 것이 바닥을 훑고 지나갔다. 검붉고 다리 많고 통통한 것. 봄에서 여름으로 지나갈 때 특히 많이 나타나는, 지금은 의례적인 일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그놈은 섬뜩하다. 발견하는 즉시 잡으려고 항상 집게를 걸어두고 있고, 되도록 바닥에서는 자고 싶지 않아 침대를 놓았는데, 어째서 침대까지 올라와서 나를 물고 가는 것인가. 더 이상 침대도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지네에 물리면 기절을 하고 물린 부위가 퉁퉁 부어오르는 체질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아침마다 화장실 청소를 하는 설. 마감 담당 종업원은 커피 찌꺼기 물을 남자 화장실 변기에 버리는데 항상 흔적이 남아 있어 아침에 보면 화장실이 깨끗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살살 버릴 수 없는지 아직 출근 전인 종업원을 대신해 민감독에게 물었다. 그동안 항상 내가 주장하던 것은 변기를 더럽힐 거면 차라리 밖에다가 버리자는 것이었고, 다시 한번 그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밖에 버리다가 남들에게 이상한 걸 버리는 카페로 소문날까 봐 꺼려진다는 희한한 논리가 돌아왔다. 그렇담 변기에 버리고 물이라도 한번 끼얹어서 흔적은 남기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환경을 생각한다면 재활용이라도 잘 말려서 제대로 버리던가, 매번 외근 나갈 때마다 담아가는 테이크아웃 용품을 절약해보던가 했으면 좋겠다.
오전 첫 손님은 카페를 처음 방문한 손님이었다. 회원 가입을 하고 커피 두 잔 주문하면서 언제 카페가 생겼는지 물었다.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가지고 나갔던 그가 다시 들어와 한 잔을 추가 주문하며. 원두를 뭘 쓰는지 물어보았다. 커피맛이 입맛에 아주 잘 맞았다면서. 그런 류의 질문은 지금까지 한두 번 들었던 거 같다.
단골 장이 왔다. 이제 설도 굳이 맞은편에 자리 잡고 서서 대화를 하지 않고 자기 일을 하면서 말을 받아주기 시작했다. 장이 질문한 덕분에 시숙님의 소개로 만나 결혼한 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포토박 사진 수업을 들었던 수강생들의 오프 모임이 저녁에 있었다. 작년 이맘때쯤, 활기차게 시작한 1기 수강생들은 수업이 끝나고 동아리 형태로 모여 사진에 대한 열정을 이어가고자 했으나, 포토박의 예견대로 모임은 흐지부지, 사진도 찍는 둥 마는 둥 되어버렸다. 모임도 없는데 모은 회비는 있으니, 같이 저녁이나 먹자는 만남이었다. 돈 내고 받는 수업만이 진짜 뭔가를 배울 수 있으며, 목표가 없는 동아리는 사장되어 갈 수밖에 없다는 걸 거듭 느끼게 해 주었다.
6월 5일 토요일
논에 물이 찰랑거리더니, 이제 점점 모내기한 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민감독은 이곳 출신 시인의 추모제 준비로 한창 바쁘다. 매년 하는 행사이며, 규모 또한 대동소이하다. 카페가 있는 사무실을 시작한 민감독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런 예술단체들이 하는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고 영상 촬영하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대부분 매년 비슷한 예산을 지원받고 비슷한 포맷으로 재미없게 열리는 게 특징. 행정업무에 약한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도움 준 사람에게 적절한 사례비를 주는 것을 꺼린다. 그게 뭐 돈 까지 주면서 시킬 일인가 하는 생각이다. 단체 스스로 깔끔하게 행사 마무리도 못하면서. 돈이 모여있으면 사람들은 욕심을 부린다. 자기가 아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서든 명목을 마련하여 돈을 주기를 원하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해서든 돈을 짜게 주며 일을 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과연 이런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민감독은 회사에 보탬이 되는 수익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나의 의문이다. 시간과 노동력은 있는 대로 들이면서 그만큼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늘 불안하다. 재정을 보는 사람 입장에서 말이다.
유리문 사방을 모루로 둘렀더니 출입문에 깔아 놓은 얇은 카펫과 맞물려서 문이 잘 밀리지 않는다. 유리문에 ‘당기세요’ ‘미세요’ 표지판을 프린트해서 코팅지로 붙였다. 들어오는 사람 50%만이라도 문을 당겼음 하는 바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