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5월 넷째 주

집념의 밀크티

by Baker Lee

5월 24일 월요일


어제 날짜로 카페를 오픈한 지 1년이 되었다. 이곳과 비슷한 시기에 개업한 카페에서는 1주년 기념품을 준비하고 인스타에 홍보도 하던데, 카페 직원 누구 하나 관심을 갖지 않은 탓에 아무런 이벤트 없이 흘러가버렸다. 나도 하루가 지나서 생각해보니 그렇다는 것을 알아버리지 않았던가.


나름 생각해보면 어제는 좀 특별한 일요일이었다. 6일을 출근하다 보니 일요일은 거의 집에서 하루 종일 넷플렉스와 시간을 보내는데, 1주년을 기념하고자 한 건 절대 아니었지만 설과 재와 함께 집 근처 카페로 카푸치노를 마시러 갔었다.

시골 마을에 새로 오픈한 카페가 있는데 이곳의 대표 메뉴가 거품이 가득 들어간 카푸치노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호기심에 다들 한 번씩은 가본다하길래 안 가본 사람끼리 가보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가 생긴 일요일 약속이었다.

거품 가득한 카푸치노 위에 살짝 매운맛이 도는 달달한 시나몬 가루가 가득 뿌려져 있었다. 거품을 뚫고 흘러나오는 커피를 다 먹고 나니 거품만 남아버렸다. 같이 마실 커피가 부족했다. 커피보다는 거품이 너무 많은 카푸치노였다.


종종 밀크티를 마셔본 재에게 설이 만들어놓은 밀크티 베이스를 맛보러 오라고 어제 말했더니 점심 지나 재가 찾아왔다. 아직 정식 메뉴는 아니므로 테스터로서 밀크티를 제공해주고 피드백을 받았다.


아침에 재와 함께 밀크티를 한번 맛보고, 오후에 커피가 들어간 밀크티를 또 맛본 통에 나의 하루치 카페인 섭취량을 초과해버렸다.


5월 25일 화요일


어제 새롭게 만든 밀크티 시럽으로 모닝 밀크티를 마셨다. 지금까지 맛본 시럽 중에 가장 괜찮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설은 계속 뭔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카페에 일을 하니 이곳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싶어서 수박 주스를 만들어보고 밀크티를 연구하고 달고나 스콘을 시도해보고 있다. 나의 입맛이나 설의 입맛이나 뭐 비슷비슷한 스타일인 것 같아서 대체로 만족스러운 레시피다 싶은데 그걸 종업원과 맞추는 게 좀 어려운 모양이다. 1년여 넘게 지켜본 결과, 종업원은 생각이 너무 많은 스타일이라 쉽게 뭔가를 결정 내리지 못한다. 고심을 많이 하고 게다가 이해할 수 없는 논리가 섞이면 의견을 맞추는 게 어렵다. 설은 직원의 입장이고 카페 업무 쪽은 종업원이 담당하는 것으로 얼추 맞춰지고 있으니 메뉴를 새로 개발하고 시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하는 게 자칫 월권행위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은근 고심하고 있다.


입구 유리문을 막는 문풍지를 주문했고 오늘 드디어 범의 도움으로 틈새를 막았다. 비싼 해충 잡기 기계를 살게 아니라 저렴하게 이걸 사서 막았어야 했는데. 돈 버리고 시간 버리다 보면 새로운 결론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게 다 멋모르고 오픈한 비용이다 싶다.


5월 26일 수요일


카페 청소기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범이 어제 발견했다. 청소기만큼은 좋은 걸 써보자 해서 다이슨을 구입했었는데, 가장 최대 파워로 작동할 때 끊김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오늘 설이 청소기 회사에 전화를 걸어 문제점을 알려주고 서비스 요원의 설명에 따라 점검을 하면서 해결했다. 롤러 귀퉁이에 가득 감겨있던 머리카락이 원인이었다. 설명서에 따르면 1달에 한번 필터도 청소해야 하고 바닥 롤러도 해체하여 먼지를 제거해야 하는데, 신경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지금까지 내가 딱 한번 청소한 것이 마지막이었던 것. 집안 살림이란 게 딱히 눈에 띄는 성과가 없지만 늘 살펴봐야 하는 것처럼 카페도 마찬가지다. 주부의 마음이 필요하다.


확진자가 나타난 주간이라 손님이 정말 뜸하다. 단골 장이 아침 매상을 올려주었다. 케이크 시트를 만드느라 바쁜 나와, 매장을 청소하고 설거지 하느라 분주한 설을 대신해서 범이 장의 수다 상대가 되어주었다. 설은 그 모습을 보고 ‘엮였다’고 표현했고 나는 ‘희생이 필요하다’고 코멘트해주었다.


일찍 퇴근하는 길, 돌아가는 차 안에서 집을 밭에다가 지을 것인가 지금 있는 집 자리에다 지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결론을 내렸다. 포토 박도 결정을 했다. 둘 다 지금 집 자리에 다시 짓는 걸로.


5월 27일 목요일


신입 멤버가 참석한 가운데 재봉 모임이 열렸다. 다음 주면 새 직원들 임금을 줘야 한다.


5월 28일 금요일


이번 주 내내 설이 밀크티 레시피에 매달리고 있다. 여러 가지 방법을 했으나 밀크티를 많이 맛보지 않은 나의 입맛에는 다 거기서 거기. 그중 제일 맘에 드는 레시피에 안착을 하고, 어떻게 하면 차 향을 높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그 향이라는 것이 인공 착향료 같은 조미료를 써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더 건강한 맛을 원한다면 ‘향’ 집착은 버려야 한다. 사람들은 건강을 생각하면서도 ‘향’이 있기를 바라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점심을 먹으러 간 설과 범이 오는 길에 다른 카페의 밀크티를 사 가지고 왔다. 모두들 조금씩 맛을 보며 품평회를 벌였다. 독특한 향이 있긴 한데, 난 여전히 설의 밀크티가 괜찮다.


저녁에는 셋째 딸 학년 학부모 모임을 했다. 거하게 저녁을 먹고, 요즘 읍내에 새로 오픈한 핫한 카페를 가보았다. 6월 1일이 정식 오픈일이고 지금은 가 오픈한 상태이다. 처음 카페 문을 열었을 때, 새 건물에서 나는 냄새로 사람들이 1차 혼미해졌고, 플렌 테리어 디저트 카페를 표방하는 곳답게 매장 안을 장식한 나무들이 모두 가짜라는 것에 2차 혼미해졌다고 전해 들었다. 냄새는 몇 달 있으면 빠질 것이고, 식물들은 가짜라 관리도 쉽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곳은 읍내 최대 규모이며 인스타용 사진발이 가능한 공간이기도 하다. 주변 카페에게는 위협적인 존재이다. 오픈 발이 있으니 몇 달은 그들에게 타격을 입힐 수도 있겠다. 우리도 조금 영향을 받고 있는지도.


5월 29일 토요일


끈질긴 설이 오늘 또 다른 카페의 밀크티를 사 가지고 왔다. 휴일에도 회사를 이렇게 자주 찾아오는 직원은 드물 것이다. 나는 절대 쉴 때 여기를 오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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