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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은 버스에서 내리며 옷깃을 꼭 여몄다. 3월에도 추위는 건재했다. 황급한 발걸음으로 도착한 곳은 청계천이 보이는 맥줏집이었다.
“오빠, 왜 이렇게 늦었어!” 정연이 그를 가장 먼저 반겼다. 곧이어 같은 스터디 조원이었던 이들이 다같이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미안, 일이 늦게 끝나서. 오랜만이네. 반갑다.” 재현이 환하게 웃으며 정연과 악수를 했다.
“형, 대리 단다고 회사에 너무 충성하는 거 아니에요? 쉬엄쉬엄 해요. 몸 상해!” 재현은 자리에 앉아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 그때 깜짝 놀랐잖아. 시험 100일도 안 남았는데 갑자기 저녁 먹다가 공부 그만두겠다고… 이 오빠 미쳤나 싶었어.” 정연이 꺼낸 이야기에 모두가 맞장구를 쳤다.
“한동안 형 없으니까 괜히 허전하더라고요.”
“오빠 그럼 그때, 이름 뭐더라, 맞다. 지훈 오빠랑 같이 때려친 거야? 그 오빠랑 연락해요? 갑자기 학원 안 나오더니 그 이후로는, 살아 있기는 한 건지…”
“응? 지훈이? 아, 그냥, 그때 지훈이 집안 사정이 안 좋아져서. 뭐 그랬대. 나도 연락은 안 돼.”
“안타깝다. 좀만 더 하면 될 것 같았는데. 그 오빠 항상 한두 문제 차이로 떨어졌다면서요.”
“좀만 더, 좀만 더. 그게 사람 피 말리게 하는 거야. 나도 말라 죽을까 봐 그만둔 거잖아. 아, 형 그만둘 때 저도 끌고 가지 그랬어요. 진작에 그만뒀으면 나도 더 좋은 회사 들어갔을 텐데.”
“그러고 보면 정연이가 진짜 대단하긴 해요. 초시에 붙어버리고. 결국에 우리 중에 공무원 된 사람은 정연이 밖에 없는 거잖아. 공무원 좋지? 진짜 부럽다. 나는 요즘 카페에 손님 없을 때마다 좀 더 버텨볼 걸 그랬나 생각 밖에 안 들어.”
“공무원도 공무원 나름대로 힘들어. 이렇게 말하면 더 얄미운가? 근데 정말이에요. 공무원 대대적으로 손보겠다고 맨날 뉴스에 나오잖아. 이번엔 진짜로 단단히 벼르고 있나 봐요.”
“그런 것 같더라. 우리 사촌 형도 잘 하다가 그만두고 노량진 가서 강사 하고 있어. 그런 분위기인데도 학원 등록하는 애들은 더 늘어난 것 같다던데.”
“아유, 나 공부하던 때 생각하니까 마음이 안 좋다. 얼마나 고생할까.”
“아 근데, 요즘에도 그런 사람이 많나 봐요. 왜 있잖아요. 공부하다가 미쳐버리는 사람들.”
“야, 공부하다가 안 미치는 사람이 어디 있냐? 나도 맨날 집 가면서 울고 소리 질렀어.”
“그 정도면 양호한 편이지. 그 형이 얘기해준 사람은 좀 섬뜩할 정도야. 우리같이 한 30대쯤 돼 보이는데, 대낮부터 노량진 길거리를 막 두리번두리번 하면서 돌아다녀. 그러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그 사람이 놓으라고 하면 자기 이상한 사람 아니라고 그래. 그러면서 그냥 한번, 자기 기운이 어떤지 봐 달라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