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초기는 출근하여 일을 하고, 퇴근 후 무사히 집에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그만큼 먹고 마시고 앉고 걷고, 그전까지는 너무도 당연하게 해내던 일들이 버겁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도대체 언제쯤 이 시기가 끝나는 걸까, 하루하루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중기의 기적이 찾아온다.
임신 중기. 입덧이 사라지면서 음식을 평범하게 먹을 수 있게 되고, 활동성도 안정화되는 시기. 심한 입덧을 경험한 사람들은 보상심리로 이때 폭식을 하면서 살이 많이 찌기도 한다고 들었다. 나는 먹는 욕구에 대한 보상보다 움직임에 대한 보상심리가 크게 작용했다. 임신 전에 개인 피티를 받으며 다이어트 겸 근육을 만들고 있었는데,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 한동안 수업을 중단했었다. 어찌나 몸이 근질거리던지. 입덧이 가라앉자마자 바로 선생님께 연락해서 개인 수업을 잡았다.
그런데 이럴 수가. 이전에는 중량을 30킬로로 세팅해서 3세트를 했는데, 5킬로로 한 세트 하는 것도 너무 벅차게 느껴졌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웨이트를 하다 보면 두피부터 땀이 차올랐다. 숨이 금방 차고, 내 몸이 더 이상은 무리라며 버티지 못했다. 내 몸을 이전처럼 쓸 수 없다는 걸 처음에는 인정하기 어려웠다.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았던 것 같다며, 선생님께 괜찮다고, 이틀 뒤 이어서 수업을 받았고, 결국 탈이 났다. 너무 억울했다. 그동안 쌓아온 노력이 무색할 만큼 이렇게 약해질 수 있는 건가. 헬스가 갑자기 재미없게 느껴졌다. 남은 피티 수업은 남편에게 모두 양도했다.
새로운 운동이 필요했다. 물색하던 중에 눈에 들어온 건 수영. 때 마침 수영하기 딱 좋은 더운 여름이라. 임산부는 강습에 제한이 있지만, 다행히 나는 배우지 않아도 이미 영법을 다 할 수 있는 상태라 강습이 필요하지 않았다. 내 컨디션에 맞추어 원하는 시간 대에 자유 수영을 하면 되는 상황. 기분 내어 수영 가방도 구입하고, 수영복도 새로 구입했다. 아직 배가 크게 나오지 않았지만, 검색해 보니 한 치수 정도는 크게 구입해야 막달까지 입을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선배 임산부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그 핑계를 대고 예쁜 수영복도 구입했다.
14주-15주만 해도 남들이 봤을 때 임산부라고 느껴지지 않는 체형이기에 자유롭게 수영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배는 점점 불러오기 시작했고, 22주가 지나자 은근한 시선이 따라오기 시작했다. 탈의실에서, 샤워실에서, 수영장에서 준비 체조를 하다 보면 누군가가 날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임산부가 수영하는 게 신기한가? 처음에는 내가 예민한가 보다, 남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으니 기분 탓이다, 했으나 내 배를 쳐다보고 있던 분과 눈이 마주치는 경험을 하고 나니 확신이 섰다. ‘임신으로 인해 볼록한 내 배를 쳐다보고 있다.’ 이 생각이 한 번 심어지니 수영 가는 게 조금 부담스러워졌다.
시선에서 나는 왜 불편함을 느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스스로 받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다들 무심코 빤히 쳐다볼 일이 없을 테니까. 예전에 영어 교과교사로 근무할 때, 함께 수업을 진행하는 외국인 강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한국에 와서 제일 불편한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던 것 같다. 그 친구는 'staring'이라고 대답했었다. 자신이 길가를 걸어갈 때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고. 자신이 친구들과 야외석에 앉아있을 때 지나가던 사람이 다시 뒤돌아서 자신을 한 번 더 보고 지나간 사람도 있다며, 그런 점들이 불편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 말에 담겨있던 불편함을 이제야 나도 동일하게 경험한다. 이제 26주에 진입하고 나니 배가 정말 많이 나오고 제법 무거워졌다. 산부인과 주치의 선생님께 언제까지 수영을 해도 될지 여쭤보았다. 우리 선생님으로 말하자면, 고민이 생길 때마다 해도 되나요 물어보면 다 된다고, 임산부라고 해서 일상에 제한이 생기는 건 아니라고, 아이가 나오면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니 지금 나만의 시간을 충분히 누리고, 오롯이 나를 위해 쓰라고 항상 한결같이 말씀하시는 분이다. 그런 분이, 처음으로 난색을 표하며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이제부터는 아이가 많이 크는 시기이기도 하고, 중기에서 후기로 접어드는 시기이니 경부가 살짝 벌어질 수도 있고, 수질의 문제를 확신할 수 없어서 염증이 생길 위험성도 있다고. 가능하면 빈도를 조금 줄이거나 다른 운동으로 대체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쳐다보는 시선에 부담을 느끼던 차에 선생님이 해준 말씀은 나로 하여금 다시 잊고 있던 헬스장으로 걸음을 가게 했다.
수영장과 다르게 헬스장에서는 따라다니는 시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게 되었을까? 장소만 달라졌을 뿐 시선은 여전하다. 특히 헬스장은 거울이 있어서 누군가 날 쳐다보고 있으면 그게 다 쉽게 보인다. 내 오해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어 마음이 더욱 불편하다.
운동하는 임산부, 그렇게 신기한가요?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려 해도, 시선에 자꾸 움츠러든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앞으로 배는 점점 더 불러올 것이고 커진 배는 트레이닝복 안에 숨길 수 없을 터인데. 제발 내 배를 향한 시선을 거두어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마음 편히 운동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