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목소리는 역시 많은 단서를 주지 못한다.
비바람이 망친 하루가 속상해
초저녁부터 잠이나 자자
배정받은 내 방 침대에 퍼질러 있었다.
다른 이들은 그런 불행한 날씨 속에서도
여행을 즐겼는지 아님 고달파했는지는 모르지만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기 전 들른 작은 분식집에서
먹은 떡볶이가 배에서 기분 나쁜 소리를 유발했고
그 소리를 덮어줄 사람들의 소음이 간절해질 즈음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저 잠잘 목적으로 찾은 나와 달리
여행 정보를 얻거나 짧은 우정을 쌓기 위해 이곳에 왔는지 거실에 모여 그들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음흉하게 엿들은 것은 아니었다.
우스운 변명을 하자면 배에서 나는 소리가
그 소음에 덮이는지 아닌지를 수시로 감시해야
했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기에 라디오 황금대 시간인
그때에 이어폰을 꽂고
제주에서의 라디오를 만끽할 수 있었다면
물론 훨씬 더 좋았을 거다.
들리는 목소리만으로 성은 물론이거니와
사람들의 나이가 대략 그려졌다.
그러다 가장 늦게 도착한 한 여행자.
그녀는 자기소개를 충분히 했으므로
내가 뭔가를 유추해낼 필요가 별로 없었다.
이삼십 대가 아닌 할머니이고,
이렇게 홀로 여행한지 꽤 되었다는 그녀.
스스로를 할머니라 칭하긴 했지만
혼자 바다 건너 제주까지 와 버스를 타고
여행을 한다는 점,
그리고 목소리만 들었을 때
우리 엄마 뻘이었던 과선배의 얼굴이
떠오른 점을 고려해 나는 그냥
기껏해야 육십 대 초반의 아줌마로 생각해버렸다.
그리고 말투가 주는 느낌이 왠지
뭐든 자신만의 자로 재고, 판단할 것 같아
별로 좋지 않은 사람일 거라 여기고 말았다.
나같이 어울림에 관심 없는 사람이 웬만하면 그렇듯
어제도 역시 무리에 끼지 않은 채 혼자서
전날과 달리 비행기 소리가 들리지 않던
제주에서의 둘째 밤을 보냈다.
그리고 오늘, 아침밥상 앞에서
어젯밤 이야기의 주인공들을 실제로 보게 됐다.
정말 그녀는 흰머리가 가득한 할머니였다.
첫 번째로 내가 그린 그림은 틀렸다.
비자림의 매력에 반해 제주여행에는 꼭 빼놓지 않는다는 그녀가
마침 오늘 간다기에 함께 비자림행 버스를 타기로 했다.
애초에, 바다만 질리게 보고 올 거라 계획했던 마음이 비바람 속 모든 걸 흡입할 듯한 바다를 보고서
뒤집어졌기 때문에 잔잔한 숲이 보고 싶어 졌다.
숙소에서 비자림까지 삼십 분도 더 넘게 달려도
계속 이어지는 숲길에
과연 제주도의 중심엔 한라산이 있구나 싶었다.
오전임에도 우리 둘과 버스기사를 제외하고는
텅 빈, 어두운 버스는 중심 어딘가로 깊이 빠지고 있었고
이미 어제 들은 그녀의 자기소개도 더 깊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더 많은 이야기는 내가 생각했던 그녀와
다른 면모도 보여주었고 그에 대한 색다름이
창 밖 나무들에 걸리고 있었다.
이윽고 비가 제법 내리는 비자림 속
축축한 좁은 길을 걸을 때
무거운 짐보다는 많은 생각이 내 몸을 눌렀다.
이 사람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의 제주도에 대한 이미지는
어두운 물빛에 그치고 말았을 거라는 감사함과,
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하지 말라는
수 없이 들은 교훈이
또 한번 실제로 나를 덮친 것에 대한 자조.
좁은 길 위에 조금은 느린 자신을 앞서가는 이들을 위해
우산을 기울이고 걸었던 그녀의 사소한 배려와
오늘의 흐린 비자림에 지난 여행의 맑은 비자림 속
나무 사이로 부서진 밝은 햇살이 작고 엷게 땅을 태우던
모습을 포갤 수 있는 풍부한 경험,
그 모든 게 감히 나에 비할 수 없음을 느꼈다.
그녀는 내가 볼 수 없는 것을 보았고
나는 또 역시 이 세상에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많았다.
한번 스치고 말 사람이라 평 하는데 열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고 유치한 변명을 할 수는 없다.
그럴 때는 차라리 백지상태로 남아 있자고 다짐을 한다.
건실한 몸 덕분이 아닌 매번 승리하는 생각 덕에 오랫동안
제주도 땅을 밟을 수 있는 그녀에 대해
어제 내가 그린 그림은 모두 틀렸다.
아마 같은 실수를 또 저지를지도 모르지만
오늘의 내게 깨달은 바 있게 해 준 그녀와
헤어질 때 손을 잡았다.
내게 또 이런 매력적이게 즉흥적인 일이 생길 수 있을지,
남은 일정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