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리니 May 09. 2024

로봇이냐 절개냐 그것이 문제로다

"수술방법 선택하기"

나 어릴 적 꽤나 인기 있던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바로 일요일 일요일밤에 [이휘재의 TV 인생극장]. 당시 잘생긴 개그맨의 등장으로도 큰 화제가 되었으나 무엇보다 주인공인 이휘재 씨가 A냐 B냐 자신의 선택에 따라 뒤바뀐 인생을 사는 모습을 모두 보여줘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한 프로겠다.


"그래! 결심했어!" 뚜두두 뚜두두 뚜두두 두뚜두두~


라는 유행어와 노래를 배경으로 완전히 다른 갈래로 바뀌는 인생을 면면히 보여주는데, 삶을 살아가며 한 가지 선택만 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두 가지 모두를 경험하게 해주는 점이 신선하고 또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다 보니 큰 인기를 끌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처럼 늘 선택하지 못한 것에 대한 갈증이 있기 마련이다. 허나 운명같이 다가온 갑상선암이라는 존재가 내 선택사항은 아닌 것도 억울하다 싶은데 아이러니하게 그 이후의 과정에 있어서는 너무 많은 선택들이 존재하고 있다.




갑상선 수술을 결정하고 또 한 가지 큰 결정이 필요해졌다. 바로 수술 방법. 초진을 마치고 담당 수간호사 선생님과의 면담을 통해 위의 상황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크게 갑상선암 수술은 보통 목을 통한 경부 절개 수술과 로봇 수술로 나누어지는데 다행히 교수님께서 두 수술 모두 가능하며 (선택지가 있는 게 내 성격상 다행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두 가지의 장단점이 다르고, 선택에 따라 수술일자가 달라지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결정하여 수술일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장의 결정은 어려운 사항이니 집에 가서 고민 후 수술일을 확정해 전화로 전달드리기로 하고 집에 오자마자 나의 검색 레이더를 바로 켰다. 나는 나름 정보력에는 자타공인 자신 있다 자부할 수 있는데 문제는 늘 그 이후에 있다. 바로 선. 택. 장. 애. 이걸 선택하자니 저게 좋아 보이고 저걸 선택하자니 이게 좋아 보이니 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두리뭉실 크게 까탈 피우지 않고 따르는 게 어찌 보면 살면서 좋은 점이 더 많았지만 이번 일은 그렇게 할 수 없지 않은가!


먼저 목 중앙을 5cm 정도 절개하는 재래식 수술은 간단하지만 목에 수술 흉터가 남고 이 흉터관리가 꽤나 번거로운 일이었다. 또한 목을 절개하며 성대 근처를 지나가기 때문에 목소리가 변할 수 있고 부갑상선 기능이 떨어질 수 있는 부작용을 감안해야 한다. 반면 로봇수술은 목에 흉터가 남지 않아 흉터관리에 신경을 안 써도 되지만 겨드랑이나 유방 등을 통해 먼 거리에서부터 갑상선까지 접근하기 때문에 수술 부위가 넓어 수술 시간과 입원 기간이 경부 절개술에 비해 길어질 수 있으며 수술비가 많이 든다는 것을 큰 단점으로 꼽았다.


아 어렵다 어려워. 갑상서 카페에서도 의견이 분분하고 각자 만족하는 방법이 다 다르니 결국 이게 바른 선택인지 아닌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직접 가보지 않고서는 100% 확신할 수 없다. 계속 컴퓨터를 쳐다보고 있으려니 답도 안 나오고 좀 쉬자 싶을 때 즈음... 무슨 바람이어서인지 무의식 중에 초록창에 "선택의 연속"이라는 단어를 쳤다. (아직도 왜 그 문구를 쳤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맨 상단에 있는 블로그를 클릭하니 주인장의 유려하고도 철학적인 글과 함께 그래서 우리가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단계를 거치면 좋다는 내용이 쓰여있다. 찬찬히 따라 읽어나갔다.


하나. 목표와 가치의 정립

두울. 정보 수집과 분석

세엣. 잠재적인 위험과 보상 평가

넷. 직관과 감정의 활용


아! 하나씩 순서에 맞춰 대입해 볼까?! 하나. 자신의 목표와 가치를 명확히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지, 어떤 가치를 생각하는지를 통해 우선순위를 설정한다. 내 목적은 단 하나 갑상선 암을 없애고 건강을 찾는 것. 두 가지 수술 방법에서 모두 가능하며 사실 미관상의 문제는 그다음 순위므로 이항목에서 따지면 로봇수술이 큰 메리트로 느껴지진 않는다. 전통수술 vs 로봇수술 0:0

둘째. 관련된 정보를 탐색하여 다양한 관점과 의견을 들어보는 것을 통해 선택의 영향과 가능성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역시 이미 자료를 통해 각각의 장단점을 찾은 내용이나, 두 수술 모두 장단점이 뚜렷하여 타인의 의견들이 내 선택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게 문제다. 단 내가 제일 신뢰하는 짝꿍의 의견으로는 목흉터만 고려하지 않는다면 목을 절개하는 것이 가장 수술 부위에 직접적이고 림프전이가 있을 경우에도 바로 추가 수술이 가능할 테니 본인은 전통수술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의견이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늘 객관적인 최 측근의 그럴듯한 논리에 전통수술 +1

셋째. 늘 위험과 보상을 동반하므로 잠재적인 위험을 신중하게 평가하고, 가능한 결과와 후속 조치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구 절개술의 경우 목소리와 부갑상선에 합병증이 있다고 하고, 로봇절개술의 경우 재활까지 크게 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이것으로 따졌을 때는 로봇절개술로 마음이 살짝 기울어졌다. '그럼 로봇절개술로 결정해 볼까?' 현재 스코어 1:1 그래! 마지막까지 한 번만 더 생각해 보자.

마지막 넷째. 때로는 직관과 감정도 선택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내면의 소리를 듣고 자신의 감정과 직감을 고려하자.... '겨드랑이를 통해 목까지 연결해 수술을 한다고!? 으....' 알지도 못하는 수술장면이 순간 머릿속 상상으로 그려지며 자연스례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래! 결심했어! 정통방식으로 가자!"


알아본 수많은 정보들이 무색해 질만큼 단순하게 마음을 정했다. 이번만큼은 내 직관과 감정을 믿어보자. 매 순간 선택과 의지의 연속이며 나의 선택의 결과로 살아오고 있는 지금의 삶 역시 내가 만든 삶이니 이 감정에 충실해 보기로 했다.


시간이 흘러 이 것이 자연스러운 운명일지 누가 알겠는가. 왠지 앞으로의 선택은 더 편해질 것 같은 좋은 기분이 든다.

이전 07화 멍 때림의 미학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