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영국 초등학교 KS 1 (3)

제3절 초등학생 파티문화

by 백지

1. 핼러윈: 유령과 호박, 그리고 블루이

10월이 되자 캔터베리 시내는 주황색과 검은색의 핼러윈 장식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상점과 카페 앞에는 크고 작은 잭 오 랜턴(Jack-o'-lantern)이 놓였고, 거리 곳곳에는 유령, 박쥐, 해골 모양의 장식들이 하나둘씩 등장했다. 백화점과 슈퍼마켓에는 핼러윈 관련 상품이 진열되었고, 폴튼스 놀이공원과 햄프턴 코트 궁전도 호박색 조명과 장식으로 핼러윈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는 매년 10월 31일에 열리는 핼러윈(Halloween)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였다. 고대 켈트족의‘사윈(Samhain)’ 축제에서 유래한 핼러윈은 원래 죽은 영혼을 쫓기 위해 가면을 쓰고 불을 밝히던 풍습에서 시작되었다. 오늘날에는 아이들이 귀엽고 무서운 분장을 하고 “Trick or Treat!”을 외치며 이웃집을 돌며 사탕을 받는 명절로 자리 잡았다.

서점도 이 분위기에 동참했다. 줄리아 도널슨의 《빗자루 타고 붕붕붕(Room on the Broom)》, 로알드 달의 《마녀들(The Witches)》 같은 핼러윈 테마 동화책이 서가에 눈에 띄게 진열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고른 책은 의외였다. 유령도 마녀도 아닌, 자석으로 꾸밀 수 있는 《블루이(Bluey)》였다. 호주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 블루이는 아빠, 엄마, 그리고 두 자매가 함께하는 따뜻한 일상을 그려낸 가족 이야기였다. 아이에게는 으스스한 핼러윈보다 가족과의 놀이가 담긴 이야기가 더 크게 와닿았던 것이라 짐작했다.

10월이 저물면서 서머타임(Daylight Saving Time)도 끝이 났다. 시계는 한 시간 뒤로 돌아갔고, 오후 4~5시만 되어도 어둠이 내려앉았다. 짧아진 낮 때문인지 거리는 더 조용해졌고, 그렇게 우리 가족의 첫 영국 핼러윈 밤이 다가왔다.

핼러윈 당일, 아이에게 이 문화를 직접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스파이더맨 잠옷을 입히고 해가 완전히 지기 전 캔터베리 시내로 나섰지만, 거리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우리가 상상했던 북적이는 축제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차분한 가을밤, 아직은 우리에게 낯선 문화이기에 느껴지는 거리감일지도 몰랐다.

실망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길가에 장식된 호박들 사이에서 아이가 용기를 내어 어느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떨리는 목소리로 “Trick or Treat!”을 외치자, 문이 열리고 집주인 부부가 환한 미소와 함께 사탕 한 줌을 건네주었다.

짧지만 인상 깊은 순간이었다.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운 문화 체험이었고, 아이에게는 손에 쥔 사탕 봉지만큼이나 기쁨이 가득한 경험이었다. “내년에는 좀 더 제대로 즐겨볼까?” 그런 다짐과 함께, 우리 가족의 첫 영국 핼러윈은 조용하지만 따뜻하게 지나갔다.




2. 크리스마스

1) 크리스마스 여행

영국에서, 그리고 유럽에서 본 크리스마스는 쉬는 연휴를 넘어 겨울을 밝히는 대축제였다. 주황색 핼러윈이 지나가자마자 거리와 상점들은 녹색과 빨강으로 물들며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준비를 서둘렀다. 우리 가족의 첫 번째 크리스마스는 강렬한 태양을 갈망하는 영국인들이 사랑한다는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 테네리페(Tenerife)에서 보내며 다른 계절의 온기를 만끽했다.

영국에서 맞이한 두 번째 크리스마스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자 향한 곳은 바로 산타의 마을, 핀란드 로바니에미(Rovaniemi)였다. 혹한에 대비해 여행 가방에 두꺼운 외투, 내복, 장갑, 신발, 목도리, 마스크까지 차곡차곡 쌓아 넣으며'진짜 겨울'을 준비하는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짐을 싸며 문득 작년 크리스마스가 떠올랐다. 크리스마스 무렵 마미 헨리 선생님 댁에 초대받아 따뜻한 식사를 나누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마미 헨리 선생님과 남편 찰스, 그리고 자녀들 소피와 로이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 스테이크나 칠면조 대신 정성껏 준비된 통닭구이와 그레비 소스, 아이에게 선물해 주신 초콜릿과 체스, 그리고 그림책 《패딩턴과 크리스마스 선물(Paddington and the Christmas Surprise)》까지. 머리에 색색의 종이 왕관을 쓰고 크리스마스 크래커를 터뜨리며 농담이 적힌 쪽지를 읽고, UNO 게임을 함께하며 보냈던 웃음 가득한 오후를 보냈다.

두 번째 크리스마스 여행에는 크리스마스 유머집 한 권도 함께했다. 크래커를 터뜨릴 때 나누는 짧고 재치 있는 유머들로, 아이와 웃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산타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 장르는?" "랩(Rap)! 왜냐하면 크리스마스엔 선물을 wrapping 하니까!" 짧고 단순한 말장난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문화와 언어유희는 우리가 이 나라의 단어와 문화를 얼마나 이해했는지를 되짚게 해주는 지표이기도 했다.

책을 읽다 문득 어린 시절 친구들과 나눴던 말장난이 떠올랐다. "일본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내가 아이에게 문제를 내자, 아이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곧이어 아이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핀란드 헬싱키의 시벨리우스 공원(Sibelius Park)에 울려 퍼졌다. 여행길의 피로를 잊게 해주는 가벼운 농담 하나가 우리를 웃게 만들었다.


2) 크리스마스 영화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아이와 함께 특별한 영화를 보기로 했다. 여행 중에는 저녁 일정이나 숙소의 TV 환경에 따라 영화 감상 조건이 달라졌기에 미리 정해두지 않았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날, 마침 영화 시청이 가능해지자 어른들에게는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명작, 아이가 커가며 언젠가는 꼭 보게 될 영화 《나 홀로 집에(Home Alone)》를 아이에게 추천했다.

1990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 여행을 떠나는 가족에게 실수로 집에 혼자 남겨진 8살 소년 케빈(Kevin McCallister)이 빈집을 노리는 두 도둑 해리, 마브로부터 기발한 함정으로 집을 지켜내는 유쾌한 이야기다. 개봉 이후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꾸준히 사랑받으며 4편까지 제작되었다.

며칠 후, 또 다른 저녁에는 영화 《그린치(The Grinch)》를 보았다. 아이는 이미 학교에서 이 영화의 일부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아이들의 칭찬 횟수를 모아 학기 말 점심시간 이후에 영화를 틀어주는 학교 문화 덕분이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보던 영화를 가족과 함께 다시 보는 것도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영화 《그린치》는 닥터 수스(Dr. Seuss)의 동화 《How the Grinch Stole Christmas!》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크리스마스를 싫어하는 심술궂은 녹색 털북숭이 괴물 그린치가 후빌 마을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모두 훔쳐가려 하지만, 결국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마음을 열게 되는 과정을 그린 따뜻한 이야기다. 영국의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서점에서도 《그린치》 원작 동화책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책으로, 영화로, 그리고 공연으로 넘쳐나는 영국에서 아이와 함께 그 문화를 직접 경험하는 것은 특별한 추억이 되었다.

《그린치》의 작가 닥터 수스는 미국의 전설적인 아동문학 작가이자 삽화가인 시어도어 수스 가이젤(Theodor Seuss Geisel)의 필명이었다. 그는 독특한 리듬감과 운율, 기발한 상상력, 재치 넘치는 이야기로 어린이 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아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닥터 수스의 책은 간단한 어휘와 반복적인 문장을 사용하면서도 재미있고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읽기 능력을 키우도록 돕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모자 쓴 고양이(The Cat in the Hat)》처럼 제한된 단어 수로 쓴 책들은 초등 저학년 아이들의 읽기 연습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것이라고 한다.




3. 생일 파티

영국에서 맞이하는 아이의 첫 번째 생일을 맞아 선물이나 성대한 파티 대신 우리 가족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기념하고 싶었다. 고민 끝에 떠오른 아이디어는 바로'책 기부'였다. 우리가 사랑하고 아끼는 책을 다른 아이들과 나누며 책 읽는 기쁨과 함께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것,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는 의미 있는 방식이라 생각했다.


3-1. '엘머'와 함께 나눈 따뜻한 마음

아이와 함께 고른 책은 영국 작가 데이비드 맥키(David McKee)의 그림책 《엘머(Elmer)》였다. 무지개색 코끼리 엘머는'다름'에 대한 고민을 통해 결국 자신만의 개성이 진정한 아름다움임을 깨닫고 친구들에게 있는 그대로 받아이여진다.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엘머의 이야기는 낯선 환경에서 스스로의 다름을 마주하고 있던 우리 가족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아이는 이 책을 여러 번 읽으며"다르다는 건 멋진 일이야!"라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말했다. "이 책 보면 기분이 좋아져. 다른 친구들도 좋아했으면 좋겠어." 아이의 바람은 기부라는 행동으로 이어졌고, 우리는 책 한 권에 마음을 담아 학교에 전달했다. 이후 학교 뉴스레터에 아이의 책 기부 소식이 소개되었는데, 자신의 이야기가 활자화되어 전달되자 아이는 신기해하며 뿌듯해했다.

몇 달 뒤 가족 여행으로 찾은 체싱턴 놀이공원(Chessington World of Adventures)에서 우리는 엘머를 테마로 한 놀이기구'엘머스 플라잉 점보스(Elmer's Flying Jumbos)'를 마주했다. 무지개색 코끼리들이 공중을 나는 모습을 보며 아이는"엘머다!" 하고 두 눈을 반짝였다. 책 속에서만 만나던 친구가 현실에 나타난 것이다. 이곳에는 영국인이 사랑하는 그루팔로(Gruffalo) 놀이기구와'룸 온 더 브룸(Room on the Broom)' 체험형 건물도 있어 아이는 무척 반가워했다.


3-2. 영국 친구들과의 생일 파티 문화

아이는 친구들 생일 파티에 참여하기를 정말 좋아했다. 그 시작은 애너스테셔의 던스턴 교회 옆 강당에서 열린 파티였다. 그곳에서는 페이스 페인팅을 하고 신나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에어바운스에서 뛰어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캔터베리 스포츠센터의 강당은 주말마다 에어바운스 놀이터로 변신해 생일 파티 장소로 인기가 높았다. 아이는 이곳에서 열리는 파티도 즐겨 찾았다. 한 번은 차트햄 마을회관에서 열린 쌍둥이 알레그라와 구스탄자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았는데, 해리포터 분위기로 꾸며진 공간에서 댄스파티, 마술쇼, 풍선쇼를 즐겼다. 칠햄에서는 역할놀이 생일 파티에, 도버에서는 클라이밍 파티에 가기도 했다.

파티는 대개 1시간 정도 아이들이 신나게 놀다가 30분 정도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피자나 샌드위치로 간단한 점심을 먹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집으로 돌아갈 때는 파티백을 하나씩 받았는데, 쿠키나 사탕 같은 간식과 슬라임, 스티커 같은 작은 장난감이 들어있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축구 선수의 유니폼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 옷을 입고 파티에 왔다. 우리 아이는 손흥민 선수의 토트넘 유니폼이나 해리포터 망토를 입고 가서 친구들과 함께 추억을 만들었다.


3-3. 우리 아이의 첫 영국 생일 파티: 잊지 못할 7번째 생일

영국의 다채로운 생일 파티 문화를 접하며 2학년이 되자 아이는 자신도 학교 친구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의 마음속에는 친구들과 뛰놀며 축하받는 생일 파티에 대한 바람이 있었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은 아이의 바람에 따라 캔터베리 윙햄 가는 길목에 있는 언더 원 루프 정글짐 키즈 카페를 예약하고 파티 준비에 들어갔다. 초대장은 한 달 반 전에 아이 손에 주어졌고, 친구들에게 전달되자 하나둘씩 참석 여부를 알리는 RSVP(Répondez s'il vous plaît) 문자 회신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결국 20명의 친구들과 그들의 형제자매까지 함께하는 작은 축내가 완성되었다. 영국에서는 생일 파티에 아이만 보내기보다 가족 단위로 초대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만큼 육아의 어려움을 서로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나누는 분위기가 있었다.

파티 장소 한쪽에는 파란색 헬륨풍선 위에 숫자 7이 크게 적혀 있었고, 아이의 요청으로 준비한 해리포터 풍선과 테마 생일 케이크가 중심을 장식했다. 케이크는 애프터눈 티 종이 받침대를 활용해 마카롱과 머핀을 층층이 쌓아 올린 3단 디저트 트레이처럼 예쁘게 장식했고, 아이는 친구들에게 하나하나 소개하며 자랑스러워했다.

파티는 1시간의 정글짐 놀이로 시작되어 마지막 30분에는 생일 축하 노래, 피자, 스퀴시 과일 젤리와 함께 즐거운 식사 시간이 이어졌다. 파티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아이의 얼굴에는 스포츠 데이에서 1등 했을 때와 같은 자신감 넘치는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 7번째 생일은 단지 한 해를 기념한 날이 아니었다. 아이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뛰어놀고 교감한 특별한 하루였고, 우리 부부에게는 아이가 이 낯선 곳에 점점 더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소중한 순간이었다.

생일이라는 행사를 통해 아이의 마음속에는 또 하나의 따뜻한 유대와 소속감이 자리 잡았다. 이 날의 기억은 앞으로도 아이에게"나는 이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며 자라났다"라고 말할 수 있는 소중한 이야기로 오래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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