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who has a why to live can bear any how.
(살아야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떠한 것도 견뎌낼 수 있다.)
니체의 말이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던 빅토르 프랑클 박사의 책에서 다시 발견한 문구입니다.
삶의 극한 상황에서 살아야 할 이유,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얼핏 생각해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당장 내일 내가 살아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삶의 의미라니.
그런데, 프랑클 박사는 수용소 생활에서 사람들의 행동과 심리를 관찰하며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곳을 나가 꼭 만나고 싶은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있거나, 자신이 완성해야 할 과업이 있는 사람들이 수용소 생활을 더 잘 견뎌낸다는 것이죠.
객관적인 상황은 모두에게 동일합니다. 뼈와 가죽밖에 없는 말라붙은 몸, 상처투성이 발, 굶주림, 씻지도 못하고, 매일 계속되는 고통스러운 육체노동.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수용소. 그곳에서 누군가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또 누군가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자신은 이미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극한 상황에서 자신의 진정한 정신의 힘이 발현되는 것 같습니다. 프랑클 박사의 글을 읽으며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정신의 힘을 찾을 수 있을까요?
우리 중에서도 누군가는 삶의 의미를 찾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집중합니다. 그 소수를 제외하고 대다수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원하는 것을 모르니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이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성공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왕이면 젊은 나이에 부를 이뤄 근사하게 살아보고 싶죠. 실제로 유튜브, SNS 등 온라인 환경이 발달하면서 젊은 부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많은 세상입니다. 동시에 내가 아닌 누군가가 빠르게 결과를 내고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정형화된 사회 구조에서 틀에 박힌 교육을 받고 살다 보면 자신의 욕구를 드러낼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다양한 욕구를 드러내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할 기회가 생깁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이런 시도가 쉽지 않았죠.
이런 상황에서, 원하는 것을 찾는 방법은 성취감에서 시작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우연히 하게 되었는데, 작은 성취를 맛보면 그 활동에 흥미가 생길 수 있습니다. 자신감도 좀 생기고요.
공부도 마찬가지이지요. 공부를 너무 원해서 하는 학생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 나이 때 해야 한다고 주어진 역할인 거죠. 내 앞에 놓인, 해야 할 공부를 하다 좋은 성적이 나오면 그 자체가 동기부여가 됩니다. '나도 하면 되는구나.' '나도 해 볼 수 있겠다.'
작은 성취감이 동기부여가 되어 더 열심히 하는 동력이 됩니다. 열심히 하니 당연히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커집니다. (동기부여로) 목표가 생기고, 목표를 달성해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생기면 집중을 하게 됩니다.
집중을 한다는 건, 가만히 앉아서 책(이나 일의 대상을)을 쏘아보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과 에너지를 그 일에 많이, 최대한 많이 쓴다는 것입니다. 자기 계발서나 동기부여가들의 강연을 보면 하나같이 '집중을 하라'라고 합니다. 사업이든 경제적 목표든 계속해서 그 목표에 집중하라고요.
그럼, 집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변 정리를 먼저 해야 합니다. 물리적 공간도 어지럽혀져 있으면 주의가 산만해집니다. 항상 책상을, 주변을 정리 정돈하라고 하는 이유지요. 맘이 복잡할 때 물건을 정리해서 버리고 나면, 맘이 좀 비워집니다. 청소를 하고 나니 머릿속이 좀 개운해졌다는 얘기도 이런 이유일 겁니다.
정신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A를 하면서 B를 생각하고, B를 하면서 또다시 A를 신경 쓰거나, C, D 생각은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집니다.
제가 존경하는 법륜 스님이 늘 농담 삼아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밥 먹을 땐 밥만 먹고, 똥 눌 땐 똥만 싸야지, 밥 먹을 때 똥 생각하고 똥 쌀 때 밥 생각하면 안 된다."
저도 종종 그래왔으니,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뜨끔했어요. 회사에서 일할 때, 집안일이나 아이 관련된 일 신경 쓰고, 집에서는 회사일 신경 쓰고. 다들 이런 경험 있으시지요? 특히, 육아와 집안일, 가정 대소사를 담당하는 어머니들이 대부분 해당되실 겁니다. 여기에 직장까지 다니는 워킹맘들은 더할 것이고요.
그래도, 예전에는 한결 나았습니다. 대체로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것들이 뻔했습니다. 그리고, 일상을 깊이 파고든다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감이 오시나요? 온라인 환경입니다.
예전에는 내 의지만 있으면,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 원하는 것, 이루고 싶은 목표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자체가 수시로 흔들립니다.
온라인 환경에서는 빠른 속도와 끊임없이 생산되는 콘텐츠가 가득 차 있습니다. 온통 비교와 계속 새로운 것으로 대체됩니다. 거기에 빠져있는 이상 자신이 추구해야 할 가치나 목표에 집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영상 속에서 제 머리를 때리는 한 문장이 등장합니다. "어제 결심했던 것이 오늘은 과연 이게 맞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진다."
스스로도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제 세운 목표가 맞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라인에 항상 접속해 있고, 몰두하는 한 영원히 계속될 겁니다. 실시간으로 새로운 것이 노출되며 '네 생각이 맞아? 여기 또 새로운 의견이 있는데?', '여기 다른 방식으로 잘나가는 사람들이 나타났잖아.' 마치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악마, 메피스토 같네요.
어쩌면 지금 내 앞에 주어지는 것을 잘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목표가 아닐까 싶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흐릿한 목표를 눈앞에, 머릿속에 계속 그려가야 하는 과정은 고통스러우니까요. 그저, 매일 하게 되는 눈앞의 일을 최고로 잘해보자는 것. 스스로 인정하고 타인에게 인정받고, 그에 따른 부를 얻으면 괜찮은 보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하고자 하는 것을 정했다면, 그 목표에 확실하게 집중해야 합니다. EBS 다큐프라임(교육대기획 10부작, '학교란 무엇인가?')을 통해 소개된 전국 석차 상위 0.1% 아이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제 10대에 불과한 고등학생 아이들 입에서 '집중'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수업 시간의 집중, 혼자 공부시간 확보해서 집중해서 공부, 그리고 스스로 하겠다는 내면의 의지입니다.
내가 원하는 삶에 다가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 그 집중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온라인 환경입니다. 스마트폰은 그 온라인 환경에 '시도 때도 없이', '어디에서나' 접속할 수 있게 하고, 도무지 헤어 나오기 힘든 자극적인 것들을 끊임없이 제공하고 있습니다. 기기 자체의 편의성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이 문제의 대상이 되는 이유입니다.
원하는 것, 하고 싶은 무언가를 찾으셨나요? 아니면, 딱히 하고 싶은 건 모르겠지만, 당장 눈앞에 놓인 일을 잘 해보기로 마음먹었나요? 그렇다면 스마트폰은 손에서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필요할 때 언제든지 쓸 수 있습니다. 내 의지 탓만 하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게 옆으로 치워두세요. 훈련이 계속되면, 옆에 두어도, 알림이 깜박거려도 무시하는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재미있는 것이 없어서 재미를 찾아보기 시작했으니 더 재미있는 것을 만들면 됩니다. 딱히 의미 있는 할 거리가 없어 시간을 때우려고 자꾸 켜게 되니, 의미 있는 무언가를 시작하면 됩니다. 가상공간이 아닌 리얼 월드(Real World)에서요. 거기에 집중하고, 시간을 쏟으면 삶은 조금씩 달라집니다. 그리고, 내가 느끼기 이전에 주변에서 먼저 변화를 인지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꼭 기억하세요. 폰의 알림을 무시해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계속 폰만 쳐다보면, 내 인생에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