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많이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교육은 공부와는 좀 다른 부분이다. 아이들이 커가며 계속 겪게 되는 문제들, 자신감, 자존감, 스스로 살아나가는 힘 같은 것들이다. 학교 성적처럼 숫자로 명확하게 나오지 않지만, 살아보니 참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다.
인생을 살면서 반복적으로 부딪히는 상황들, 어려움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좌절하고, 자책하고, 헤매게 된다. 어떻게 마음을 다잡아야 할지, 어떤 생각을 갖는 것이 좋을지, 부모님께도, 학교에서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학교 성적처럼 숫자로 명확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살아보니 참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다.
내가 좀 철이 없는 것인지, 어린아이들과 말이 잘 통하는 편이었다. 낯가림이 심한 조카들도 아주 어릴 때부터 나를 잘 따르곤 했다. 아이들과 대화하는 게 편하고 재미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아이들 중에서도 청소년 교육에 관심이 많아졌다.
부모님들도, 아이들이 어릴 때는, 육아 서적을 읽고, 아이의 마음을 살피며, 대화하려 애를 쓰는 편이다. 하지만, 소위 사춘기에 들어서고, 학업이 중심이 되는 시기가 되면,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정서적인 관심을 거두는 것 같다. 오로지 공부, 성적, 입시를 중심으로 모든 생활과 에너지가 집중된다.
요새는 청소년기가 아니어도, 초등 고학년부터 이 패턴이 시작되는 것 같다.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고 동일한 레이스를 달리는 최단 코스 6년 여정이다. (초등 고학년부터 시작해 재수, 삼수까지 한다면 훨씬 길어진다.) 이 정형화된 코스가 모든 아이들에게 맞을 리는 만무하다. 그럭저럭 잘 해나가는 아이들도 있지만, 상당수가 힘들어하고 무력감에 빠지기도 한다.
한국의 교육시스템이 문제가 있고, 공부가 전부가 아니고, 자신만의 꿈을 찾으라는 류의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들이 항상 발생한다. 내가 세운 계획조차도, 상황이 컨트롤되지 않아 의미가 없어지는 경우도 여러 번 겪었다.
이러한 예측불허, 변화무쌍한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고 잘 헤쳐나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것, 자존감을 유지하는 것, 건강한 멘탈이다. 이런 것들은 올바른 지식을 통해, 훈련을 통해 가능해진다. 멘탈이 건강하면, 어려운 상황에서 주저앉았다가도 금세 털고 일어날 수 있다.
어른들만 그럴까? 아이들은 해주는 밥 먹고, 공부만 하면 되니까,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아이들도 자신들 나름의 힘듦이 있다.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의 무력감, 자신은 해낼 수 없다는 자신감 결여, 공부를 못하면 못난 존재라는 낮은 자존감 등, 아이들의 정신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도처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제되지 않는 것 같은 스스로의 마음과 행동으로 힘들어한다.
학업 성적이 상위권이 아니어도, 책을 읽으며 정신과 마음을 강하게 단련하고, 청소년기를 보람 있게 보낼 수 있다. 운동을 하며 인내심을 한 뼘이라도 키우고, 글을 써보며 스스로 생각하는 힘도 길러볼 수 있다. 아이들 상담을 하다 보니, 자기는 잘하는 것도 없고, 스스로 멋지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꽤 많다.
청소년기는 신체적 발달이 급격하게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동시에, 눈에 보이진 않지만, 정신적인 변화와 성장도 빠르게 일어나는 시기이다. 두뇌의 발달과 호르몬의 영향 때문이다. 요새 기준으로는, 빠른 아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어릴 때 하지 않던 여러 가지 생각이 들고, 삶에 의문도 든다. 이전의 어린 시절이 나와 타인 관계, 특히 부모와 나의 관계가 중심이었다면, 청소년기에는 자신의 내면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또래 집단에서의 존재감이 중요해진다.
어른들이 '사춘기'라는 한 단어로 명명하는 이 시기에,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가려고 스스로 발버둥을 친다. 이때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터놓고 마음껏 이야기하고 쏟아낼 수 있는 소통의 창구가 필요하다.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하다. 부모가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가장 좋다. 답을 줄 필요도, 무언가를 가르치려 할 필요가 없다. 아이들은 머릿속에 드는 뜬금없고 다양한 생각들을 쏟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 안에서 자율성, 창의성, 주도성이 자라날 수 있다.
아이들의 말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단순한 질문에 너무 많은 설명을 하려 할 필요도, 엉뚱한 말을 한다고 교정해 줄 필요도 없다. 그저 아이 입장이 되어 "네가 요새 그런 생각들을 하며 지내는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들어주면 된다.
중학생인 아들 녀석도 다양한 말들을 쏟아낸다. 대화 시간은 주로 늦은 밤 시간이다. 실컷 이야기하고, 엄마에게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다며 내일부턴 안 해야겠다고 호언장담하곤, 다음날 또 반복된다. 피곤하고 졸음이 와도 아이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졸음을 참으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별다른 말을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아 그래~?" "그렇구나.." "글쎄..." "네 생각은 어떤데?" 정도로 호응만 해줘도 되고, 살짝 흥미를 보이면 더욱 좋아한다.
아이들을 상담하다 보면, 부모님께 칭찬받을 때 기분이 좋고, 시험 백 점 맞았을 때 스스로 뿌듯하고, 아이들이 겪는 상황이나 마음이 대동소이한 편이다. 그중에서, 부모와의 관계가 좋고 소통이 되는 환경의 아이들은, 뻔한 것이어도, 스스로 잘 한다고 느끼는 것, 멋지다고 느끼는 것을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평가에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충분히 표현해 보아야 한다. 공부는 왜 하는지, 공부를 하면 나에게 어떤 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내 스스로 언제 멋지다고 생각이 드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얼토당토않은 계획도 세워봐야 한다. 실행하든 하지 않든.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가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아이로 성장하길 바라지만, 막상 이를 위한 활동은 돕지 않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면박으로 싹을 잘라버리기도 한다. 공부나 하라고.
어찌 보면, 인생의 사각지대에 놓인 것 같은 아이들이, 스스로 길을 찾아보려는 생각이 들게 돕고 싶은 것이, 내가 이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이 나를 판단하지 않고,
나를 책임지려하거나 나에게 영향을 미치려 하지 않으면서,
내 말에 진지하게 귀 기울여 들어줄 때는 정말 기분이 좋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듣고 나를 이해해 주면,
나는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게 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칼 로저스 Carl Rogers (마셜 B. 로젠버그 <비폭력 대화 中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