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악들

by SEEYOUHERE

악.

부지불식간에 내질러지는 비명처럼.

그 순간, 목구멍을 틀어막는

혀뿌리의 단단한 감촉처럼.

당신은 조용히 퍼지다가

요란히 모습을 드러내고

언제든, 어떤 것이든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멈춰 세운다.


악.

그 소리처럼. 그 모양처럼.

마치, 그다음에 이어질 말은 없는 것처럼.

그게 전부고,

다른 것들은 가망 없는 것이라고 믿게 한다.

믿던 모든 것들을 의심하게 하고

나를 내 안으로 숨게 한다.


당신은 어디에나 있다. 도처에 있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 엄숙한 것에 이르기까지.


당신은 출근길 버스정류장에 있다. 가장 먼저 버스에 오르기 위해 부단히 움직이는 다리, 흘겨뜬 눈, 다른 이들을 제치고 빳빳이 버티고 서있는 어깨에 있다.


당신은 전쟁, 기아, 난민 같은 것을 다루는 뉴스는 불편하다며 시선을 거두는 눈에 있다. 다소 심각한 주제의식의 영화는 대체 왜 봐야 하는지, 왜 있지도 않은 일을 지어낸 소설을 읽으면서 굳이 받지 않아도 되는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건지 따져 묻는 입에도 당신이 있다.


당신은 남의 불행은 이미 벌어져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자기의 불행은 세상이 오직 자기에게만 각박하게 구는 것으로 여기는, 살이 포동포동 오를 대로 오른 자기애착에 있다.


당신은 남의 친절과 호의 속에서 충만해지기보단, 그것들을 사사로운 이익으로 치환하기에 바쁜, 비뚤어진 부지런함에 있다.


당신은 매일 먹는 쌀과 고기가 어디에서 왔는지, 앞다투어 자랑하는 ‘최저가’가 가능하기 위해 누가, 어떤 값을 대신 치르고 있는지 생각해 본 적 없는 천진난만함에 있다.


당신은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삶을 살면서, 바뀌지 않는 세상을 탓할 때는 누구보다 기발해지는 선택적인 기지에 있다.


당신은 무지에, 편의에, 관습에 자주 출몰한다. 가장 평화로운 곳에서도, 가장 사랑이 많은 이에게서도 당신은 발견된다. 당신은 할 수 있으니까, 다들 그렇게 하니까, 또는 누군가 그렇게 하라고 하니까 ‘별생각 없이’ 행하는 모든 순간에 깃들어 있다. 퉁명스럽게, 나태하게,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있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서.


그에 반해, 선한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은 당신과 다르게 태생이 쉽게 존재할 수 없는 것이어서 그렇다. 그것은 끝없이 주저하고, 뒤돌아보고, 작은 것들을 돌보면서도 큰 가치를 품는 곳에서야 비로소 피어오르는 것이어서 그렇다. 하물며, 당신을 단죄하고 처단할 만큼 날카로우면서도, 당신이 언제나 존재한다는 사실까지도 품을 수 있을 만큼 넓은 아량을 갖추기까지 해야 하니 희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한 것들을 마주할 때는 벅차오르는 마음을 다잡고 면면히 들여다본다. 경건한 마음으로. 그런 것들만이, 내게도 있는 당신을 씻어내 줄 수 있으니까.


그렇다, 당신은 나에게도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조심하려 해도 불시에, 당신은 모습을 드러낸다. 내 말투나 표정, 숨소리에까지 배어 든다. 끔찍한 일이지만 나는 앞으로도 평생을 당신과 함께 살 것이 분명하다. 당신의 목격자로서, 방관자로서, 당사자로서. 빛이 있는 곳에 반드시 그늘이 지듯, 내가 환히 웃고 자신만만해지는 때일수록 더욱 진득이 따라붙을 것이다. 부디 매 순간 직시하길. 염치를 잃지 않길 바라볼 뿐이다. 부단한 노력으로. 끊이지 않는 물음으로.


악은 존재한다. 아니, 존재하는 것은 전부 악이다.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은 필연적으로 죽어가는 것들에 빚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면, 살고 싶은 것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살 것인가. 그 질문만은 내게 매일 새롭게 물어진다. 한강 작가가 뒤집었던 질문(빛과 실)을 나는 다시 뒤집고 어미를 바꾸어, 그것으로 앞선 질문에 매일 새롭게 답한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다고.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다고. 그렇게 행하며 살라고. 내가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오늘의 나뿐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게 되뇐다.


악.

당신에 대해 오래 생각했으므로, 시달리고 저항했으므로 내 주변에서 당신을 쓸어내는 방식도 터득되는 중이다. 당신이 되지 않고 당신과 싸우기. 때론 도망치고 때론 맞서면서. 완전 무해함을 몸소 시도하는 영혜의 구토(채식주의자)와, 악을 자행했던 루돌프 회스의 구토 장면(존 오브 인터레스트)은 정반대의 모습으로 중첩된다. 파렴치한이 되지 않으면서, 또한 식물이 되지 않으면서 당신을 게워내기. 그것은 내가 존재하는 한 매일의 숙제가 될 것이다.



오늘은 오늘의 숙제를 한다. 어김없이.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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