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친한 친구. 언니고 동생인, 엄마고, 이모고, 스승이고, 우상이고, 잠시 잠깐 스친 사이인, 전인류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당신들을 가만히 생각하고 있으면 그저 먹먹해질 때가 있다. 각자 너무 다른 삶을 살다가도, 온갖 재밌는 주제로 이야기하다가도, 누구 하나가 먼저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토로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단박에 깊은 수렁으로 빠져버린다. 비슷비슷한 사례는 많은데 마땅한 답은 없고, 차오르는 울분은 체념으로, 냉소로 식혀낼 뿐인 당신들과의 대화.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음에, 그 따뜻하고 보드라운 연결감에 다행스럽고 감사한 마음이 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쩜 이렇게 매번 똑같을까, 각자에게 아주 비슷한 고통이 계속되고 있는데 어째서 우리가 겪는 것들은 결국엔 “어쩔 수 없는 것”이 되고야 말까, 싶어 숨이 턱.
당신들과 나를 서럽게 하는 모든 주제들에 대해서 앞으로도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내 글쓰기의 많은 부분이 여성으로서의 경험에서 기인한 것이니까. 한 번에 한 가지씩 써보리라. 일단 이번엔 이것부터.
당신들과 나는 [S라인, V라인, 자연미인, 청순/섹시/큐티, 빼빼 마른, 육감적인, 각선미가 좋은, 중안부가 짧은, 00 여신, 꾸안꾸, 드뮤어, 클린걸… 등] 시시각각 업데이트 되는 미인의 범주에 맞춰 [저탄고지, 1일 1식, 간헐적 단식, 붓기 관리, 필러, 보톡스, 흡입, 재배치, 돌려 깎기, 울쎄라… 등] 우리 자신을 재단한다. 마치, 외모라는 것이 응당 “가꿔야”하는 무엇인 것처럼, 그런 행위들이 곧 “자기 관리”인 것처럼 우리를 두 번 속이는 세상의 잣대 안에서 우리는 돈을 쓰고, 시간을 쓴다.
“여자는 ~이래야 된다”, “나이에 비해~어떻다” 이런 말들이 조심스러워진 세상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런 말들에 갇혀 산다. 여자에게 아름다움은 일종의 권력으로 여겨지니까. 부정하고 싶어도, 예뻐야 세상 살기가 수월하다는 게 기정사실이란 것을 매 순간 확인받기 때문이다. 그것이 꼭 Male gaze를 의식한 것이거나, 남자에게 욕망당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 아니어도 외모에 대한 집착은 지속된다. 이제 당신들과 내가 시시각각 서로를 응시하고, 서로의 외모를 욕망하기 때문이다.
당신들과 나는 SNS를 통해 ‘더 나은 나’의 이미지들을 공유한다. 우리는 밥 먹을 때, 잘 때, 운동할 때, 일할 때, 여행 갈 때, 혼자 있을 때, 친구와 있을 때 등등, 그러니까,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예쁘도록 서로를 독려하고 감시한다.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면서. 그런 리액션들이 시기, 질투에서 기인했던 적도 있었지만, 이젠 그런 감정에도 무뎌진 듯하다. 우후죽순 끝없이 양산되는 ‘예쁜 여자’의 이미지들은 이제 거대한 무리를 이루어 ‘예뻐지는 꿀팁’ 같은 것들이 담긴 광고판이 돼버렸으니까. 당신들과 나는 서로를 어여삐 여기고 칭송하면서 정보를 주고받는다. 얻어진 정보들에, 우리는 또 돈을 쓰고, 시간을 쓴다.
성형 정보 플랫폼 ‘강남언니’의 최근 캠페인 ‘아름답도록 정확한 정보’는 작금의 상황을 잘 간파하고 이용했다는 점에서 아주 영리해 보인다. 모델 선정부터 뾰족한 메시지까지 노림수가 있어 보인달까. 한편으로 이 캠페인은 나를 아주 불편하게 만든다. 불쾌한 골짜기처럼, 아마도 현실을 너무 잘 담아낸 탓일 테다. “우리가 원하는 건 하나예요, 아름답도록 정확한 정보”라니. 예뻐지는 것에 경도되어 있는 당신들과 나의 욕망 한가운데를 쿡 찌르고 들어온다.
앱 이름이 하필 강남’ 언니’라서, 개인적으로 내게 ‘언니’라는 호칭은 특별한 것이어서, 언니를 단순히 성형 정보를 주는 믿을 만한 사람으로 치부하는 것도 불편했다. 정치, 경제, 문화, 스포츠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브라더후드는 끈끈하고 두터운 것으로,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고, 추한 것은 감춰주고, 잘한 것은 떠벌려주는 것으로서, 더군다나 경제적 이득이 되는 것으로서 작동해 왔는데, 시스터후드는 고작 성형정보를 나눌 때에나 유용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매우 불쾌했다. 이 역시 내가 경험한 현실과 맞닿아 있어서일까? 다 모른 척하고서라도 격렬히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다.
당신들과 내가 이따금씩 자기자신으로부터 추락하는 곳, 그곳은 거울 앞이다. 영화 ‘서브스턴스’에서 주요한 사건들이 모두 거울 앞에서 벌어지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더 젊고, 예쁜 나를 꿈꾸게 되는 것도, 더 젊고 예쁜 나를 만끽하는 것도, 더 젊고 예쁜 나에게 잡아 먹히는 것도 모두 거울 앞에서다. 주인공은 카메라 앞에선 “Take care of yourself(자기를 아껴주세요)”라고 외치지만 정작 자기는 자기혐오에 빠져 있다. 나 역시, 겉으로는 건강한 삶을 표방하면서 속으로는 곪아 있던 적이 있었기에 더 섬뜩하게 다가왔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껍질을 벗겨내야, 나는 나와 친해질 수 있을까. 진정으로 이해하고 아껴줄 수 있을까. 일단 거울과는 거리두기 할 필요가 있다. 농담을 조금 보태서, ‘서브스턴스’의 교훈은 ’거울은 되도록 멀리서, 짧게 보라‘ 아닐까 싶다.
외모를 통해 자신감을 고취시키고,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개성을 발휘하려는 욕구는 매우 정당하다. 건강하고 젊은 몸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어떤 면에서 그 자체로 건강하고, 삶에 활력을 준다. (물론 건강하지 않게 될 때까지, 되려 활력을 뺏기 전까지만 그렇다) “예쁜 얼굴, 날씬한 몸매”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자고 외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예쁜 것은 예쁘고, 기분 좋으니까. 사는 데 그런 기쁨을 주는 요소가 많은 것도 아니니까.
예뻐지라는 압박이 어디에서 오는지, 어떤 방식으로, 어떤 말로 오는지, 그리고 그것이 당신들과 나를 어떻게 바꾸는지 계속해서 생각해봤으면 싶다. 눈/코/입의 모양, 중안부의 길이 같은 것과는 무관하게 거울 속 자신을 보살펴줄 수 있고, 외모를 권력처럼 쓰는 순간이 올 때에도 그 환상에 너무 오래 빠지지 않고,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쯤 재미로 갖고 놀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우리는 우리 자신과 더 친해질 수 있을까. 그런 날을 함께 그려보며 우리의 시스터후드가 더 자유롭고, 더 든든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