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우당탕탕 우리 가족
'너는 좋겠다. 중국어 할 수 있어서!'
동네 과일 가게 아주머니, 분식집 아주머니, 같은 반 친구에게서도 들었던 말이다. 어쩌면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자매품으로 '진짜 티 안 난다! 네가 말 안 했으면 몰랐어.'도 있다. 사람들은 종종 다문화 가정을 떠올리며 백인, 흑인, 쌍꺼풀 짙은 이국적인 외모를 떠올리지만 나나 언니, 오빠 같은 경우에는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는 티가 나지 않는다. 이 점이 편하기도 하면서 굳이 이야기를 꺼내기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도 가장 애정하는 방법은 '엄마랑 통화하기'다. 그냥 친구랑 이야기하다가 엄마의 전화를 받으면서 '니하오~?' 하는 식이다. 통화하면서 깜짝 놀라는 친구의 반응을 보는 것도 매우 재밌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우리 엄마가 외국인인 걸 전교생이 알았다. 글로벌시대라며 소위 '다문화자녀' 프로그램들이 한창 많이 이루어질 때였다. 어느 날, 교무실에 불려 갔다. 흐릿한 기억이지만 8명 정도 됐던 거 같다. 한눈에 보니 다문화 가정 학생들을 모아둔 느낌이었다. 훈화 말씀 끝에 늘 'I can do it, You can do it, We can do it.'으로 끝을 맺던 인자한 여교장선생님이셨다. 교장선생님은 우리를 둘러앉히고 힘든 일이 있으면 말하라며 두꺼운 국어사전을 주었다. 당시 난 6학년이었고 전교 5등 안에는 드는 학생이었다.(내 영광의 시대였다. 중학교 들어가자마자 삼성전자주처럼 쭈욱 하한가를 갱신했다.) 그 당시에는 '우리가 한글도 못 읽을 거 같나?'같이 꽤 난폭한 마음이었는데 돌아보니 사회에 잘 적응 못 하는 다문화 친구들도 많으니 나라의 정책을 옳은 방향이었던 거 같다.
우리 엄마는 대만 수도 타이베이 출신이시고 아빠는 60년 간 부산 토박이시다. 두 분은 연애결혼하셨는데 어떻게 만났냐며... 국제 연애라고 크게 특별한 점은 없는데 그 흔한 '직장 동료 소개'였다. 아빠는 영어를 잘하셔서 무역 관련 일로 대만에 출장을 오셨고 거기서 엄마의 직장 동료가 아빠를 소개해줬다.(왜 그러셨어요?ㅋㅋ). 그 당시의 엄마는 꽤나 낙천적인 분이셨는데 얼마나 단순한 사람이었냐면 아빠랑 결혼을 하고 한국에 왔는데 아무도 중국어를 할 줄 몰라서 당황했다고 한다. 그렇다. 한국으로 시집오는데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알지도 못한 채로 오신 거다. (물론 조사를 많이 해도 타국은 정말 살기 어렵다. 웬만한 적응력이 아니라면... 심지어 그 당시에는 한국이 대만보다 못 살 때였다.) 만주 사람이었던 할아버지, 평양에서 오신 할머니, 장제스와 중국에서 건너오신 외할아버지와 판사의 두 번째 부인 자녀였던 외할머니까지. 우리 집 이력은 다들 꽤나 특이한데 이건 다음번에 또 적도록 하겠다! 오늘은 우리 가족 이야기니.
특징
- 대만이 낳은 미인 : 쯔위, 슈화, 우리 엄마
- 걱정이 많으시다. 12시만 넘어도 정류장으로 건장한 삼남매를 데리러 오시는 분
- 여느 부모님처럼 잔소리가 많으시다. 다만 영어와 중국어를 섞어 쓰신다는 것
- 최근 인물사진에 매력을 느끼신다. 사진 찍을 때 다른 사람이 나오는 게 싫은데 자연스럽게 모자이크가 돼서 좋다고 하신다.
- 셜록홈즈와 뤼팽을 좋아하신다. 추리소설을 보다가 시력이 나빠졌다고 주장하신다.
- 과거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셨는데 말 안 통하는 한국에서 삼남매를 키우다 보니 예민한 성격으로 바뀌셨다고 한다.
특징
- 입만 열면 거짓말인 경우가 많은데 '내년에 벤츠 몰아야지' (우리 집엔 차가 없다.)가 단골 멘트다.
-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함을 지닌 분
- 무뚝뚝한데 허풍과 허세가 넘친다.
- 최근 취직한 막내딸에 연봉에 관심이 많으시다.
이건 우리 집 특징인데 남매가 사이가 좋다. TMI가 될 우리 집 구성원을 소개하겠다. (원래 남의 tmi가 제일 재밌다.)
햇살 같이 환한 미소를 짓는 언니는 우리 집의 첫째를 담당하고 있다.
특징
- 사진 찍는 거 매우 중요시 여김
SNS 업로드를 심사숙고해서 하는 타입. 기록하는 것도 좋아해서 블로그에 유튜브도 운영하고 있다.
- 남다르게 예쁘다.
오빠랑 내가 아빠를 많이 닮았다면 언니는 엄마 유전자를 받아서 중국 스러운 느낌이 좀 있어서 뭔가 오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그게 너무 이쁘다. 다른 사람 기분을 좋게 만드는 미소까지 햇살 같은 사람이다.
- 공부와는 거리가 멀지만 사람 좋아 E인간.
우리 가족 중 유일하게 E 비율이 높은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약속 폭탄에 노는 걸 좋아했고 그래서 공부는 멀리했지만 지갑을 떠주는 등 주변사람을 챙길 줄 알는 사람이다.
- 자주 하는 말 : '저녁 뭐 먹어?', '예뻐지고 싶당'
특징
- 182센티의 군대에서 키워온 건장함이 돋보이지만 속에는 8살짜리 아이가 살고 있어서 순수하다.
- 조선 관련 전공을 했지만 IT가 좋아서 클라우드 관련 교육을 듣고 있는 교육생이다.
- 엄마와의 상성이 좋지 않아 어릴 적부터 맨날 첫날 싸우지만 엄마대신 설거지를 도맡아 하는 스위트보이.
- 가끔 선 넘은 장난을 칠 때도 있지만 분위기를 띄우는 장난꾸러기다!
- 영화를 좋아해서 감독이 되고 싶었던 오빠, 어벤저스, 트랜스포머 등 히어로물을 좋아한다.
- 듬직할 때도 애 같을 때도 있으나 한결 같이 다정한 오라버니.
- 자주 하는 말 : '이게 오빠다.', '충꾸야, 고맙당!'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삼 남매를 보며 어찌 이리 사이가 좋냐고 하지만 우리도 늘 잘 맞았던 건 아니다. 살면서 부딪히기도 많이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길었다. 지금도 가끔 다툴 때가 있지만 결국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걸 알기에 다시 함께한다.
특징
- 12살이 넘은 노견으로 언니가 고등학교 때 키우고 싶다고 떼를 왕창 써서 데리고 왔다.
- 우리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복도를 걸어올 때부터 우렁찬 목소리로 짓는다. (다행히 아파트 신고는 안 들어옴)
- 엄마를 제일 좋아한다. (언니는 부정하지만 내가 보기엔 현실이다)
- 최근 중성화 수술을 받아서 예전보다 잠을 많이 잔다.
- 자주 하는 말 : '으르릉', '컹컹', '월월'
특징
- 컴퓨터공학과 출신의 은행원
- 애교 많은 가족들에 비해 무뚝뚝한 막내
- 최근 헬스에 미쳐서 주5회 운동을 하고 있다.
- 가족들과의 여행을 주도하며 실행력이 강한 타입이다.
- 현재 소녀가장으로 집안의 기둥을 맡고 있다.
- 자주 하는 말 : '은꾸랑 꾸꾸, 우리 가족 사랑해', '이직할래'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다들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점이기도 하고 나의 장점이기도 하다. 제2외국어를 모국어처럼 쉽게 접했다는 거! 그렇지만 편견은 모든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다 모국어처럼 제2외국어를 할 거라는 거다. 제2외국어 구사력은 가정마다 천차만별인 거 같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일상생활은 무리 없이 하나 대만에서 일을 할 정도로 할 수는 없을 거 같다.(단어 구사력의 차이일 거 같다.) 그리고 나는 문맹이다. 90년대 생들이라면 한자자격증을 경험했을 거 같은데(요즘도 하나..?) 우리도 한자 학습지 선생님께서 매주 오셔서 10자 정도 가르쳐주셨다. 기억도 안 날 어린 시절 그게 얼마나 싫었는지 5급까지 따고 이제 한자 공부 안 한다고 엄마한테 선언해서 지금도 한자를 못 읽는다. 내가 느끼기에 제2외국어를 잘하는 다문화 자녀들은 어릴 때 해당 국가에 잠시라도 살고 오거나 하는 등 환경자체의 변화가 있는 경우가 많은 거 같다. 실제로 외국인 부모님 나라의 언어를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국어도 자연스럽게 깨우치는 게 아니듯이 언어도 결국 환경 다음에 노력이 있어야 하는 부분이 있는 거 같다.
이거 또한 나의 사견인데 어렸을 때는 그래도 1년에 한두 번씩 대만을 갔었다. 대만 가기 전 날에 어찌나 설레었는지 두근두근해서 잠을 못 이루는 경우가 많았다. 비행기에 내렸을 때부터 다른 냄새와 습도.(대만은 아열대 기후를 가지고 있어서 덥고 습하다.) 당시에는 너무 신기했던 수많은 편의점. 몇 년 전만 해도 편의점 밀도 1위 국가였고 편의점에 어묵, 소시지 기계, 군고구마 등등 두 눈이 다 반짝였고 편의점 물품을 털어서 한국으로 들고 왔었다. (그리고 몇 년 후 한국은 편의점 수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다.)
지금은 이제 너무 유명해진 쓰린 야시장도 자주 갔었다. 그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길가에 세워진 파칭코기계, 풍선 터뜨리기, 붕어 뜨기 등 재밌는 놀이도 다 추억으로 남아있다. 막상 유튜브에 나오는 '대만 야시장에서 꼭 먹어야 하는 음식 탑 5' 등과 같은 음식들은 못 먹어봤다는 게 웃기기도 하다. (엄마가 위생 문제가 있다면서 못 먹게 하셨다. 그리고 스물다섯 살에 나는 길거리 음식 마스터가 됐다.) 같은 맥락으로 대만 카스텔라도 한국에서 처음 본 음식이었다. 내가 못 먹어본 걸 수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지금이야 맛집을 찾을 때 휴대폰으로 검색하고 별점, 후기 보는데 그때는 엄마가 먹어봤던 데만 주야장천 다시 갔으니 모르는 것도 무리가 없을 거 같긴 하다. 이처럼 다른 사람들은 겪어보기 힘든 경험들을 해볼 수 있다는 게 좋았던 거 같다.
우리 엄마는 정치외교학과 출신이라 그런지 세상 돌아가는 일에 엄청 밝으신데 어느 정도 수준이냐면 어제 밥을 먹고 있었는데 '테슬라에서 새로 나온 인간 로봇 너무 사람 닮아서 좀 무섭더라.'라고 하셨다. 나는 IT업계 사람이고 경제 라디오를 거의 매일 듣는데도 모르는 정보였는데... 이외에도 나는 관심 없는 킴 카다시안 가문, 트럼프의 키 큰 아들, 베컴의 아들, 누가 마약을 했는지, 프랑스에서 가장 젊은 대통령 등 웬만한 정치, 연예계는 누구보다 빠삭하시다. 이런 정보들로 토론을 자주 하는데 의견이 자주 충돌한다. 이때 문화차이랑 언어의 한계로 자유롭게 소통하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다. 종종 엄마가 말한 단어를 몰라서 두 번씩 물어보기도 하고 한국말로 했을 때는 크게 문제 될 게 없는데 중국어로 하면 버릇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엄마는 말이 너무 많아.'는 하면 안 되는 말이라고...(한국에서도 무례한 거 같기도..) 또 밈같은 거 보면서 같이 웃고 싶기도 하고 역사 이야기, 인생 이야기, 깊은 마음속 이야기도 하고 싶을 때가 많은데 언어의 한계 때문에 하지 못한다는 게 아쉬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리고 안 그래도 입 짧은 엄마가 한국 음식을 잘 못 드실 때! 장어구이, 순대, 조개구이, 회, 곱창, 김치나 내가 기가 막히게 끓인 순두부 열라면 등을 못 드실 때 아쉬울 때가 많다. (생각하니 또 먹고 싶네, 츄베릅) 버킷리스트이자 목표인 중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런 언어의 장벽을 깨부술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Chatgpt에게 물어보니 2021년 9월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다문화가정 수는 약 30만 가정이라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 이민자 등을 합치면 더 많은 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초등학교 때 사회책에 우리나라는 단일 민족 국가라고 했는데 이제는 유효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다양성이 존중되려면 사회가 다양성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때문에 주춤했지만 다시 엔데믹 시대이니 앞으로 한국은 더욱 글로벌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