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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Blu Nov 10. 2023

저희 가족을 소개합니다.

좌충우돌 우당탕탕 우리 가족

'너는 좋겠다. 중국어 할 수 있어서!'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인데요.

동네 과일 가게 아주머니, 분식집 아주머니, 같은 반 친구에게서도 들었던 말이다. 어쩌면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자매품으로 '진짜 티 안 난다! 네가 말 안 했으면 몰랐어.'도 있다. 사람들은 종종 다문화 가정을 떠올리며 백인, 흑인, 쌍꺼풀 짙은 이국적인 외모를 떠올리지만 나나 언니, 오빠 같은 경우에는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는 티가 나지 않는다. 이 점이 편하기도 하면서 굳이 이야기를 꺼내기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도 가장 애정하는 방법은 '엄마랑 통화하기'다. 그냥 친구랑 이야기하다가 엄마의 전화를 받으면서 '니하오~?' 하는 식이다. 통화하면서 깜짝 놀라는 친구의 반응을 보는 것도 매우 재밌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우리 엄마가 외국인인 걸 전교생이 알았다. 글로벌시대라며 소위 '다문화자녀' 프로그램들이 한창 많이 이루어질 때였다. 어느 날, 교무실에 불려 갔다. 흐릿한 기억이지만 8명 정도 됐던 거 같다. 한눈에 보니 다문화 가정 학생들을 모아둔 느낌이었다. 훈화 말씀 끝에 늘 'I can do it, You can do it, We can do it.'으로 끝을 맺던 인자한 여교장선생님이셨다. 교장선생님은 우리를 둘러앉히고 힘든 일이 있으면 말하라며 두꺼운 국어사전을 주었다. 당시 난 6학년이었고 전교 5등 안에는 드는 학생이었다.(내 영광의 시대였다. 중학교 들어가자마자 삼성전자주처럼 쭈욱 하한가를 갱신했다.) 그 당시에는 '우리가 한글도 못 읽을 거 같나?'같이 꽤 난폭한 마음이었는데 돌아보니 사회에 잘 적응 못 하는 다문화 친구들도 많으니 나라의 정책을 옳은 방향이었던 거 같다.



엄마, 아빠는 연애하다 결혼했어요.

우리 엄마는 대만 수도 타이베이 출신이시고 아빠는 60년 간 부산 토박이시다. 두 분은 연애결혼하셨는데 어떻게 만났냐며... 국제 연애라고 크게 특별한 점은 없는데 그 흔한 '직장 동료 소개'였다. 아빠는 영어를 잘하셔서 무역 관련 일로 대만에 출장을 오셨고 거기서 엄마의 직장 동료가 아빠를 소개해줬다.(왜 그러셨어요?ㅋㅋ). 그 당시의 엄마는 꽤나 낙천적인 분이셨는데 얼마나 단순한 사람이었냐면 아빠랑 결혼을 하고 한국에 왔는데 아무도 중국어를 할 줄 몰라서 당황했다고 한다. 그렇다. 한국으로 시집오는데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알지도 못한 채로 오신 거다. (물론 조사를 많이 해도 타국은 정말 살기 어렵다. 웬만한 적응력이 아니라면... 심지어 그 당시에는 한국이 대만보다 못 살 때였다.) 만주 사람이었던 할아버지, 평양에서 오신 할머니, 장제스와 중국에서 건너오신 외할아버지와 판사의 두 번째 부인 자녀였던 외할머니까지. 우리 집 이력은 다들 꽤나 특이한데 이건 다음번에 또 적도록 하겠다! 오늘은 우리 가족 이야기니.


한 살 때 찍은 사진.

국적은 다르지만 평범한 부모님

걱정이 많으신 미모의 엄마

특징

- 대만이 낳은 미인 : 쯔위, 슈화, 우리 엄마

- 걱정이 많으시다. 12시만 넘어도 정류장으로 건장한 삼남매를 데리러 오시는 분

- 여느 부모님처럼 잔소리가 많으시다. 다만 영어와 중국어를 섞어 쓰신다는 것

- 최근 인물사진에 매력을 느끼신다. 사진 찍을 때 다른 사람이 나오는 게 싫은데 자연스럽게 모자이크가 돼서 좋다고 하신다.

- 셜록홈즈와 뤼팽을 좋아하신다. 추리소설을 보다가 시력이 나빠졌다고 주장하신다.

- 과거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셨는데 말 안 통하는 한국에서 삼남매를 키우다 보니 예민한 성격으로 바뀌셨다고 한다.



부산 토박이 아빠

특징

- 입만 열면 거짓말인 경우가 많은데 '내년에 벤츠 몰아야지' (우리 집엔 차가 없다.)가 단골 멘트다.

-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함을 지닌 분

- 무뚝뚝한데 허풍과 허세가 넘친다.

- 최근 취직한 막내딸에 연봉에 관심이 많으시다.




유난히 사이가 좋은 삼남매

이건 우리 집 특징인데 남매가 사이가 좋다. TMI가 될 우리 집 구성원을 소개하겠다. (원래 남의 tmi가 제일 재밌다.)

햇살 같이 환한 미소를 짓는 언니는 우리 집의 첫째를 담당하고 있다.


춤, 그림, 음악을 사랑하는 언니

특징

- 사진 찍는 거 매우 중요시 여김

SNS 업로드를 심사숙고해서 하는 타입. 기록하는 것도 좋아해서 블로그에 유튜브도 운영하고 있다.

- 남다르게 예쁘다.

오빠랑 내가 아빠를 많이 닮았다면 언니는 엄마 유전자를 받아서 중국 스러운 느낌이 좀 있어서 뭔가 오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그게 너무 이쁘다. 다른 사람 기분을 좋게 만드는 미소까지 햇살 같은 사람이다.

- 공부와는 거리가 멀지만 사람 좋아 E인간.

우리 가족 중 유일하게 E 비율이 높은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약속 폭탄에 노는 걸 좋아했고 그래서 공부는 멀리했지만 지갑을 떠주는 등 주변사람을 챙길 줄 알는 사람이다.

- 자주 하는 말 : '저녁 뭐 먹어?', '예뻐지고 싶당'


만화에 나올 듯이 다정한 오라버니

특징

- 182센티의 군대에서 키워온 건장함이 돋보이지만 속에는 8살짜리 아이가 살고 있어서 순수하다.

- 조선 관련 전공을 했지만 IT가 좋아서 클라우드 관련 교육을 듣고 있는 교육생이다.

- 엄마와의 상성이 좋지 않아 어릴 적부터 맨날 첫날 싸우지만 엄마대신 설거지를 도맡아 하는 스위트보이.

- 가끔 선 넘은 장난을 칠 때도 있지만 분위기를 띄우는 장난꾸러기다!

- 영화를 좋아해서 감독이 되고 싶었던 오빠, 어벤저스, 트랜스포머 등 히어로물을 좋아한다.

- 듬직할 때도 애 같을 때도 있으나 한결 같이 다정한 오라버니.

- 자주 하는 말 : '이게 오빠다.', '충꾸야, 고맙당!'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삼 남매를 보며 어찌 이리 사이가 좋냐고 하지만 우리도 늘 잘 맞았던 건 아니다. 살면서 부딪히기도 많이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길었다. 지금도 가끔 다툴 때가 있지만 결국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걸 알기에 다시 함께한다.


검고 긴 강아지 닥스훈트

특징

- 12살이 넘은 노견으로 언니가 고등학교 때 키우고 싶다고 떼를 왕창 써서 데리고 왔다.

- 우리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복도를 걸어올 때부터 우렁찬 목소리로 짓는다. (다행히 아파트 신고는 안 들어옴)

- 엄마를 제일 좋아한다. (언니는 부정하지만 내가 보기엔 현실이다)

- 최근 중성화 수술을 받아서 예전보다 잠을 많이 잔다.

- 자주 하는 말 : '으르릉', '컹컹', '월월'

내 눈엔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강아지, 박써니, 별명 '검고 긴 것', '블랙독'



글과 책을 사랑하는 무심한 막내

특징

- 컴퓨터공학과 출신의 은행원

- 애교 많은 가족들에 비해 무뚝뚝한 막내

- 최근 헬스에 미쳐서 주5회 운동을 하고 있다.

- 가족들과의 여행을 주도하며 실행력이 강한 타입이다.

- 현재 소녀가장으로 집안의 기둥을 맡고 있다.

- 자주 하는 말 : '은꾸랑 꾸꾸, 우리 가족 사랑해', '이직할래'




내가 생각하는 다문화가정의 특장점.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첫째, 제2외국어는 선물 같다.

다들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점이기도 하고 나의 장점이기도 하다. 제2외국어를 모국어처럼 쉽게 접했다는 거! 그렇지만 편견은 모든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다 모국어처럼 제2외국어를 할 거라는 거다. 제2외국어 구사력은 가정마다 천차만별인 거 같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일상생활은 무리 없이 하나 대만에서 일을 할 정도로 할 수는 없을 거 같다.(단어 구사력의 차이일 거 같다.) 그리고 나는 문맹이다. 90년대 생들이라면 한자자격증을 경험했을 거 같은데(요즘도 하나..?) 우리도 한자 학습지 선생님께서 매주 오셔서 10자 정도 가르쳐주셨다. 기억도 안 날 어린 시절 그게 얼마나 싫었는지 5급까지 따고 이제 한자 공부 안 한다고 엄마한테 선언해서 지금도 한자를 못 읽는다. 내가 느끼기에 제2외국어를 잘하는 다문화 자녀들은 어릴 때 해당 국가에 잠시라도 살고 오거나 하는 등 환경자체의 변화가 있는 경우가 많은 거 같다. 실제로 외국인 부모님 나라의 언어를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국어도 자연스럽게 깨우치는 게 아니듯이 언어도 결국 환경 다음에 노력이 있어야 하는 부분이 있는 거 같다.


둘째, 다양한 문화 경험할 수 있다.

이거 또한 나의 사견인데 어렸을 때는 그래도 1년에 한두 번씩 대만을 갔었다. 대만 가기 전 날에 어찌나 설레었는지 두근두근해서 잠을 못 이루는 경우가 많았다. 비행기에 내렸을 때부터 다른 냄새와 습도.(대만은 아열대 기후를 가지고 있어서 덥고 습하다.) 당시에는 너무 신기했던 수많은 편의점. 몇 년 전만 해도 편의점 밀도 1위 국가였고 편의점에 어묵, 소시지 기계, 군고구마 등등 두 눈이 다 반짝였고 편의점 물품을 털어서 한국으로 들고 왔었다. (그리고 몇 년 후 한국은 편의점 수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다.)


지금은 이제 너무 유명해진 쓰린 야시장도 자주 갔었다. 그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길가에 세워진 파칭코기계, 풍선 터뜨리기, 붕어 뜨기 등 재밌는 놀이도 다 추억으로 남아있다. 막상 유튜브에 나오는 '대만 야시장에서 꼭 먹어야 하는 음식 탑 5' 등과 같은 음식들은 못 먹어봤다는 게 웃기기도 하다. (엄마가 위생 문제가 있다면서 못 먹게 하셨다. 그리고 스물다섯 살에 나는 길거리 음식 마스터가 됐다.) 같은 맥락으로 대만 카스텔라도 한국에서 처음 본 음식이었다. 내가 못 먹어본 걸 수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지금이야 맛집을 찾을 때 휴대폰으로 검색하고 별점, 후기 보는데 그때는 엄마가 먹어봤던 데만 주야장천 다시 갔으니 모르는 것도 무리가 없을 거 같긴 하다. 이처럼 다른 사람들은 겪어보기 힘든 경험들을 해볼 수 있다는 게 좋았던 거 같다.


셋째, 소통의 한계가 있다.

우리 엄마는 정치외교학과 출신이라 그런지 세상 돌아가는 일에 엄청 밝으신데 어느 정도 수준이냐면 어제 밥을 먹고 있었는데 '테슬라에서 새로 나온 인간 로봇 너무 사람 닮아서 좀 무섭더라.'라고 하셨다. 나는 IT업계 사람이고 경제 라디오를 거의 매일 듣는데도 모르는 정보였는데... 이외에도 나는 관심 없는 킴 카다시안 가문, 트럼프의 키 큰 아들, 베컴의 아들, 누가 마약을 했는지, 프랑스에서 가장 젊은 대통령 등 웬만한 정치, 연예계는 누구보다 빠삭하시다. 이런 정보들로 토론을 자주 하는데 의견이 자주 충돌한다. 이때 문화차이랑 언어의 한계로 자유롭게 소통하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다. 종종 엄마가 말한 단어를 몰라서 두 번씩 물어보기도 하고 한국말로 했을 때는 크게 문제 될 게 없는데 중국어로 하면 버릇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엄마는 말이 너무 많아.'는 하면 안 되는 말이라고...(한국에서도 무례한 거 같기도..) 또 밈같은 거 보면서 같이 웃고 싶기도 하고 역사 이야기, 인생 이야기, 깊은 마음속 이야기도 하고 싶을 때가 많은데 언어의 한계 때문에 하지 못한다는 게 아쉬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리고 안 그래도 입 짧은 엄마가 한국 음식을 잘 못 드실 때! 장어구이, 순대, 조개구이, 회, 곱창, 김치나 내가 기가 막히게 끓인 순두부 열라면 등을 못 드실 때 아쉬울 때가 많다. (생각하니 또 먹고 싶네, 츄베릅) 버킷리스트이자 목표인 중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런 언어의 장벽을 깨부술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Chatgpt에게 물어보니 2021년 9월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다문화가정 수는 약 30만 가정이라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 이민자 등을 합치면 더 많은 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초등학교 때 사회책에 우리나라는 단일 민족 국가라고 했는데 이제는 유효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다양성이 존중되려면 사회가 다양성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때문에 주춤했지만 다시 엔데믹 시대이니 앞으로 한국은 더욱 글로벌해지지 않을까?

엄마가 소중히 간직하신 우리 셋의 사진, 냉장고에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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