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z Nov 18. 2022

기대와는 너무도 달랐던 첫 경기둘레길 걷기 (2)

1일 차 - 41코스 일부

(이어서)



금광호수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마을 사이를 걷다 보니 차와 마주치는 일은 점차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귀를 울리는 차의 소음은 영 줄어들지 않았다. 지도를 확인하니 그럴만한 상황이었다. 경기둘레길이 한동안 평택-제천 고속도로와 나란한 방향으로 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까지 차가 내는 소음이 그 정도로 큰 줄 몰랐다. 시내를 달리는 차의 소음이 짜증 나게 시끄럽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차가 시내에서 달리는 속도의 두 배로 달릴 때 어떤지는 따로 깊이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게다가 고속도로에서는 차 옆에 서 있을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고속도로에선 시내보다 조금 더 시끄럽겠거니’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정말 놀랐다. 특히 체구가 큰 트럭들이 내는 소리에 나는 압도되었다. 차의 엔진이 내는 굉음, 타이어와 아스팔트가 마찰하는 소리, 고속으로 달리는 차에 짓눌린 공기가 차벽을 긁는 소리. 이 세 소리의 합은 마치 쇠가 지르는 비명 같았다. 게다가 내가 걷고 있던 금광면에서는 서울-세종 고속도로의 건설이 한창이라, 돌 깨고 먼지 날리는 공사도 진행 중이었다. 커다란 덤프트럭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고, 근방에서 굴삭기가 쩡-! 쩡-! 세상을 울리는 듯한 소리를 내며 규칙적으로 산을 깨부수고 있었다.


나는 어딘가에 고속도로가 뚫린다고 하면 반가운 마음만 들었었다. 심지어 앞으로 고속도로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공사장과 고속도로 옆을 계속 따라 걷다 보니 ‘정말 이래도 되나’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수천수만 년에 걸쳐 만들어진 그 커다란 존재를 쇳덩이로 깨고 부수어 이렇게 없애도 괜찮은 건가? 이 산에 사는 생물들에게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 정도의 이런 소음을 하루 종일 수개월씩 거의 매일 듣게 해도 괜찮은 걸까? 나는 환경과 공사에 대해 잘은 모르기 때문에 근거는 하나도 댈 수 없지만, 왠지 마냥 괜찮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괜찮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더 갈등하게 만들었다. 왜냐면 나는 도로가 제공하는 편의를 포기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는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자비하고 비가역인 공사가 제공하게 될 편리를 과감하게 포기할 용기는 나지 않는데, 이후에 보장받을 편리에 견주자면 먼저 살던 생물들을 쫓아내거나 산을 부수는 것쯤은 별 것 아니라는 확신 또한 들지 않았다. 머리도 마음도 복잡해졌다. 저울질에 답이 쉽게 나질 않았다. 그리고 그런 어정쩡한 마음 자체가 나를 더 불편하게 했다. 다만, 개발이라는 것이 단순하게 다다익선으로 생각할 일은 아니구나, 싶었다. 귀를 찌르는 듯한 소음을 들으며 심란한 마음으로 마둔 저수지에 다다랐을 때는, 도로공사로 인해 경기둘레길 일부 구간이 무너지고 막혀있어 주변을 한참 서성대다 우회로를 찾아 걸어야 했다. 소음에 시달린 탓인지, 느낌상으로는 상당히 많이 걸은 것 같은데 시간에 비해 그리 많이 걷지 못한 상태였다. 중천을 지난해의 기운은 한 풀 꺾였고, 나는 ‘어둡기 전에는 서운산에 들어서야 할 텐데’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급해졌다.


마둔 저수지 북쪽 면을 지나고, 새로운 마을에 들어섰다. 둘레길은 이 마을의 물길을 따라 계속 이어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걷는 동안 물길이 자주 보였다. 문득 이 물줄기가 어디에서 오는 것이고 어디를 향해 흐르는지 궁금해졌다. 핸드폰을 열어 지도로 내 옆의 물줄기를 짚어보았더니, 안성천에 합류하는 물줄기 중 하나가 마둔 저수지에서 오고, 마둔 저수지의 물은 다시 서운산에서 오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그래서 41번 코스는 대부분 물길과 나란히, 하지만 물의 흐름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나 있었고, 그래서 내가 걸어 통과하는 마을들의 옆으로는 언제나 작은 개울이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번에도 물길을 따라 별생각 없이 바쁘게 걷던 중, 난데없는 푸드덕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어디서 난 소리인가 싶어 얼른 주변을 돌아보았더니, 내 걸음에 겁을 먹은 물오리들이 부리나케 날아 도망가는 것이 보였다. 잘 쉬고 있던 오리들을 내가 쫓아낸 것 같아 오리들에게 미안하고 머쓱한 마음이 들었다. 여기선 사뿐사뿐 걸어야 하나 생각하며 가던 길을 계속 걸으려는데, 나 때문에 도망간 오리들이 쉬고 있던 개울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색이 조금 이상했다. 바닥이 전혀 비치지 않는 탁하고 누런 색상이었다. 물이 화학적으로 오염됐다면 그 색이 검은색이거나 탁한 녹색이어야만 할 것 같은데 어쩜 저렇게 흙색일까? 저 색은 폐기물 오염수의 색상은 아닌 것 같은데 대체 왜 저렇게 된 거지? 심하게 탁한 그 물이 무척 부자연스럽고 낯설게 느껴졌다. 심지어 우리나라보다 물에 석회 함량이 훨씬 높은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 봤던 것보다 그 빛깔이 훨씬 탁해서 더 이상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의 답은 내가 의도치 않게 서너 무리의 오리들을 더 쫓아낸 후 자연스럽게 찾아졌다. 내가 본 물의 색은 정말로 ‘흙’의 색이었던 것이다. 내가 따라 걷던 냇물의 위쪽에서도 개발공사가 한창이어서, 공사 중에 발생한 돌가루와 흙들이 개울물에 흘러들이 물의 색이 마치 진하게 탄 미숫가루처럼 변한 것이었다. 문득 오늘 걸었던 구간을 머릿속으로 되짚어보았는데, 2시간 가까이 걷도록 공사의 영향에서 자유로웠던 구간이 거의 없었음을 깨달았다. 금광호수의 박두진 문학길과 내가 사는 동네의 둑방길은 훨씬 걷기 좋은 곳이었어서 본격적으로 걷게 될 둘레길에 기대가 컸었는데, 내가 직접 걸은 41번 둘레길은 공사의 소음과 차들의 굉음으로 가득했다. 실망스러웠다.



내가 석남사 입구가 있는 상중리에 들어설 무렵, 시간은 어느덧 오후 4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한 시간 반 후면 해가 진다. 해가 이미 많이 넘어갔음이 공기로도 느껴지기 시작했다. 훈훈하던 기운은 줄어들고, 그 자리에 냉랭하고 어두운 공기가 조금씩 스미는 중이었다. 걷는 데 사용한 관절들이 슬슬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문득 오늘 아침부터 먹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게 생각났다. 길 찾고 걷는 것만으로도 바쁜데 여러 가지 끊이지 않는 소음들로 정신이 슬쩍 나가 있다 보니, 가방에 한 줌 챙겨 온 바둑알만 한 과자들도 전혀 손을 대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까지 배에 넣은 것이라곤 물 250ml가 전부인 셈. 하지만 여전히 허기는 지지 않았다. 다만 기운이 빠지는 것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고민이 됐다. 한 시간 후면 해가 지는데, 석남사와 서운산 봉우리를 거쳐 지금부터 최소 한 시간 반은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청룡사까지 갈 것인가. 아니면 지금 서 있는 석남사 입구에서 그만 안성시내로 되돌아갈 것인가. 석남사에서 시내로 돌아가는 대중교통으로는 100번 버스가 유일한데, 한두 시간에 한 번 들여다본 실시간 버스 도착정보에는 100번 버스의 움직임이 한 번도 포착되지 않았다. 내가 매번 버스 움직임을 놓친 것일까? 아니면 100번 버스는 더 이상 운행을 하지 않는 것일까? 가끔씩 눈에 띄었던 버스정류장들의 벽도 매번 꼼꼼히 살펴보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버스 배차 시간표는 찾을 수 없었다. 100번 버스를 제외한다면, 시내로 돌아가기 위한 방법으로는 택시가 유일한 상황. 하지만 내가 청룡사까지 걸어가면, 배차 간격은 길어도 어쨌든 움직임이 확인되는 20번 버스를 탈 수 있다. 고민이 됐다. 여기서 시내로 돌아간다면, 41번 코스를 이어 걷기 위해 택시로 이곳을 다시 찾아와야 하지만, 오늘 청룡사까지 걸어 41번 코스를 한방에 끝내면 돈도 아끼고 시간도 아끼고 뿌듯함까지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어째야 좋을지 고민하는 잠깐 사이, 해는 겁이 날 정도로 빠르게 가라앉고 있었다. 기온도 확연히 낮아졌다. 석남사 오르는 길목에서 우왕좌왕하며 갈등하던 나는 결국 택시를 타고 시내에 돌아가기로 했다. 어렸을 때부터 여러 번 들었던 이야기가 기억났기 때문이다. 산은 동네 뒷산이라도 결코 우습게 봐서는 안된다는 것, 그리고 산은 차라리 이른 시간에 올라가야지 절대 늦게 내려와서는 안된다는 것. 이 이야기가 생각나 욕심과 미련을 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돈이 많이 들더라도 택시를 부르기로 했다. 외진 곳이라 두 번째 콜에야 겨우 택시가 잡혔다. 예상 택시비 14,000원도 감지덕지한 마음으로, 약 20분을 기다려 택시에 탑승했다. 몇 시간 만에 푹신한 좌석에 앉아 쉬고 있자니 근육통과 한기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늘이 오늘 나의 하루를 수미상관으로 장식해주려 한 것일까. 택시에 탄 뒤 몰려온 피로에 정신이 멍해진 상태에서 무심히 살펴본 실시간 버스 도착정보에, 100번 버스가 내가 서 있던 버스 정류장에 10분 뒤 도착한다는 알림이 얄밉게 반짝이고 있었다.



확실히 오늘 하루 나는 운이 참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없는 운을 커버할 만큼의 준비성이나 침착함도 없었던 것 같다. 제대로 준비되어 있었다면 나는 41번 코스를 시작할 때도, 안성 시내로 돌아올 때도, 계획대로 버스를 타서 돈과 시간 모두 아낄 수 있었겠지. 하지만 청룡사에 가지 않기로 한 것은, 그 와중에 어리석음을 피한 좋은 선택이었다. 길 위에서 고민했던 당시엔 확신이 없었지만, 집에 돌아와 한숨 돌리고 나니 확실하게 보였다. 내가 오늘 마지막에 갈까 말까 고민했던 그 길은 내 체력, 해가 지는 속도, 초행길, 산길인 점 모두를 고려했을 때 가서는 안 되는 길이었다는 것이. 석남사 초입에 있을 땐 충분히 고민해볼 만하다는 생각으로 갈등했는데, 후에 조금 여유를 갖고 되돌아보니 갈등할 필요가 전혀 없는, 너무나 답이 명확한 문제였던 것이다.


무언가를 포기하는 결정은 언제나 어려운 것 같다. 정말 안 되는 것인가? 나에게 끈기가 없는 것은 아닌가? 쉬운 선택만 하려는 것은 아닌가? 나는 진짜 최선을 다 한 것이 맞나? 어떻게 더 해볼 여지가 정말 조금도 없나? 이런 마음속 검열관들 때문에 포기는 항상 쉽지 않다. 하지만 욕심을 내려놓고 너무 늦지 않은 때에 포기하는 것 또한 용기가 필요하고, 그 포기하는 용기를 내는 것이 오히려 최선을 다 하는 것인 경우가 더러 있다. 문제는 포기하는 것이 나의 최선인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나의 최선인지, 그 당시에는 알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그건 예전에도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다. 다만 나이가 더 어렸을 때는 포기하지 않는 것만이 용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포기하는 것 또한 용기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평소 운동이라고는 조금도 하지 않던 나의 다리는 둘레길의 41번 코스를 다 걸은 것도 아닌데, 주인 너 때문에 못 살겠다며 퉁퉁 부어 시위 중이다. 둘레길을 걷는 내내 들었던 돌과 쇠의 소음이 아직도 내 귓가에서 징징 울리는 것 같고, 중간중간 만났던 축사의 분뇨 냄새와 차들의 매연이 여전히 콧구멍에 들러붙어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문득 둘레길이 거의 다 이런 식일까 싶어 앞으로 걸을 일들이 덜컥 걱정된다. 오늘 걸은 41번 코스는, 즐기는 것은 차치하고 걸으며 무언가를 생각할 수도 없는 코스였기 때문이다. ‘걸어야 해서 걸었다, 그래도 스탬프는 찍었다’ 밖에 남지 않은 오늘의 걷기. 이런 식이면 60코스를 다 걷는 것이 내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지, 의미나 재미랄 게 과연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오늘 최소한 이 정도는 하자며 목표로 잡았던 것은 끝냈고, 완전 초심자 치고는 동선을 그럭저럭 잘 짜서 움직였던 것 같다. 시간 낭비도 많았고 돈도 쓸데없이 썼지만, 일단 사고 없이 집에 돌아왔으니 이만하면 다행이다. 주변엔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기에, 나만 알아 나 혼자 축하하는 무사귀환. 지치고 얼빠진 나에게 내가 상으로 맥주 한 캔을 하사하노니. 나여, 다음에 41번 코스 완주를 위해 석남사로 돌아갈 때는 부디! 100번 버스 탑승에 성공하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대와는 너무도 달랐던 첫 경기둘레길 걷기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