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라고 하던가. 태어나서 하고 싶은 일 중의 하나로 내 삶의 일부와 같은 테니스 이야기를 담은 책을 냈다. 책의 세 번째 장(章)의 제목이 '라켓 메고 떠나는 테니스 여행'이다. 그리고 오늘이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그 하루다.
여름이 시작되는 유월 초하루에 부천 365 ET 밴드 모임의 회원들 12명은 설렌 마음 가득 안고 '테니스 산책 일산 17주년 정모'가 열리는 강원도 횡성으로 떠난다.
테니스 소풍 길엔 봄꽃 사라진 자리에 어느새 초록이 우거지고 바람에 하늘거리는 길가의 노란 꽃들이 여름으로 바뀐 하늘의 볕을 한껏 받고 있다. 한가한 고속도로를 질주하여 예상 시간보다 빠르게 우리들의 모임이 있는 횡성 문화체육공원 테니스장에 도착했다.
개회식 전 만남은 또 하나의 행사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는 눈인사로,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과는 기본 악수에서 가벼운 포옹까지 어색함이 전혀 없는 것은 세월이 주는 선물이다.
오늘의 테니스 잔치를 한마디로 하자면 퍼펙트 그 자체였다.
아침 식사로 침샘에 눈 녹듯이 순삭 된 야채 김밥, 점심에는 다 비비기도 전에 마음이 성급해지는 웰빙 비빔밥, 갈증을 한방에 해소하는 스몰 캔맥주와 얼음 생수, 건강음료와 주류, 제철과일로 참외와 수박, 슬라이스 편육과 메밀 전 그리고 하얀 증편까지 맛은 최고 낭비는 최소로 하는 먹거리를 AI도 이만큼 준비를 잘할 수가 있을까.
공식 경기로 10조까지 잘 짜진 게임판을 살펴보니 벌써부터 근육이 씰룩거린다. 개회식을 마치고 조 별로 배정된 코트에는 초여름의 열기 속에 노란 공을 쫓아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전후좌우로 밟는 스텝들이 발바닥을 달군다.
공식 경기와 번외 경기까지 다 마친 후 폐회식에서 순위별 상품과 참가자 모두가 받아 가는 행운 상품까지 모두의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저녁으로 준비된 푸짐한 상차림으로 돼지고기 짜글이 한 상을 받은 모두의 표정이 밝고 환한 것은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준비한 것에 대한 만족스러움의 화답이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반갑기 그지없다.
초보 시절이 엊그제 같았는데 슈퍼 국화까지 오른 피오나님, 아직 스트로크가 살아있는 바람의 제왕님, 함안의 큰 언니 풍금소리님, 이제 우리는 대명을 떠나서 오빠고 형이며 누나고 모두가 테니스 가족이다.
오늘의 잔치를 준비한 일산의 운영진들,
서경지부 지부장 스피드님, 지역장 꿀동이님과 든든한 지원자 마니 대모님, 국밥 고문님, 서라포바님, 동분서주한 모나리자 총무님, 경기이사 숑가님과 포티올님, 깔끔공주님, 하이에나님, 히로뽕님,
이렇게 큰 규모의 행사가 완벽하게 치러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17년 동안 쌓인 노하우가 축적된, 섬세하고 노련한 기술이었고, 이것은 공중에 뜨는 볼 스매시 한방으로 깨끗하게 처리하는 퍼펙트한 게임과도 같았다.
아침의 설렘이 저녁의 행복으로 바뀌어져서 귀갓길에 오르고 라켓 메고 떠나는 테니스 여행의 한 페이지를 또 보탠다. 오늘은 테니스에 반하고 테니스 산책에 반하여 테니스가 내 삶의 일부임이 증명된 하루였다.
테니스 산책 서경지부 일산 17주년 정모에 이어 서울 창동 정모도 벌써 20주년 행사를 앞두고 있다. 이 기록은 동호인 테니스의 경이로운 역사며 백 년 후면 기네스북에도 오를 일이다. 이 거대한 모임 테니스 산책을 23년 동안 변함없이 묵묵히 이끌어가는 카페지기 응삼아제님께 감사드린다.
라켓을 든 자 어느 누구라도 테니스 산책에 오면 그 울타리 안에서 테니스로 행복해진다.
2025. 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