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켓 메고 떠나는 테니스 여행

이기지 않아도 괜찮아

by 조원준 바람소리


MC 붐과 이찬원이 진행하는 '딩가딩가'라는 티브이 프로그램이 있다. 휴일 아침 티브이를 켜다가 보게 됐다.

출연자들은 자기 분야가 아님에도 각기 다른 악기를 연습하여 관객 앞에서 발표하는 과제가 주어진다. 맨 먼저 한국 가요사의 레전드 기타리스트인 함춘호 선생님께서 오프닝으로 기타 연주를 하면서 감미로운 공간을 만들고 관객들은 연주 곡에 한껏 심취해 있다.

첫 번째 발표자는 걸 그룹 출신의 여가수 제아. 기타를 치면서 노래하는 과제다. 3개월 동안 연습 끝에 무대에 오르기 전에 그녀를 가르쳤던 선생님께 "연주하다가 틀려도 괜찮나요?"하고 묻자 너무도 쉽게 "그럼~ 틀려도 괜찮아" 하면서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내가 속해있는 365 클럽에서 6월 21일에 열리는 '부천시 협회장기 테니스 대회'에서 은배부에 6명의 선수가 출전하여 우승을 향한 출사표를 던졌다.


대회장은 전년도에 비해 많은 동호인들이 참석하였다. 개회식이 끝나고 각 클럽들은 관내 배정받은 코트로 삼삼오오 떠나고 우리 클럽과 같은 조에 속한 두 클럽도 예선전을 치르게 될 김포공항 근처에 있는 인-서울 코트로 자리를 옮긴다.


녹색 잔디코트에 선명하게 그어진 흰색 라인을 보니 마음이 고무되기 시작한다. 작전이 필요한 예선전이다. 우리 클럽 세 팀 중 전력이 최 약체인 한 팀은 오더 게임 상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희생 조로써 만성 부상에 시달리고 있는 나와 중, 하수급의 회원이 한 팀으로 카미가제가 되기로 했다.


세 클럽이 두 게임 씩 하여 승부를 가린 후에 두 클럽이 본선에 나가게 되는 예선전. 우리 클럽은 예상대로 작전이 먹히고 두 팀이 잘 싸워줘서 예선전 2승으로 조 1위를 하면서 본선 진출, 가방을 메고서 본선 1회전이 열리는 원미코트로 향한다.


본선 1회전은 바이를 타서 32강전이 첫 게임이 되었다. 예선전처럼 오더를 잘 짰고 나는 상대 클럽 대장 조를 만나서 1-6으로 참패를 당했지만 원하던 대로 작전은 주효했다. 우리 클럽 2번 조가 무난하게 1승을 하고 이어 3번 조도 1승을 챙겨서 16강에 진출한다.


8강 진출을 앞두고서 만난 클럽은 작년에 은배부에서 우승했던 클럽으로 전력이 고루 강하게 포진된 것을 알 수가 있다. 희생 조가 어디에 걸리든 작전이 통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코트마저 여유가 있어 3팀이 동시에 들어가서 플레이를 한다.


제일 빨리 끝난 팀은 당연히 희생 조다 볼을 몇 번 친 기억도 없는데 벌써 끝나 머쓱한 기분으로 2, 3번 코트에서 혈전을 벌이고 있는 남은 팀을 응원한다. 역시 작년에 좋은 성적을 거둔 만만치 않는 클럽이라는 생각이 든다.




8강 진출은 무산됐다. 출전한 선수들은 매 경기마다 최선을 다하고 온몸 불사르듯이 전력을 다 태웠으니 아쉬움이 없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 그동안 단체전에 참여했을 때보다 아주 편안한 대회였다.


나는 처음부터 희생 조라서 부담을 덜 느껴서일까? 그렇다고 책임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해볼 만한 상대라면 필승의 각오로 1승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벅찬 상대라면 동률 시 득실을 따지므로 한 게임이라도 더 따야 하기 때문에 볼 하나에도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예선전 첫 경기는 그런대로 해볼 만했는데 아깝게 놓친 상황이 있었다. 3-6 석패,

두 번째 경기 역시 무기력하게 대응했고 1-6 완패,

본선 32강전은 작전대로 상대의 최강 조를 상대하여 1-6패,

16강 전은 동시에 세 팀이 들어가 경기를 치른 결과 희생 조는 0-6 베이글 스코어로 참패를 당했다.




총전적 4전 4패...


"이기지 않아도 괜찮아."

"졌지만 잘 싸웠다."


이 말은 게임 전에 동료에게 걱정을 덜어주기 위하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고 경기 후 패자에 대한 위로이기도 하지만 내가 나를 위로하기에도 충분하였다. 그동안 출전했던 여느 대회 때와는 달리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나의 기량이 한계점에 이르도록 발휘했고 최선을 다 하면서 게임에 임했다.


예전에는 경기에 임할 때 심리적으로 위축이 된다거나, 전반적인 게임 상황에 부담을 느껴서 스트로크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다만 현격한 기량 차이로 상대가 강해서 먹히지 않았을 뿐 나는 나의 샷에 충실했고 스코어에 상관없이 잘 싸웠다고 생각하고 만족한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을 가끔씩 듣곤 했다. 보통 이 말은 잘 나가던 시절에 모두에게 인정받았던 사람이 세월이 흐른 후에 전성기 때는 아니더라도 아주 가끔 그때의 모습이 나왔을 때 듣는 소리다.


최소한 나는 아니었다. 옛 시절에 준치가 아니었는데 썩은 들 준치가 될 리는 만무하고, 그냥 잡어가 그대로 팔짱을 낀 채 세월만 보내버린 것 같았다. 잡어가 따라갈 수도 없는 현역 준치나 한물 간 준치를 상대하여 잡어 나름대로 유영을 했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게임하는 동안에는 볼에 집중하느라고 잘 몰랐는데 공항 근처의 테니스장 상공에는 어디서 날아오는지는 몰라도 시간 간격을 두고서 셀 수도 없이 많은 비행기들이 착륙을 한다. 나도 한 때 활주로를 이륙하여 창공을 날으며 고공 비행할 때가 있었는데 오늘의 나의 모습은 안전하게 착륙하는 저 비행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테니스 단체전 대회는 앞으로 내가 나의 기량 내에서 추구하는 방향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에 대해 나침판 역할을 해 준 대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타를 연주하다가 틀려도 괜찮은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라도 나의 기량 내에서는 그만큼만 충분히 발휘할 수만 있다면 ‘꼭 이기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배워가는 대회였다.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