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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시대...

어느 노인의 첫사랑 이야기...(2)

by 조원준 바람소리

광주에서 열린 소년체전 대표 선발 예선전 출전 소감을 말하자면 탁구는 한마디로 섬 개구리들의 바깥 나들이었다. 목적지인 광주에 도착하여 각 종목은 인솔자에 의해 해당 운동장으로 가고 탁구는 모 중학교 실내 체육관으로 각각 이동을 한다.

체육관에 도착하자마자 각 군에서 참가한 대표선수들의 운동복들이 알록달록하다. 특히나 탁구 명문으로 알려진 여천군과 광주를 대표하는 선수들의 감색과 흰색의 조화로 세련된 운동복과 주황색 포인트가 다소 촌스럽게 보인 우리의 복장과 비교를 해보니 벌써 주눅이 든 듯하다. ‘촌에서는 좀 멋져 보였는데...’

예선전 1차전 경기는 화순중학교였다. 세 번째 단식에 출전한 소년은 전에 벌어진 두 경기가 모두 패해서 마음의 부담이 없어서였을까? 상대 팀에서 최고로 약체였는지는 몰라도 그 선수를 상대하여 전패를 면한 1승을 하였고, 예선전 2차전은 내리 세 경기를 패해서 일찍이 예선 탈락을 확정 지은 후 체육관을 빠져나와 인솔하신 선생님의 뒤를 따라 중화요리 집으로 향했다. 점심으로 주문한 음식은 그 맛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자장면 곱빼기였다.


학교에서도 테니스와 수영 외에는 애초부터 성적은 기대하지도 않았고, 도 교육청의 종목 수 출전 의무를 채우기 위해서 탁구는 그냥 참여하는데 의미를 둔 종목이었던 것 같다. 공용버스정류장으로 택시를 타고서 가면서 소년은 시골 동네에서 탁구를 잘 치고 적수가 없다고 말을 듣고 그런 줄만 알았는데 세상이 참 넓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그 당시에는 광주에서 하행 길로 나주 다음으로 영암 초입까지 아스팔트로 포장이 돼있었지만 그곳을 지나 흙으로 된 도로에서부터 잘 달리던 버스는 60km/h 서행으로 속도가 느려지고 군데군데 패인 곳 지날 때마다 덜컹거림으로 인해 졸았던 눈에 생기가 돈다. 밤 10시면 완도에 도착하겠구나. 하면서 오후 6시가 되었지만 아직은 환한 바깥 풍경을 바라보니 저 멀리 플라타너스의 넓은 잎사귀가 부채질 마냥 살랑거리고 있다.




따닥따닥 따닥따닥,,,

따닥따닥 따닥따닥,,,


광주에서 개최된 소년체전 예선전을 다녀온 후에도 훈련은 계속되었고 제일 끝에 있는 연습용 탁구대는 네트를 마주 보면서 랠리를 하는 두 선수가 흘리는 비지땀으로 군데군데 젖어 있었다. 탁구선수로는 소년과 같은 학년 2명 그리고 2년 후배 3명 총 6명이서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내년을 대비해서 연습에 전념하고 있지만 학교에서는 그만큼의 기대는 없는 것 같았다.


다만 우리의 마음을 식지 않게 해 주시는 분은 탁구장 사장님의 관심과 열정 덕분이었다. 소년은 선수의 의무로서가 아니고 탁구가 정말 재미있었다. 사장님이 디펜스만 해주는 랠리 스트로크가 30초 이상 끊이지 않고 이어질 때 구경하는 사람들도 신기하듯이 쳐다보면 마음속으로 얼마나 으쓱해졌는지 그 기분에 공부를 등한시할 정도로 탁구에 푹 빠져 있었다.


탁구에 빠진 소년의 학교 성적은 3학년 약 280명 중 평균 20등 유지하였다. 그다지 나쁜 성적은 아니었으니 고교평준화 정책으로 연합고사를 봐야 했기 때문에 명문고 입학에 대해서는 학교나 가정에서 지금의 고3처럼 입시전쟁을 치를 할 필요가 없었고 소년 또한 때가 되면 시험장으로 가서 보면 되는구나 하는 마음이라서 공부보다 더 우선인 것이 탁구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등한시할 수 없고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 학교 성적이었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탁구를 계속 치려면 학년에서 평균 20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나름 공부도 열심히 하였다. 이렇게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중에 계절은 어느덧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기억으로는 늦가을쯤으로 생각한다. 광주에서 치르는 연합고사를 보고 난 후에는 수업도 느슨해지고 찾아오는 해방감으로 탁구에만 집중을 하게 됐다.


이제 겨울이 되어 방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쌀쌀해진 날씨에 탁구장에도 연탄난로가 놓이고 유리 창문까지 길게 이어지는 연통 끝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서 겨울을 실감하게 하였다. 탁구부도 후배들이 주도하여 소년은 이제 주장이었던 무게감이나 의무감도 느끼지 않아서 마음이 홀가분해진 상태로 탁구장을 들락거렸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 먹고 탁구장으로 갔다. 좀 이른 시간인지 난로도 피워지지 않아서 새벽의 냉기가 탁구장 안을 감싸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서브 연습밖에 없었다. 공을 하늘 높이 올려서 임팩트 시 회전을 주는 고난도의 스카이 서브다. 내려오는 공과 임팩트 타이밍을 잡기 위해서는 반복 숙달 연습을 해야 만이 실전에서 실수할 확률이 낮아진다. 어쩌면 사람들에게 근사해 보이려고 하는 마음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이때 식당과 연결된 작은 문이 열리더니 소년의 사부이자 식당 사장님께서 들어오신다.


"원준이는 일찍 나와서 연습도 하고 참 부지런하구나~"

"네!!!"

"오늘은 나랑 연습 좀 하자"

"네에~"


인사와 대답을 하면서 아저씨를 쳐다보니 아저씨 옆에 따라온 소녀가 초롱한 눈을 반짝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다.


'아...'

그 소녀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 여자 아이였고 하마터면 "와~ 너 참말로 예쁘다".라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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