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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Feb 02. 2023

나는 한 번도 엄마를 좋아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1)

생각보다 차가운 날씨에 몸은 한층 더 움츠러든다. 꽁꽁 싸맨 얼굴 그 어딘가의 틈으로 기어이 바람이 파고든다. 두툼한 장갑 너머 몸을 숨기고 있던 손가락도 조금씩 감각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이왕 집을 나섰으니 별 방법은 없다. 그저 더 속력을 내어 자전거 페달을 밟는 수밖에. 바람에 한 번씩 자전거가 휘청일 때마다 오늘은 그냥 건너뛸 걸 이 날씨에 무슨 사서 고생인지 후회가 막심하다. 적막한 어둠 속 인적마저 드문 겨울의 새벽길을 뚫고 드디어 산입구에 도착했다. 해가 조금 길어진 탓에 며칠 전과 달리 하늘은 짙은 어둠만을 품고 있진 않다. 푸르스름한 빛이 물을 잔뜩 머근 수채 물감처럼 엷게 퍼져 있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몇몇 부지런한 이들은 벌써 산에서 내려와 내 곁을 스쳐 지나간다. 자전거를 주차하고 그들이 밟고 지나온 길을 따라 나도 서둘러 산속으로 들어간다.



이런 날씨엔 산을 찾는 사람들이 확실히 줄어든다. 덕분에 혼자만의 상념에 더 깊이 빠져들 수 있다. 잦아든 바람 속 공기는 차갑지만 상쾌하여 조금 전까지 집을 나선 걸 후회하던 내 모습을 잊은 지 오래다. 직박구리와 청설모들이 부지런히 아침을 맞이하고 있는 오솔길을 걸으며 지금 내 마음을 온통 장악하고 있는 어둠을 살며시 건들려 본다. 빨리 떨쳐내야 하는데. 며칠째 이것 때문에 아무것도 못한 채 인생의 패배자 같은 자괴감에 빠져 있다. 이젠 그런 내 모습이 좀 질리기까지 한다. 지금 이 길을 거닐며 어떻게든 생각을 정리하여 마음을 다잡으려 한다. 어제 읽은 책 속의 위로 같은 한 구절을 떠올리며 조용히 날 타이른다.

'행복해지는 건 쉽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거나 혹은 아주 조금만 기대하거나'



그래, 그럴 수도 있다 생각하자. 본인도 지금 힘든 거지. 아직 철이 덜 들어 그런 걸 내가 잘 못 가르쳐 그런 걸 어떡하냐.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야지. 부끄럽지만 나는 다른 부모랑은 다르고 내 새끼들 역시 뭔가 다를 거란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여태껏 가지고 살아왔다. 그 모든 것들이 혼자만의 착각이란 걸 이번에 그놈이 확실히 일깨워 주었다. 지난 시간 누구보다 열심히 새끼들을 거두고 가정을 꾸려왔지만 결국 자식으로부터 원망의 소리밖에 못 들으니 솔직히 허탈하다. 할 만큼 아니 정말 죽을 만큼 내 몸을 쥐어짜라 가면서 가족을 위해 헌신했는데. 그렇다고 그 시간들이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도 아니고 더더군다나 뭔가 보상받으려고 한 것 또한 아니다. 그저 쓸데없는 지나친 책임감과 의무감에 본능적으로 그리 했을 뿐이지. 그래도 모두들 조금은 알아주길 바랬는데. 억울하게 여겨봤자 나만 상처받고 괴롭지 정작 그놈은 지가 무슨 짓을 했는지 별 생각도 안 하고 있을 게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내가 주는 편안함만을 쏙쏙 빼먹을 테고 언제나처럼 나의 수고는 너무나 당연시 여길 것이다. 지 눈엔 언제까지나 자신은 갑이고 엄마인 나는 을일 거란 큰 착각에 빠진 채로.




설날을 앞둔 2주 전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며 몇 달 만에 집에 온 아이는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둔한 남편의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엄마인 난 자식의 아무리 작은 변화라도 다 알아차린다. 약간 심란해 보이는 게 무슨 근심이 있는 듯했다. 처음엔 혹시 여자친구와 헤어졌나 그런 생각도 잠시 가졌다. 듣자 하니 요즘 4학년 선배들 임용 면접이 한참 진행 중이라 한다. 3월이면 본인도 곧 4학년이 될 테고 4월엔 바로 한 달간 교생 실습에 11월엔 초등 임용 시험까지 치러야 하니 아무리 낙천적인 아이라도 사뭇 진지해질 수밖에. 입학하고 그동안 내내 탱자탱자 놀던 놈이라 앞에 놓여진 묵직한 현실들이 꽤나 부담스러울 것이다. 외면하고 싶어도 이젠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없고 막다른 곳에 몰렸다. 공부하는 걸 누구보다 싫어하는 놈이지만 다른 동기들처럼 공부에 매진하는 수밖에.



설날에 다시 집에 온 아이는 왠지 모든 걸 어색해했다. 집에 오면 소파에 앉아 잠시나마 나랑 수다도 떨고 하는데 그런 것도 없이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냥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좋아하는 롤케이크를 일부러 자기를 위해 만들어 놓았건만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지만 묘한 거리감마저 느껴졌다. 그러곤 집에선 잠만 자고 그저 밖으로만 돌아다녔다.



아이를 바라보는 나 역시 많이 불편했다. 아니,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동안 아이에게 켜켜이 쌓여 있던 불만이 좀 많았다. 언제 한번 말을 꺼낼까 생각 중이었다. 아이는 밖에선 그리 잘하면서 집에만 오면 여전히 삐딱한 사춘기 같은 모습을 한다. 가끔 냉소적인 말투로 날 몰아붙이기까지 하고 그저 지 편한 대로만 할 뿐 가족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좀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다가도 그냥 이대로 놔두면 그게 습관이 되어 나중에 이놈한테서 괄시받을까 봐 걱정도 된다.



저녁을 먹으며 며칠 전 여자친구와 차를 빌려 군산에 여행을 갔다 왔다는 말을 한다. 운전도 그리 능숙하지 않은 데다 학생이 무슨 돈으로 가끔 차를 빌려 놀러 다니는지 영 맘에 들지 않는다.(물론 요즘 대학생들은 그게 일반적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게다가 들어보니 여행 갔다 온 날이 얼마 전 내가 대학병원에서 간단한 수술을 받았던 날과 비슷하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아이에게 언제쯤 엄마가 수술받는다고 얘기를 했었다. 그러면 그즈음에 전화라도 한통 했음 얼마나 감동받았을까마는 전혀 생각 않고 여행을 떠나 그걸 또 내게 얘기한다. 사실 좀 많이 서운했다. 게다가 명절이라 집에 오면 뭐라도 하나 사 오면 좋을 건데 너무나 당연히 빈손이다. 아이가 뭘 몰라서 그러나 싶어 앞 전 집에 왔을 때 이번 설날엔 빈 손으로 집에 오지 마라 일부러 당부했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무슨 선물을 사 오라는 그런 의미는 결코 아니다. 그래도 집에서 첫째고 5살 어린 동생도 있는데 용돈 외에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도 있고 하니 가족들을 좀 생각하라는 뜻이었다. 마트에서 과자나 아이스크림 몇 개만 사 와도 너무나 대견했을 것이다.  



집에 오면 아직도 자기가 중고등학생인양 이불 정리는 말할 도 없고 외출할 땐 허물 벗듯 옷을 벗어놓고는 그대로 몸만 빠져나간다. 매번 올 때마다 집은 숙박업소처럼 엄마, 아빠는 그저 자기한테 필요한 걸 챙겨주는 사람으로만 여긴다. 그래도 집에 온다고 하면 평소에 못 먹었던 것들, 갈 때 싸가지고 갈 음식 장만까지 몇 날 며칠을 부엌에서 살아야 하는데 빈말이라도 설거지 한 번 해줄까 소리를 않는다. 설거지 한번 해라 대놓고 얘기하면 매번 다음을 외치기만 할 뿐이다. 가족들 생일은 단 한 번도 챙기지 않고 껌하나 선물하지 않으면서 이번 설날 연휴 전날이 여자친구 생일이라고 차가 많이 막히는 연휴 당일에서야 집에 왔다. 아마 여행도 여자친구 생일을 겸사해서 다녀온 것 같다. 물론 그 나이에 그런 상황들이 충분히 이해는 되지만 가족들 생각도 여자친구나 다른 친구들한테 하는 것 반의반이라도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2주 전에 집에 왔으니 설날엔 굳이 안 와도 된다고 해도 어떻게 설날인데 집에 안 오냐며 대단히 예의에 밝은 놈처럼 말하더니 정작 세배할 생각도 않는다. 해마다 내가 세배를 해라 하면 그때서야 겨우 하고 세뱃돈만 챙기곤 했는데 이번에 가만있었더니 결국 할 생각도 않는다.



이제껏 내가 그리 키워 그런 건데 누굴 탓할 수 있을까. 이걸 치사하게 얘기를 해야 하나 아님 아직 철이 좀 들 때까지 그냥 기다려야 하나 나 역시 매번 갈등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올 때마다 이러니 집에 온다고 연락이 오면 반가운 맘과 동시에 그러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아이가 이런 사실을 잘 모를 수도 있으니 일단 얘기를 하고 고치도록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씩 앞서기 시작했다.



아이가 다시 집을 떠나기 전날밤 잠시 얘기 좀 하자고 아이 방에 들어갔다. 아이도 낌새가 조금 예사롭지 않은 걸 느꼈는지 갑자기 방에 널브러진 옷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처음엔 공부 때문에 힘들어할 아이에게 위로와 격려를 건넸다. 그리고 최대한 차분히 그동안 아이의 행동에 대한 서운함과 고쳤음 하는 부분에 대해 얘기를 이어갔다. 요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집을 더 이상 숙박업소 취급 하지 말 것, 가족들을 조금 더 생각하고 챙겨줄 것. 그러나 하다 보니 조금 감정이 몰입되어 쓸데없는 소리까지 하게 된다. 엄마도 이나이가 많아 여기저기 아프고 힘이 부치는데 언제까지 그렇게 막 대할 거냐, 어떻게 설날인데 세배할 생각도 않냐, 앞으로는 엄마도 엄마 인생을 위해 살 거니깐 그리 알아라.



내 얘기를 듣는 아이 얼굴이 점점 빨개졌다. 표정에서 뭔가 미안해함도 느껴졌다. 한참을 마음에 묻었던 얘길 내뱉고는 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할 말이 없냐고. 본인에게도 나름 변론의 시간을 주고 싶었다. 그러자 예상치 못한 아이의 행동에 순간 당황하게 된다. 두 손을 뻗어 내 손을 잡고는 온몸을 떨면서 조용히 흐느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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