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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Mar 20. 2024

건조해진 뇌를 다시 촉촉하게

언제나 10분 지각인 강사의 시간에 맞추다 보니 나 역시 수업시작 전 아슬아슬하게 강의실 문을 연다. 빈자리를 찾아 앉고서 주위를 둘러보니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영어 원어민 강사의 대변인 노릇을 도맡아 하고 있는 그녀는 암묵적인 이 수업의 반장이다. 싹싹하고 상냥한 데다가 그렇다고 나대는 성격도 아니다. 게다가 가지고 있는 미국 주식이 간 밤에 기분 좋은 소식을 알릴 때면 두 손 가득 간식까지 종종 챙겨 오는 인심 또한 후한 사람이다. 수업 후 몇 번 점심을 같이 해서인지 그녀의 부재에 내 맘도 살짝 허전해온다.



어김없이 오늘도 지각을 한 강사가 숨을 헐떡이며 들어와서는 수업 참석자들의 얼굴을 쭉 훑어본다. 강사 또한 그녀가 보이지 않자 이름을 들먹이며 다소 서운해한다.

"Lynn is not here"

그때 어디선가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No"

필기구만 놓인 채 비워있는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키며 잠시 집에 볼 일이 생겨 갔다며 곧 다시 올 거라 누군가 말한다. 친절하게도 그녀가 자리를 비운 이유까지 영어로 덧붙인다. 다리미를 끄지 않고 집을 나섰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단다.



같이 어울려 점심을 먹기 전까진 그녀는 그런 실수와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인 줄 알았다. 미드와 일본 드라마를 즐겨볼 만큼 영어와 일어에 능한 데다 나는 당최 어려워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미국 주식과 비트 코인까지 두루 섭렵한 똑똑한 사람이다. 그녀 입에서 술술 나오는 미국 기업 이름들과 실적들은 내 귀엔 또 다른 외국어로 들릴 뿐이다. 독서모임도 열심인지라 읽고 있는 책들도 다 대단한 것들이다. 잠시뒤 아무 일 없는 듯 강의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온 그녀의 얼굴을 보니 별 탈은 없었나 보다. 천만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동시에 순간 그녀의 실수가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우린 둘 다 사춘기보다 더 무섭다는 오춘기에 접어들어 비슷한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겪고 있는 중이다. 그녀가 19개월 언니이긴 하나 600개월 이상 살아온 내겐 그건 그리 의미 있는 숫자가 아니다. 그녀는 생각지도 않은 일이겠지만 나로선 조금 더 빨리 갱년기와 본격적인 노화 단계에 접어든 그녀를 통해 적잖은 위로와 동지애를 느끼곤 한다. 혼자라면 다소 심란할 여러 증상들도 같이 웃고 떠들다 보면 그리 크게 와닿지 않게 된다.




요즘 가장 속상한 일은 뇌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 촉촉하고 반짝이던 것이 어느새 바싹 말라 안구 건조증에 걸린 내 눈 마냥 수시로 흐려진다. 눈물약을 넣으면 일시적이나마 선명해지는 눈과 달리 이 놈의 뇌 건조증에는 적절한 약도 없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어려운 수학 미적분 인강을 아이와 함께 듣고 문제 풀이까지 해주었다는 사실은 나에게조차 머나먼 전설로 여겨진다.



그로 인한 불편함은 한 둘이 아니다. 우선 몸이 받아들이는 다양한 감각을 뇌가 빨리 정리를 해주지 못하니 항상 몇 박자씩 늦게 인지하게 된다. 무언가 실시간으로 빠르게 판단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할 경우에는 아예 머릿속이 하얘져 처음부터 그냥 손을 놓는다. 아이랑 같이 하는 몇몇 게임들은 이런 증상들을 보다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이는 멍청한 내 모습에 매번 즐거워하며 손뼉을 치며 웃곤 한다. 나도 따라 소리 내어 웃지만 그 단순한 상황도 기억하지 못해 매번 엉뚱한 행동을 하는 내 모습에 남모를 수치감과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아울러 눈과 귀가 입이랑 따로 놀아 뻔히 보고 들어도 생뚱맞은 소리를 하곤 한다. 머릿속 생각을 논리 정연하게 말하는 것도 힘들어져 종종 본래의 취지와는 다른 소리를 한다. 무슨 말을 해도 깔끔하게 마침표를 찍지 못하여 말줄임표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언제가 TV에서 봤던 입만 열었다 하면 4차원 취급당하던 한 연예인의 모습이 서서히 내게 겹쳐지고 있다.



까마귀 고기를 먹은 듯 시도 때도 없이 깜빡깜빡하는 건 어느새 일상이 돼버렸다. 금방 보았던 영어 문장이 떠오를 듯 말 듯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기억을 더듬으려 애쓰면 오히려 더 멍해질 뿐이다. 영어뿐 아니라 평생 써 온 한국말도 마찬가지다. 최근 들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말이 있다.

'그거 있잖아, 그거'

그래, 바로 '그거'가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 몇몇 초성들만 혀 끝에서 맴돌 뿐 음성화되지 않는 '그거'때문에 우스꽝스럽지만 'ㄱ'부터 'ㅎ'까지 모음들과 하나씩 짜 맞춰보기도 한다. 그러다 유레카처럼 단어가 떠오를 때면 말로 다 못할 시원함을 느끼게 된다. 끝까지 검색창을 열지 않고 혼자만의 힘으로 '그거'를 생각해 낸 사소하고 당연한 그 일이 내겐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모른다.



해야 할 무언가가 생각날 때면 바로바로 처리하든지 아님 반드시 메모를 해야만 한다. 잠시만 뒤로 미루면 그 순간부터 정말 까맣게 잊게 된다. 언제부턴가 휴대폰 알람이나 타이머 설정이 잦아지고 메모 양 또한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기가 찬 건 가끔 알람 소릴 듣고 왜 설정했는지 메모장에 적힌 암호 같은 짧은 단어들은 또 뭘 말하는 것인지 내가 한 것들이지만 잠시 생각에 빠지게 된다. 두 살 많은 남편도 나보단 증상은 덜 하지만 비슷한 수순을 밟고 있다. 그가 사용하고 난 다음 화장실에서 대신 물을 내려주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물론 그는 아니라고 펄쩍 뛰지만.



"엄마, 엄마는 그렇게 심각한 정도가 아냐. 우리도 종종 그래. 그런데 문제는 엄마가 노력하려고 안 한다는 거야. 게임할 때 보면 카드를 다시 뒤집기 전 무슨 그림이었는지 어디에 있던 건지 엄마는 전혀 기억할 생각을 안 해. 처음부터 포기를 해. 어떤 그림이었는지 기억하려고 그냥 노력할 뿐이지 나도 별 방법은 없어"

카드 맞추기 게임에서 또다시 대패를 하고 난 뒤 심란한 맘으로 아이에게 그 비결을 물었다. 전교 1등이 기억하는 방법은 뭔가 다를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이제부터 나 앞에서 노화니 머리가 안 돌아간다느니 그런 말 하지 마. 듣기 싫어. 아빠 하고나 해"

친구들이 묻는 건 다정히 잘만 가르쳐주더니 무심한 지지배...



그런데 듣고 보니 아이 말이 맞긴 맞다. 언제부턴가 머리 아프게 생각하고 신경 쓰는 일은 피하고만 싶어졌다. 이제껏 살아온 방식이 있으니 그래도 계속 부지런히 머리를 쓸려고 하긴 한다. 하지만 예전에 없던 경계선을 하나 만들어 놓고는 그 이상은 잘 넘어가려 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 그걸 넘어야 할 때가 종종 있지만 이젠 귀찮아져 도중에 그대로 멈추다 보니 뭐든 대충이 돼버린다.



영어 공부를 하는 내 모습에서 이런 사실을 더 잘 발견할 수 있다. 기특하게도 영어 단어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으나 그 방법이 다소 아쉽다. 이거라도 해도 머리가 덜 녹슬 것 같아 억지로라도 꾸역꾸역 하고 있지만 그냥 막무가내 외우기만 할 뿐이다. 연상법이나 스토리텔링등을 이용해 한번 더 생각하고 암기를 해야 나중에 다시 잘 기억이 날 텐데 그것까지는 내 뇌가 할 수 없단다. 분명 알고 있는 것임에도 날 놀리듯 혀끝에만 머물려 있는 단어들 때문에 약 오르는 순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내 뇌가 이젠 만사 귀찮아하고 있다. 게으른 땅은 메마를 수밖에 없다.



노화와 뇌의 게으름이 과학적으로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잘은 모르겠으나 분명 있긴 한 것 같다. 실제 주변을 보면 또래나 나보다 연상인 그룹에서 귀찮다는 단어를 입에 고 사는 사람들이 보다 자주 눈에 띈다. 물론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일정 나이 이상이 되면 누구나 인지력이 서서히 감퇴된. 하지만 계속 부지런히 돌리다 보면 속도는 다소 떨어지더라도 멈춰서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한 번씩 전기가 나간 것처럼 멍해지는 순간을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



한때 나의 장점이었지만 지금은 잠시 집을 나간 두 친구들이 있다.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예리한 관찰력, 그들을 다시 소환하기로 했다. 메마르고 지친 나의 뇌도 반가운  친구들을 보게 되면 조금 더 힘을 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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