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피터팬이기를 바라는 한 사내가 있다. 복잡한 세상사는 모두 뒤로 젖혀두고 그저 놀고만 싶은 맘이 간절하다. 허나 야속한 세월은 그를 언제까지 네버랜드에 머물게 두지 않았다. 생각하는 거라곤 여전히 철딱서니 없고 미성숙하나 몸뚱아리는 어느새 무르익을 만큼 무르익었다. 지 아비도 그 정도는 아니건만 얼굴엔 산 도적 같은 수염이 덥수룩이다. 아침에 면도를 해도 오후가 되면 다시 꺼뭇해지는 게 몇 년을 지켜봐 왔지만 영 적응이 되지 않는다. 고등학생 때부터 하나 둘 나기 시작한 새치는 이젠 제법 쉽게 눈에 띄고 뻣뻣하다 못해 만지면 찔릴 것 같던 머리카락도 언제부턴가 소금 뿌린 배춧잎마냥 숨이 죽기 시작했다.
물리적 변화만 있는 게 아니다. 그건 본인 스스로 오래전부터 느껴오던 터라 별 어색하지도 않다. 오히려 그런 몸뚱이이기에 여자 친구와 진한 스킨십이 가능하여 고맙기만 하다. 정작 부담스러운 것은 그에게 요구되는 나이에 걸맞은 사회적 위치와 역할이다. 대학생 때는 그저 학교만 다니면 만사 OK였다. 그 나이에 굳이 성적표를 부모에게 보일 필요도 없고 부모 역시 다 큰 자식 성적엔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교대를 다녔기에 진로는 확실했고 학과 공부도 그리 심각하지 않아 놀며 적당히 하기 딱 좋았다. 하지만 달콤하기만 했던 4년이란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자 모든 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고등학교 친구들은 이미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여 대학 3, 4학년이다. 같이 어울리던 대학 동기들은 아직 군입대는 안 했지만 모두 임용에 합격하여 초등학교 선생님의 신분이다. 그만 혼자 어정쩡한 위치에 놓여 있다. 학교는 이미 졸업했고 임용 시험에 떨어져 도망치듯 입대한 군생활도 이젠 제대가 몇 달 남지 않았다. 제대와 더불어 열심히 공부해 그 해에 꼭 임용에 합격하겠노라 큰 소리를 치며 입대했다. 하지만 막상 제대가 코 앞에 닥치자 마음이 처음 같지 않은 듯하다. 이젠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없기에 자신만의 네버랜드에서 지내긴 이래저래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공부가 영 체질이 아니라는 건 모두 익히 알고 있지만 부모 앞에서 한다는 소리가 듣는 이의 맘을 더 불안하게 만든다.
"나는 그냥 평생 놀기만 하고 살면 좋겠다"
음양오행의 이치는 잘 모르지만 사주를 따지고 보면 그는 태생부터 남다른 게 분명했다. 일 년 중 피터팬의 기운이 가장 강한 날 이른 아침에 첫울음을 터트렸으니. 예정일을 일주일이나 앞두었지만 갑자기 어미 뱃속을 나가겠다 전날 밤부터 발버둥을 쳤다. 어차피 세상에 나가야 할 것 이왕이면 며칠 앞당겨 본인 좋은 날짜를 택한 것이다. 덕분에 그는 나이와 상관없이 죽을 때까지 평생 어린이날에 대접받을 팔자를 가지게 되었다. 나중에 결혼을 하고 자식이 태어나면 아마 한동안 새끼들의 원망을 들을 테다. 아니 어쩜 내가 그 원망을 들을 수 있겠다.
"할머니, 왜 아빠를 어린이날 낳았어요? 내가 선물 받아야 하는데 아빠가 자꾸 생일 선물달래요"
평소 다소 게으르단 소릴 듣는 그이지만 노는 것에 관한 한 누구 못지않은 부지런함을 자랑한다. 노는 데 생일만큼 좋은 구실도 없다. 축하를 받는다는 명목하에 신이 나서 여기저기 약속을 잡는 건 그로선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대학을 가고 집을 떠나 자취를 하는 동안에도 꼭 본인 생일 때만큼은 집으로 귀환했다. 대학 친구들이랑은 일찍 감치 한바탕 축하를 받은 뒤다. 본가에 있는 가족과 이곳 친구들의 차례가 남아있다. 내 입장에선 생일 때 굳이 안 와도 되는데 뭘 그리 꼬박꼬박 챙겨 받으려 오는지. 정작 부모 생일 때는 전화 한 통으로 입을 싹 닦으면서 본인 생일 때는 꼭 밀린 빚 받으러 오는 빚쟁이 같다.
한 번은 어찌 된 일인지 생일 때 못 온다는 연락이 왔다. 여자 친구와 약속을 잡은 듯했다. 속으론 쾌재를 불렀지만 짐짓 아쉬운 체하며 생일 축하금을 보내줬다. 생일상을 못 차려주니 이 돈으로 그날 여자 친구와 맛있는 거라도 사 먹어라고. 아울러 가족들과 어설픈 축하 동영상까지 찍어 보내줬다. 그런데 그 모든 걸 홀랑 받아먹고는 갑자기 생일 다음날 집으로 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아쉬웠던 모양이다. 결국 돈은 돈대로 받아먹고 내가 차려준 생일상은 생일상대로 또 받아먹었다.
아이는 올해도 어김없이 생일을 맞아 집을 찾았다. 이번엔 민간인이 아닌 군인의 신분이다. 작년 5월에 첫 휴가를 받았기에 그때도 생일에 맞춰서 나온 줄 알았는데 아니란다. 입대한 지 100일이 되지 않은 시점이라 안타깝게도 생일 때는 휴가를 받지 못하고 2주 지나 온 거라 했다. 당시 첫 휴가 나온다고 이것저것 음식을 준비했더니 그걸 생일상으로 착각했나 보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맘이 짠해오는지 우리의 피터팬이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생일을 군에서 보내니깐 기분이 영 그렇더라"
생일을 1주일이나 앞두었지만 아이 스케줄을 이미 빡빡하다. 휴가 나온 다른 군동기를 만나야 하고 가족이랑 낚시 여행도 가야 되고 외식하러도 가야 된다. 세상 제일 맘 편한 이곳 친구들과도 당연히 약속이 잡혀 있다. 그렇게 일정을 보내고 나면 초등 교사인 여자 친구가 연휴를 맞아 기차를 타고 오기로 했단다.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생일 전에 모든 행사를 다 마무리한 뒤 생일 당일엔 여자 친구와 단 둘이 보내겠단 뜻이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휴가 나와 잠시도 쉬지 않고 잠까지 줄여가며 노는 아이의 모습이 참 대단하다 싶다. 저렇게 공부를 했음 임용 시험에 바로 합격했을 텐데.
아이가 집에 오면 나는 항상 비상이다. 남편과 나 둘일 때와는 다른 밥상을 준비해야 한다. 제 딴엔 간만에 먹는 집밥이라 은근 특별한 걸 기대하는데 그게 내겐 왕부담이다. 바로 앞 전 휴가땐 뭔가 지 입맛에 안 맞았는지 사사건건 트집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더 신경 써야 한다. 생일 땐 집에 없을 거라 하니 앞당겨 아이가 원하는 날에 생일상을 준비했다. 좋아하는 딸기 케이크도 만들고 팥을 넣은 찰밥에 잡채, 미역국, 갓 담은 생김치, 생선까지 구워 한 상을 차려줬다. 생일 축하금까지 증정하니 기분이 좋은지 표정이 환하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그의 얼굴엔 이런 말이 쓰여 있는 듯하다.
'그래, 바로 이 맛에 생일날 집에 오는 거지'
아직 철이 덜 든 것 같아 안타깝긴 해도 그래도 내 새끼라 잘 먹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긴 하다. 뭐 이깟 생일상이 뭐라고. 결혼을 하고도 내가 차려주는 생일 밥상이 먹고 싶음 언제든 차려줄 수 있다. 이 밥을 먹고 마술이 풀린 듯 피터팬의 거죽을 벗고 듬직한 청년의 모습으로 다시 거듭날 수만 있다면야 백번 아니 그 이상도 해줄 수 있다.
남편과 나는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 임용에 몇 번 떨어진다고 해도 조용히 기다려 줄 것이다. 사실 별 다른 방법도 없긴 하니. 말은 이렇게 해도 학원 한번 다니지 않고 단번에 대학 합격한 기특한 놈이다. 지 동생에 비하면 대학 등록금도 4분의 1밖에 되지 않아 그저 공부시킨 거나 마찬가지다. 중, 고등학생 때 적성에 맞지도 않는 공부를 내가 너무 몰아붙인 탓에 그 부작용으로 대학 가서 공부를 놓은 점도 분명 있다. 집을 떠난 대학 4년이 그에겐 너무나 행복했던 네버랜드였을 게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를 수 없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에 꼭 끼워 맞출 필요는 없다고 말로는 하긴 쉽다. 그게 내 새끼가 아니면 더더욱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그에 맞는 모습으로 변해 가야 하는 게 순리다. 능력 없는 부모를 두었거나 타고난 뛰어난 재주가 없다면 다른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처럼 묵묵히 이 사회에 적응해 가는 게 맞다. 네버랜드는 동생들에게 물러주고 그곳에서 받은 좋은 에너지를 연료 삼아 이젠 경쟁 사회에 자신 있게 뛰어들 차례다. 그동안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놀았으니 제대하고 나면 한번 치열하게 살아봤음 한다.
내 눈엔 모든 게 불안해 보이지만 어쩜 아이 나름대로 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바심 내지 않고 옆에서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아이의 독립이 아직 완전치 않은 것 같아 나의 독립도 잠시 보류다. 섣불리 독립 만세를 외쳤다간 오히려 화를 키울 수 있다. 조금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이 길 끝에 피터팬의 허물을 벗어 버리고 듬직하게 웃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분명 볼 수 있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