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처음 본 건 정확히 10년 전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린 그저 눈인사만 나눌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친하게 지내고자 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둘 다 같은 아파트 살고 있고 내가 2살 많긴 해도 이 나이엔 그리 대수롭지 않은 차이다. 하지만 예리한 동물적인 후각이 나랑은 맞지 않는 사람임을 탐지했다. 누군가에겐 상냥하게 또 누군가에겐 다소 무시하는 듯한 그녀의 이중적인 태도가 무엇보다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철저히 주관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처음 수업에 들어와 적응이 안돼 어리둥절해하던 나에게 그녀는 후자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렇기에 이런 생각을 한다 해도 날 너무 나무라고 싶진 않다.
당시 아이들 공부에 도움을 될까 해서 영어 원어민 회화를 수강 신청했다. 주민 센터에서 하는 수업이니 어려워봤자 얼마나 어려울까 만만히 생각하고 덤볐지만 큰 착오였다.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 수업을 계속 듣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몇몇은 수준급 영어를 구사했고 강사는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했다. 수업에서 내가 제일 못했던 걸로 기억된다. 무슨 말들을 하고 있는지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억지 미소를 띠고 아는 척 고개를 끄덕이는 내 모습이 너무 가증스러웠다. 게다가 묻는 말에 대답 역시 변변치 못하니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언제나 어깨는 축 쳐지고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다. 자괴감에 빠져 매번 이대로 포기를 할까 고민했지만 기특하게 아직까지 수업을 이어오고 있다. 여전히 잘하진 못하나 지금은 엉터리라도 내 맘대로 지껄이는데 큰 두려움과 부끄러움은 없다.
늘씬하고 연예인 같은 조막만 한 얼굴의 그녀는 영어를 전공했다고 들었다. 옷 입는 센스도 괜찮고 얼굴도 이쁘장해서 그만하면 어딜 가나 호감 받을 인상이었다. 다소 쉰듯한 쇠 목소리가 좀 안타깝긴 했지만 유창한 영어 실력은 단연 눈에 띄었다. 눈치가 빠른 탓에 그녀가 영어에 서툰 날 살짝 무시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때를 돌이켜 보면 한없이 주눅 들어 있던 내 모습이 떠올라 짠하다. 그래서 지금껏 수업에 신입생이 들어오면 일부러 다가가 더 친절하게 대해주려 하고 있다.
그녀의 남편은 무척 다정한 사람인 듯했다. 음식을 못하지만 타박하지 않는다 했다. 오히려 생선을 먹을 때면 남편이 뼈를 다 발라 아이와 자신의 밥그릇에 놓아준단다. 언제가 아파트에서 그 커플과 우연히 부딪힌 적이 있다. 누군지도 모르면서 부인이 인사를 하니 덩달아 내게 공손히 인사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하나 있고 부동산 자산도 제법 된다는 얘기를 얼핏 들었다. 이래저래 나랑은 팔자가 다른 사람임이 분명했다.
몇 년이 지나 그녀의 아들은 어느새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매일 등굣길을 함께 하고 수업을 마칠 때쯤 늘 교문 앞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그 나이엔 보통 등하굣길을 엄마보단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하길 바란다. 우리 딸아이도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었기에 좀 유별나 보였지만 뭐 아이가 하나뿐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녀는 수업을 그만두었고 뒤이어 코로나 사태가 터져 주민 센터의 모든 수업은 잠정 휴강 상태로 들어갔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고 수업이 재개되자 난 다시 수강 신청을 했지만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그러더니 내 머릿속에서 그녀라는 존재가 거의 사라질 무렵 갑자기 나타나 5개월째 수업을 같이 듣고 있다.
몇 년 만에 다시 보게 된 그녀는 이제 50이 넘어서인지 예전과 많이 달라 보였다. 여전히 나이보단 젊어 보이지만 그녀라고 세월의 흔적을 모두 피할 순 없다. 아마 그녀도 날 보며 저 언니는 왜 저렇게 많이 늙었나 생각하고 있을게다. 하지만 무엇보다 낯선 건 수업 시간에 나대기 시작한 그녀의 모습이다. 물론 예전부터 새침데기 같은 겉모습과 달리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무언가 드러내고 싶어 하는 성향인 건 눈치채고 있었다. 게다가 녹슬지 않은 영어 실력을 자랑하고 싶은 맘도 이해되긴 한다. 그러나 전엔 저렇게까지 나서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어 부끄럼이 사라졌나 아님 이걸로 자존감을 세우려 하나 여하튼 좀 안달 나 있는 사람 같아 보인다.
언젠가 강사가 우리 모두에게 인생이 행복하냐고 물었다. 물론 불행한 건 아니지만 이 다사다난한 인생을 뭐라 딱 단정 지어 말하긴 조금 애매하다. 다들 어떤 생각에 빠져있는지는 모르지만 잠시 조용하다. 순간 그녀가 이 침묵을 깨뜨리며 특유의 쇳소리로 인생은 당연히 행복한 거라 큰소리로 웃으며 말한다. 85세 노인부터 시작해 평균 나이 60인 사람들이 듣는 수업이다. 50 초반의 그녀가 인생에 대해 그리 쉽게 말하는 걸 보니 진심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그때 강사가 그녀를 향해 빠른 영어로 뭐라 응수하고는 곧바로 화제를 바꾸는 걸 용케 나는 놓치지 않고 알아 들었다.
"그렇게 대답하는 걸 보니 네가 정말 행복할 수도 있지만 어쩜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영어 수업은 강사가 어떤 주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그걸 답하는 방식으로 주로 진행된다. 대답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그 사람에 대한 상황이나 성격등이 드러나는 법이다. 지난 수업에선 강사가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만약 네가 하루 동안 시장이 된다면 뭘 하겠느냐는 게 첫 번째 질문이었다. 평소 시장이 하는 일에 별 관심이 없었기에 좀 난감하다 싶었다. 그녀의 차례가 되고 유창한 영어로 말을 이어갔다. 좀 엉뚱하다 싶은 게 그녀는 예전처럼 토요일에도 아이들이 학교를 가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어느새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아들이 토요일에 하는 거라곤 시내에 나가 놀거나 게임만 한다 했다. 사실 좀 의외였다. 예전 그녀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아들이 공부를 아주 잘할 줄 알았다. 보아하니 지난 연휴 때도 그 일로 어지간히 속이 상했나 보다. 그런데 그녀의 말이 끝나고 내가 웃자고 그냥 한 말 때문에 사단이 벌어졌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다고 다 공부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러자 강사가 그럼 뭐 하냐고 묻기에 웃으면서 잔다고 했다. 영어로 말할 기회가 주어지면 놓치지 않고 엉터리라도 말을 해야 조금이라도 실력이 늘게 된다. 그래서 욕심을 좀 부려 예전 고3 수학 시험 감독 보조를 할 때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시험 시작 10분이 지나자 반 이상이 엎드려 자고 또 10분이 지나자 그 나머지 반이 자더라며 모두들 웃겼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날 향해 똑바로 쳐다보고는 뭐라 뭐라 한다. 그러자 내 말을 못 알아들은 줄 알고 누군가 내가 한 말을 다시 그녀에게 영어로 웃으면서 반복해 줬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계속 날 바라보며 뭐라 뭐라 한다. 집중해서 들어보니 자기가 한 말과 시험시간에 아이들이 자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냐고 따지는 중이었다. 자기는 그저 자기의 의견을 말했을 뿐인데 왜 그런 말을 하냐고 날 몰아붙이고 있다.
순간 내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다. 그녀의 의견에 찬성할 의향도 반대할 의향도 없었다. 어차피 가상의 일을 얘기하는 중이었고 모두들 완벽하지 않은 영어이기에 논리력도 다소 떨어진다. 굳이 연관성을 따지자면 토요일에 학교를 간다 해도 아이들 모두 공부하는 건 아니라는 게다. 게다가 중요한 시험 시간에도 자는 아이들이 수업 시간이라고 안 자겠냐 뭐 그 정도이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그녀의 아들이 수업 시간에 잔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보편적으로 대한민국 고등학교 교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얘기한 것뿐이다. 나 역시 그랬고 우리 큰애도 수업시간에 종종 잤다. 작년에 고3인 딸아이도 친구들이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면 선생님들이 깨우지 않고 놔둔다고 했다.
"미안해요. 난 그저 내가 시험 감독 가서 본 걸 얘기했을 뿐이에요"
더 이상 오해가 없게 한국말을 해버렸다. 하지만 밴댕이 속인 나도 그리 곱게 말하지는 못했다.
이후 그냥 별 일없이 마무리된 줄 알았다. 모두의 답변이 끝난 후 강사의 두 번째 질문이 이어졌다. 만약 450만 원이 갑자기 생겼고 5시간 안에 쓰지 않으면 전부 사라진다고 할 때 무얼 사겠냐는 질문이었다. 싱크대를 바꿀 계획이 있어 업체랑 계약한다 하려 했는데 강사가 오직 만질 수 있는 것만 해당된다고 한다. 어느새 그녀의 차례가 되어 답변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뭘 사야 될지 정하지 않아 그녀가 하는 소릴 듣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고민 중이었다. 그런데 말을 마친 그녀가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더니 이렇게 말하면 됐냐고 나에게 또 따지듯 묻는다.
강의실에 정적만이 흐른다. 지금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그녀가 도대체 나에게 왜 저러는지 도저히 알지 못해 당황스럽기만 하다. 싸늘한 분위기에 강사도 어쩔 줄 몰라하며 얼굴을 찌푸린 채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꼿꼿하게 고개를 들고 계속 날 똑바로 쳐다볼 뿐이다. 어떻게 다음 상황으로 넘어갔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난 그녀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영어로는 그녀에게 따질 실력도 못되고 한국말로 하자니 싸움밖에 안 된다.
다음날 아침 산책을 위해 동네 야산을 걸으며 어제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떠올리기 그리 유쾌하진 않지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천천히 짚어봤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우리 둘 다 서로 거리를 두고 있다는 걸 그녀 역시 잘 알고 있을 테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사사건건 트집 잡는 그런 교양 없는 사람들도 아니고 딱히 그럴 이유도 전혀 없다. 나에겐 그녀가 별 존재감이 없듯 그녀 역시 마찬가지다. 분명 내가 별생각 없이 한 말 중 그녀의 어딘가를 건드린 부분이 있었을게다. 모든 정황으로 봐 아들 때문에 그녀가 크게 속앓이를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고등학생이 되는 자녀를 둔 지인들이 앞으로 아이를 어떻게 케어해야 될지 물을 때면 꼭 해주는 얘기가 있다. 성적과 상관없이 아이들과 싸우지 말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라고. 나뿐 아니라 그 길을 지나온 많은 선배 부모들이 하는 공통된 말이다. 나는 아예 아이 비위를 잘 맞춰주라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은 아이뿐 아니라 부모에게도 힘든 시기다. 오히려 아이들의 걱정은 부모만큼 심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철없는 아이들은 오직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할 뿐이다. 그 모습이 초래할 뻔한 결과와 온갖 부정적인 생각 그리고 불안에 나같이 평범한 부모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이때 관계가 잘못되면 아이 성적이 더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대학을 가든 못가든 사랑하는 자식임은 틀림없는데 이후 관계 회복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큰애와 내가 그랬다. 아이 맘 속엔 나에 대한 원망이 조금씩 줄어들고는 있지만 아직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그녀가 누구 못지않게 헌신적으로 엄마의 역할을 해오고 있음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가 원치 않는 방식으로는 결국 사사건건 부딪히는 일만 생기게 한다. 아이들이 제일 쉽고 편하게 할 수 있는 반항이 공부다. 그로 인해 엄마들이 받는 타격은 엄청나다.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들어보니 그녀의 아들이 여자 친구와 사귄다고 공부를 많이 소홀히 한다 했다. 이제껏 뭐 하나 빠지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온 그녀인데 기대에 미치지도 잘 따라와 주지도 않는 아들 때문에 마음이 복잡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다소 오버스런 행동들이 그런 속내를 외면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 시간들을 다 겪어 온 나로선 아직 진행 중인 그녀가 안쓰럽다. 예전 교양 있어 보이던 모습은 다 어딜 가고 별 일 아닌 것에 그렇게 감정을 드러내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물론 집착과 욕심이 불러온 문제겠지만 정말 공부란 뭔지 또 자식이란 뭔지 참 어렵다. 세상에서 제일 존경스러운 사람이 아이들 인생에서 한 걸음 물러나 그저 묵묵히 지켜만 보는 부모들이다. 그게 내겐 참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심정 또한 충분히 이해된다. 이제 그녀도 자녀로부터 독립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부디 그 시간들을 잘 버텨 성공적인 독립을 이루길 멀리서나마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