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알리는 알람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뜬다. 밤새 여러 번 깨다마다를 반복했더니 자도 잔 게 아니다. 몸이 영 찌뿌둥하니 개운치가 않다. 집에 고3 수험생이 있던 작년까진 그리 잠이 달더니 이젠 실컷 잘 수 있음에도 오히려 수면의 질이 떨어졌다. 이 모든 게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망할 놈의 갱년기 때문일 게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자고 있는 사이 카톡이 하나 들어와 있다. 제대로 떠지지도 않는 눈이지만 이젠 돋보기 없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건 거부하고 있다. 눈을 잔뜩 찌푸린 채 최대한 초점을 맞춰 누가 보낸 건지 확인해 본다. 남편이다.
전날 남편은 야간 근무에 들어갔다. 근무 중에는 휴대폰의 데이터를 끄고 일에만 집중하는 사람이다. 간혹 용건이 있음 문자로 보낸다. 집에서도 말이 없는 사람이라 별 다른 내용은 없다. 아침 퇴근이 좀 늦는다든지 새벽에 뭘 먹어서 아침밥은 따로 준비하지 말라는 게 대부분이다. 카톡을 보냈다는 건 사진을 전송했거나 아님 다소 긴 장문의 글임을 짐작케 한다. 일단 사진은 아닌 게 확실하니 무슨 일인가 싶어 살짝 긴장된다. 시간을 보니 새벽 2시가 다 되어 보낸 것이다.
지난 석 달 말없는 남편과 단 둘이 지내다 보니 나 역시 집에선 말수가 줄었다. 그래도 딸아이가 옆에 있을 땐 얘기할 상대가 있어 큰 소리로 웃고 떠들 일이 많았다. 하지만 아이가 기숙사로 들어간 요즘은 전혀 그럴 일이 없어 슬프다. 하루 종일 남편과 같이 있어도 몇 마디 나누지 않는다. 내 얘기에 귀 기울어주는 사람도 아닐뿐더러 한마디로 재미없는 사람이다. 25년을 그리 살아왔기에 새삼스레 말을 많이 할 이유도 불만도 없어 이런 생활에 그냥 익숙해하고 있다. 신기한 게 집에서는 이렇게 서로 데면데면 지내지만 그래도 같이 외출을 할 땐 특히 낚시를 갈 때면 평소보단 둘 다 말이 많아진다. 낚시라는 게 마냥 기다림의 연속이다. 조용히 낚싯대를 드리우고 남편과 집에서 하지 못한 얘기들을 두런두런 주고받는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사이처럼.
이틀 전 남편과 낚시를 갔다. 뒤치다꺼리할 아이들이 집에 없으니 이젠 저녁 걱정할 필요가 없어 아예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섰다. 낚시라 해도 우리가 갖고 있는 장비로는 겨우 방파제에서 하는 생활 낚시만 가능할 뿐이다. 그래도 바다를 끼고 있는 곳에 살고 있으니 큰 지출은 없다. 미끼용 지렁이 삼천 원에 집에서 싸 간 도시락과 커피만 있음 반나절은 재밌게 놀 수 있다. 물고기야 잡히면 좋지만 안 잡혀도 별 상관없다. 어차피 우리에게 걸려드는 건 잔챙이들뿐이다. 하지만 시원한 바람 쐬고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도시락 까먹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그날은 간만에 제법 큰 놈이 내 낚싯대에 걸려들어 잔뜩 신이 나 있었다. 묵직한 낚싯대를 들어 올릴 땐 모처럼 활짝 웃고 방방 뛰기까지 했다. 저녁 도시락으로 처음 만들어 간 충무 김밥도 남편이 아주 맛있게 먹었다. 내가 만든 음식에 맛있다고 말하는 남편은 아니다. 그저 먹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은근 다음번에도 이걸 도시락으로 준비해 줬음 하는 눈치다. 건너편 해안을 따라 쭉 늘어선 카페, 레스토랑의 화려한 조명과 함께 예쁘게 저물고 있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며 그렇게 기분 좋게 낚시를 하고 돌아오는 중이었다.
집에 도착하면 또다시 서로 닭 쳐다보듯 할 테지만 아직까지는 문 밖이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이런저런 얘기를 차 안에서 주고받는다. 문득 평소 남편에게 궁금해하던 것이 하나 떠오른다. 남편은 별 고민 없이 대답한다. 나로선 이해가 좀 되지 않지만 예상했던 답변이다. 워낙 멘털이 강한 사람이니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이후 내 질문은 계속 남편의 머릿속에 남아 그를 꽤 심란하게 만들었나 보다. 내가 하는 소리는 대체로 가벼이 여기는 사람인데 다소 심각하게 그날 말했던 것과는 다른 답변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남편은 친구를 만나지도 외출을 하지도 않는다. 돈 쓰는 것도 싫어해 오직 회사와 집만 오갈 뿐이다. 일도 교대 근무라 한 달에 10번 정도만 출근한다. 그나마 8번은 야간 근무다. 나머지 시간은 계속 집에 머무른다. 내가 먼저 낚시 가자 캠핑 가자 산에 가자 이런 말을 끄집어내지 않음 집에서 반경 1 km 밖을 나가지 않는 사람이다. 그것도 남편의 유일한 취미 생활인 걷기 앱을 휴대폰에 여러 개 깔아놓고 포인트를 얻기 위함이다. 그 외엔 다른 취미는 전혀 없다. 책 읽는 것도 싫어하고 무언가 배우고 공부하는 것도 귀찮아한다. 사람들 앞에서 웃는 일도 거의 없고 말수도 적다. 그가 입을 벌리는 경우는 뭘 먹을 때나 아님 혼자 TV를 보다 실실 웃을 때뿐이다. 그런 그가 아파트 동대표를 5년씩이나 한 건 주위 사람들에겐 참 의외의 일이었다.
다정한 아빠나 남편과도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그리 매몰차다는 건 아니다. 꼬박꼬박 월급을 갖다 주는 성실한 가장에다 가만 보면 나보다 더 집 떠난 아이들을 그리워한다. 단지 아들만 사형제인 집안에서 다정과는 정반대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기에 그게 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일일이 가르쳐줘도 몇 번 노력해 보다 나중엔 그 아버지의 뜨거운 피로 인해 결국 원상 복귀하는 사람이다. 본인은 부정하겠지만 내가 아는 이들 중 공감 능력이 제일 떨어지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진 그리 제 맘대로더니 그래도 요즘은 자기 딴엔 가족들에게 잘하려고 애쓰는 게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집에서 하는 일이라곤 TV나 휴대폰을 보고 만보 채우는 일을 제외하고는 달리 애정을 쏟는 게 없다. 큰애가 자취생활을 시작하면서 비어진 아이 방에 TV까지 옮겨 놓으니 그냥 그곳에서 꼼짝없이 지내고 있다.
나도 비슷한 집순이지만 그와 반대로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인다. 아침 일찍 산을 찾아 숲을 한 바퀴 도는 걸로 시작해 이런저런 취미 생활로 하루를 꽉 채우려 하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를 연습하고 글을 쓴다. 도서관에서 책도 매주 빌려 읽는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50권 읽기에 도전 중이다. 영어 공부는 매일 꾸준히 하고 있고 일주일에 이런저런 수업도 두세 번 들으러 다닌다. 지난주까진 캐리커쳐를 배워 남편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모두 돈을 들이지 않고 하는 거라 남편이 꼬투리 잡을 일은 없다. 하지만 비꼬아서 하는 소린지 자기와 너무 달라 신기해서 하는 소린지 간혹 날 보며 혼자 중얼거리는 소릴 듣는다.
"참 부지런도 하지"
낚시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물었다. 매일 방에 틀어박혀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그리 있으면 안 갑갑하냐고. 나라면 우울증에 걸릴 것 같은데 아무렇지 않냐고 물었다. 그러자 남편은 자신은 갑갑하지도 않고 우울증 같은 것도 잘 모른다고 한다. 그저 지금이 딱 좋단다. 살짝 비난하는 투로 묻긴 했지만 남편은 개의치 않는다. 뭐 사람마다 행복을 느끼는 방식은 다 다르니 본인만 만족한다면야. 한편으론 주위에서 남들이 뭐라 하든 말든 소신껏 살아가는 남편의 멘털이 부럽기도 했다. 하긴 매년 건강 검진을 받으면 부교감 신경이 활성화되어 정서적으로 매우 안정되어 있다는 결과가 나온다.
남편은 이제 정년까지 정확히 5년 남았다. 아직 많이 남았다면 많이 남은 거고 얼마 안 남았다면 얼마 안 남은 애매한 시간이다. 요즘 정년 연장이 뉴스에서 한 번씩 들려올 때면 나도 모르게 귀가 쫑긋해진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큰애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있지만 석 달 후 제대다. 올 11월에 치를 초등 임용에 또 떨어지면 계약직으로 있다 다시 시험을 보면 된다. 일부 극성 학부모들 때문에 요즘 초등교사가 되길 다들 회피하고 있고 나 역시 내 새끼 맘고생할까 봐 걱정이지 그렇게 몇 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시험에 붙을 거라 믿는다. 큰애 밑으로 특별히 돈 들어갈 일도 더 이상 없다. 보아하니 군에서 돈도 꽤 모은 모양이다.
올해 의대에 입학한 둘째에게 돈이 좀 많이 들어가긴 한다. 7백만 원에 육박하는 한 학기 등록금에다 2학기부터는 기숙사에 있을 수 없어 자취방을 알아봐야 한다. 서울 방값이라는 게 지방에 사는 사람으로선 상상이상의 가격이다. 그나마 남편 회사에서 학자금 지원이 되어 망설임 없이 서울로 보냈지만 6년이란 교육과정 중 한 학기를 남겨두고 남편은 은퇴를 해야 한다. 그것도 수업이 올해 정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전제하다. 정년 연장을 간절히 바라는 것도 단지 이 때문이다. 게다가 어차피 매일 집에만 있는 사람이니 은퇴 후 집에 있는 시간이 조금 늘어났다고 해서 특별히 더 성가시진 않을 것이다. 달라질 일이라 하면 지금은 한 달 평균 80끼 정도 밥을 차려주는데 은퇴 후엔 90끼 정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은퇴 후를 걱정하고 있나 보다. 정년까진 딱 5년 남았는데 뭔가 해야 하지만 딱히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단다. 그냥 방에서 이대로 썩는 것 같아 우울증에 걸릴 것 같기도 하고 맨날 나만 바라보고 사는 것 같아 미안하단다. 남편이 보낸 글을 읽으니 잠이 번쩍 깬다. 남이 뭐라 하든 자기 좋을 대로 사는 사람인데 갑자기 왜 이리 약한 모습을 보이는지 남편도 갱년기를 겪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 정말 우울증이 오려는 건가. 그게 얼마나 몹쓸 병인지 겪어봐서 잘 알기에 덜컥 겁이 난다. 자기 방식대로 잘 살고 있는 남편에게 괜히 쓸데없는 걸 물어서 닫혀 있던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한 건 아닌지 스스로를 원망하게 된다.
결혼하고 1년쯤 있다 시아버지는 정년퇴임을 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내 눈에 참 이해가 되지 않던 모습이었다. 생전 그의 일과는 매일매일이 똑같았다. 하루 종일 안방에 이불을 깔아놓고 하는 일이라곤 그냥 누워 TV를 보거나 낮잠을 잤다. 그러다 갑갑하면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와선 술이 취한 채 시어머니를 성가시게 했다. 돈도 아깝고 모든 게 귀찮아 그냥 그렇게 살다 돌아가셨다. 내 물음에 어쩜 남편은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남편의 글에 뭐라 답할지 몰라 결국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퇴근한 남편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어째 좀 쑥스럽다. 남편 역시 마찬 가지인 것 같다. 아침밥을 차려주며 한 마디 툭 던진다.
"간 밤엔 왜 그리 센티멘탈 해졌대?"
남편은 그저 멋쩍게 웃는다.
미안한 맘도 있고 남편이 안쓰러워 보이는 것도 있어 이후 밥상에 부쩍 신경을 쓰고 있다. 집에서 마누라가 해주는 밥 먹는 걸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다시 기를 좀 살려야겠다. 사실 남편에게 달리 원하는 게 있었던 건 아니다. 은퇴 후 다시 직장을 구하기 위해 뭐라도 공부하라는 건 더더욱 아니다. 남편의 씀씀이로 봐서는 여태 모아둔 돈을 다 써보지도 못하고 눈을 감을게 뻔하다. 본인은 쓰지도 않을 텐데 늙은 몸 혹사시켜 가며 돈을 더 벌 이유가 전혀 없다. 아이들은 모두 제 몫을 하게끔 키워놨다. 다만 내 눈엔 너무 지루하게 사는 것 같아 시간이 좀 아깝다는 생각에서 한 소리일 뿐이다.
어찌 보면 남편과 나 모두 측은한 사람들이다. 그저 아이들만 바라보며 우리의 행복은 뒤로 미룬 채 한 눈 팔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하지만 곧 결승점이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뛴 다음 임무를 완수한 우리에게도 꼭 상을 줘야 한다. 당연히 아이들이 제일 큰 행복이고 상이겠지만 그 외의 세상에도 눈을 돌려야 할 때다. 돈 벌고 모으는 것만 할 줄 알지 쓰는 건 영 서툰 사람이라 아마 남편은 상도 남들과는 좀 다른 걸 받길 원할 게다. 남편 때문에 안타깝지만 나 역시 이번 생에선 돈 쓰는 재미를 느끼긴 어려울 것 같다. 뭐가 됐든 상관없다. 집에만 있는다고 눈치 주는 일 따윈 하지 않을 테니 본인이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찾아가면 좋겠다. 어차피 죽으면 썩어 문 들려질 몸이다. 좀 귀찮더라도 즐겁고 재밌는 삶을 위해 몸과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하다 보면 분명 지금과는 또 다른 인생이 펼쳐질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