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알아서 잘 산다

by 코니

버스 터미널까지 따라간다는 내 말에 딸아이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놈의 '굳이?'라는 소리도 오랜만에 듣는다. 그러니깐 이젠 혼자 알아서 잘하니 아이 취급받기 싫다는 게다. 누가 길 잃어버릴까 봐 그러나. 다시 몇 달은 못 볼 생각에 아쉬워서 그냥 예의 삼아 말해본 것뿐인데 그리 딱 잘라 거절할 필요까지야. 뭐 아이가 좋다면 터미널까지 배웅 갈 생각은 있었지만 사실 나도 귀찮긴 하다. 아이의 쌀쌀맞은 거절이 오히려 고맙다. 원래 독립적인 성향이긴 하나 불과 몇 달 사이 혼자 뭐든 알아서 잘하는 아이의 모습이 대견하긴 하다. 하지만 나에게 너무 틈을 안 주는 것 같아 한편으론 살짝 서운한 감도 없지 않다.



선심 쓰듯 지하철역까지는 같이 가도 된단다. 3분 남짓되는 거리를 걸어가는 동안 서로 별 말은 없다. 그렇다고 곧 있을 이별의 슬픔에 목이 메어 할 말을 잃어서는 아니다. 그저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둘 다 좀 어색할 따름이다. 아이는 오후에 있을 동아리 모임과 내일부터 보충해야 할 과외 수업, MT 등으로 이미 일정이 빡빡하다. 석 달만의 귀환이지만 딱 일주일 머무른 후 서둘러 기숙사로 돌아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 역시 오늘 부동산 2군데에서 집을 보러 온다고 해서 괜히 맘이 바쁘다. 이사 갈 날짜는 다가오는데 살고 있는 집이 팔리지 않아 조금씩 불안해지고 있는 중이다.



개찰구 앞에 다가서자 아이가 날 돌아본다.

"지하철 오면 들어갈까?"

개찰구 바로 앞에 지하철 선로가 있는 역이라 그리해도 상관없다. 손 한번 흔들고는 바로 쌩하니 들어갈 줄 알았는데 그래도 이젠 다 컸다고 엄마 마음도 헤아릴 줄 아나보다. 하지만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지하철이 들어온다는 안내 방송 나온다. 타이밍 한번 기가 막혀 서로 마주 보며 피식 웃는다.

"잘 있어. 조만간 또 올게"

내가 서 있는 곳과 등을 지고 앉은 딸아이는 기특하게도 지하철이 움직이기 전까지 계속 뒤를 돌아보며 나에게 손을 흔든다.




꼭 소풍 가는 날짜를 기다리는 아이의 심정이었다. 딸아이가 집에 온다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3달 만에 아이를 볼 수 있다. 그동안 전화 통화는 거의 매일 했지만 영상 통화는 단 한 번뿐이었다.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을지 너무 궁금해 설레기까지 한다. 이제 두 손으로 아이를 만질 수 있고 아이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겨우 3달 서울에 있다 오는 건데 뭐 그리 호들갑이냐 나무라도 상관없다. 원래 처음은 그런 거다. 시간이 지나고 횟수가 반복되면 이 두근거림과 설렘은 점점 무뎌질 테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다. 지금은 아니다. 아이의 첫 귀환에 남편과 나는 사뭇 흥분되어 있다.



우선 텅 비어있는 냉장고를 다시 꽉 채워야 했다. 남편과 나 둘이 먹기엔 왠지 부담스럽던 수박도 사고 아이가 좋아하는 산딸기도 다소 비싼 가격이지만 큰 맘먹고 한 박스 집어 들었다. 열무도 한 단 사서 미리 물김치를 담아 맛깔스럽게 익혀두었다. 아이에게 먹고 싶은 걸 미리 알려달라고 했더니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걸 메시지로 보내왔다. 돼지갈비찜, 닭갈비, 닭볶음탕, 연어 초밥. 어쩜 이렇게 식성이 제 아빠랑 똑같은지. 이러니 아이들이 집에 올 때면 남편이 더 좋아하는 수밖에.



누가 짠돌이 아빠의 딸이 아니라 할까 봐 아이는 서울서 집까지 일반 고속버스를 타고 온단다. 얼마 되지도 않는 용돈이라 교통비는 따로 남편 카드의 비번을 알려주고 그걸로 쓰게 했다. 그런데도 KTX가 아닌 그것도 우등이 아닌 일반 버스를 탄단다. 그게 가장 가성비 좋은 교통수단인 것 같다나. 자기 돈으로 표를 예매한다면야 아낀다고 그런다 쳐도 부모 돈인데. 요즘 부모 돈 아까운 줄 아는 아이는 드물다. 다들 땅 파서 그냥 나온 돈인 줄 아는데 내 새끼지만 생각하는 게 어찌나 기특한지. 같은 뱃속 출생인 제 오빠는 버스를 타도 꼭 프리미엄 버스를 타고 왔었다. 덕분에 나 역시 앞으로 서울에 갈 땐 기차가 아닌 일반 버스를 타야 한다는 남편의 무언의 압박이 느껴진다.



지난 3달 동안 이런저런 걱정보따리를 품고 살았다. 아이가 밥은 잘 먹고 다니는 지부터 시작해 뉴스에 나오는 온갖 흉측한 범죄들까지 별의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말수가 적고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도 어색해하는 성격이라 아이 혼자 서울 생활을 잘할 수 있을지 그게 제일 신경 쓰였다. 평소에도 친구들이 먼저 연락을 해야 약속을 잡지 아이가 먼저 누군가에게 연락해 만나는 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 수업이라도 제대로 이루어지면 과동기들과 어울릴 수 있을 텐데 의대 수업은 언제 정상화가 될지 아직 알 수가 없다. 나랑 전화 통화를 한다고 해도 겨우 생사확인만 하는 정도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말하는 아이가 아니라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자세한 내막은 알 수가 없다. 혼자 기숙사에 콕 틀어 박혀 쓸쓸히 지내는 건 아닌지 이래저래 걱정이었다.


아이가 올 시간에 맞춰 점심을 준비해 두고 서둘러 지하철역으로 마중 나간다. 4시간이 걸린다는 버스는 30분이나 더 걸렸지만 오는 내내 차에서 잤다는 아이는 생생하다. 그래도 다음부턴 기차를 타라고 해야겠다. 아이를 보면 혹시 반가움에 울컥하지 않을까 했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 그냥 잠시 여행 갔다 돌아온 느낌이다. 밥보단 간식을 많이 먹어 몸무게가 늘었다더니 정말 제법 살이 오른 모습이다. 엉덩이를 두들리니 예전과는 확실히 달리 두들리는 맛이 있다. 하지만 그래봤자 170 센티가 육박한 키에 이제 겨우 50킬로를 넘어섰을 뿐이다. 앞머리를 내어서 그런지 서울물을 먹어서 그런지 몇 달 전보단 많이 예뻐졌다고 하니 아이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가 떠오른다.



아이가 집에 오면 삼시세끼 같이 밥 먹고 옆에 계속 딱 붙어 있을 줄 알았다. 나야 그러면 좋지만 그래도 아이가 집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 친구들과 좀 어울렸음 했다. 그래서 아이에게 다른 약속은 없는지 슬쩍 물어보았다. 그러나 그리 사교적인 편은 아니라 여겼던 아이는 나랑은 이틀정도만 같이 있고 계속 친구들과 약속이 잡혔다. 아이를 위해 이것저것 준비한 음식도 다 먹지 못할 판이다. 결국 산딸기는 한 박스를 다 먹지 못했고 살짝 색깔이 변한 소 갈빗살은 아이가 떠난 후 남편과 둘이서 구워 먹었다. 그래도 이쁘게 꾸미고 들떠서 나가는 아이를 보니 생각했던 것보단 훨씬 사회적이라 왠지 흐뭇하다.



전화로 다하지 못한 아이의 일상을 듣는 건 즐거웠다. 아이가 보여주는 사진이랑 얘기를 들어보니 그동안 서울에서 혼자 쓸쓸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내 생각은 모두 쓸데없는 것이었다. 몇 주전 있었던 학교 축제기간 동안 어떻게 지내나 싶었더니 과동기들과 같이 재밌게 즐겼단다. 좋아하는 가수들이 초대 가수로 나와 3일 내내 축제장을 떠나지 않았나 보다. 축제 후 뒤풀이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 눈치다.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는 나와 달리 술도 좀 마실 줄 알고 나대진 않지만 어딜 가도 분위기 깨지 않고 어울릴 줄 알았다.



학과 동아리도 두 개나 가입하여 나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다음 주부턴 밴드 동아리 합주 연습이 시작된다고 하는데 키보드를 담당하는 아이는 집에 오자말자 피아노부터 치기 시작한다. 혼자 콘서트도 보러 다니고 쇼핑도 가고 과외 아르바이트도 알아서 잘하고 있었다. 심지어 힘쓰는 일을 한번 해보고 싶어 빵집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도 했다고 한다. 기숙사 룸 메이트의 연애 상담도 자주 해준단다. 한 번도 연애해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남의 이성 문제에 뭐라 말할 수 있나 싶어 웃으면서 물어보았다.

"친구말로는 내가 좀 이성적이고 감정에 치우치지도 않고 객관적으로 보는 편 이래"

하긴 그건 인정.



아이가 캐리어 가방에서 직접 손뜨개로 뜬 회색 가방을 꺼내 보여준다. 손재주가 있는 아이라 뭐든 잘 만들지만 이번 것은 특히 더 예뻤다. 나도 검은색으로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하자 실만 사다 주면 떠주겠다며 도구들을 모두 챙겨 왔단다. 가만 보니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다. 가끔 툴툴대긴 해도 엄마를 생각하는 아이맘이 고스란히 느껴져 심쿵한다. 아이랑 같이 집 앞 다이소에서 천 원짜리 실 4개를 샀다.

"이거 다 완성 못하면 너 서울 못 가"

장난처럼 협박을 했지만 아이는 그 바쁜 와중에도 매일 밤늦게까지 작업을 하더니 결국 올라가기 전 날 내게 완성품을 건네준다.

"이젠 서울 갈 수 있겠다. 오예"

숙제를 끝낸 아이는 홀가분해 보인다.



아이가 있으니 함께 떠들고 웃는 소리에 조용하던 집안이 생동감으로 넘친다. 싱싱한 청춘의 냄새는 중년 부부의 시큼한 거실을 상큼하게 바꿔놓는 것 같다. 갱년기라 수시로 오락가락하는 내 체온도 아이가 옆에 있으니 일정하게 유지되는 기분이다. 남편은 아이와 별 말은 하지 않지만 한 지붕 아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한다. 부모에게 자식이란 이런 건가 보다. 그런데 며칠 지나자 처음의 이 감격이 조금씩 달라지는 게 느껴진다.



변했나 싶을 정도로 나에게 그리 살갑게 굴던 딸아이가 한 번씩 예전처럼 다시 냉랭하게 말을 하기 시작한다. 나 역시 아이방을 들여다보면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보인다. 방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펼쳐진 가방과 옷들, 화장품들로 어질러진 책상이 자꾸 날 답답하게 만든다. 부동산에서 갑자기 집을 보러 온다고 하면 저것들을 다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 사람 하나 더 있다고 집안 공기도 점점 더워지는 것 같아 자꾸 문을 열게 된다. 이젠 모두들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때가 왔나 보다. 일주일은 짧다고 생각했는데 딱 적당한 시간인 것 같다.




"있다가 없으니 집이 텅 빈 것 같네"

아이가 서울로 떠나고 깨끗이 비어진 아이방을 바라보며 남편이 허전한 듯 말한다.

"나는 아닌데. 오면 반갑지만 가도 좋은데"

세상에. 내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올 줄이야. 처음 아이를 기숙사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올 때를 생각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그땐 아이 없이 앞으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싶어 빈방에 들어가 눈물 콧물 질질 흘리며 대성통곡을 했었는데. 잘 살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봐서일까. 나 역시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아이 못지않게 나도 독립을 제대로 하고 있나 보다. 참 다행이다.







keyword
코니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에세이스트 프로필
구독자 130
이전 12화방구석 탈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