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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이후

by 코니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이번에도 뭐 하나 틀린 게 없었다. 아이들을 각각 군대와 대학 기숙사로 떠나보내고 남편과 단 둘이 지낸 지 어느새 석 달이 다 되어간다. 처음엔 텅 빈 아이방에 들어가 혼자 코를 훌쩍였다. 여기저기 비어있는 책상 앞에 덩그러니 앉아 주위를 둘러보면 괜스레 울컥한 마음이 들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원래 이리 단출하게 살아온 것처럼 잘 적응하고 있다. 품 안의 자식임을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훨씬 홀가분해졌다. 챙겨야 할 아이들이 옆에 없기에 오히려 몸이 편하다는 생각도 살짝 든다. 요즘은 아이들 때문에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해보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고등학생이던 딸애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오후 4시 40분쯤이었다. 엎어지면 코 닿는 곳에 있는 학교에다 학원도 다니지 않으니 하교 시간은 언제나 일정했다. 야무진 아이는 낭비하는 시간을 없애고 효율적인 공부를 위해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한 후 바로 저녁을 먹기 원했다. 공부를 위해서라는데 그리 못해 줄 이유가 없었다. 다만 남편의 양해가 필요했다. 교대 근무를 하는 남편은 출근 시간이 남들과 좀 다르다. 한 달에 열 끼 정도를 제외하곤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집에서 먹는다. 남편이 저녁을 먹기엔 다소 이른 시간이지만 두 번씩 저녁상을 차리는 건 너무 번거로웠다. 이후 우리 집 식탁엔 5시가 되면 저녁이 차려졌다.



아이의 저녁 시간을 맞추기 위해 4시부터 부엌으로 향했다. 밖에서 일을 보거나 약속이 있어도 그 시간까진 반드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미혼인 신데렐라는 밤 12시까지 유흥을 즐기다 부엌데기로 돌아왔지만 유부녀에 자식까지 딸린 난 오후 4시까지였다. 아이가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도 밥상이 아직 다 차려지지 않으면 괜히 눈치가 보였다. 까칠한 고 3이라 먹는 걸로 살살 달래 가며 비위를 맞춰야 하기에 밥시간은 최대한 꼭 지키도록 했다. 원래 늦은 외출을 즐기는 편도 아니지만 이른 저녁 준비로 4시 이후의 바깥 풍경은 내겐 많이 낯설었다. 하지만 이젠 조금씩 오후 외출에 맛을 들이고 있다.




한 달에 2번 정도 가까운 어린이 대공원을 찾는다.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그곳을 지키던 나무들은 지금껏 한자리에서 보다 멋진 모습으로 숲을 이루고 있다. 공원 안은 여러 산들로 이어져 있어 등산이나 하이킹을 하기에도 제격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코스는 공원 입구에서 절까지 이어지는 왕복 2시간 반짜리 숲 길이다. 숲이 좋아서 매번 오는 거지 절 방문이 목적은 아니다. 교회보다야 편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불교신자는 아니다. 단지 그 길 끝에 절이 있을 뿐이다.



울창한 숲 길을 혼자 조용히 걷는 일은 내겐 무엇보다 소중한 선물 같은 시간이다. 겁 많은 아줌마라 그리는 못하지만 만약 내가 남자라면 몇 년이 더 지난 후 '나는 자연인이다'를 외치며 깊은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고 싶다. 그만큼 숲은 내겐 말로 다 할 수 없는 위안과 위로를 건네준다. 그곳에 가면 마음이 저절로 편해져 옴이 느껴진다.



작년까진 평일 오전에 다녀와야 했지만 이젠 언제든 내가 원하는 시간에 올 수 있다. 예전처럼 저녁밥시간에 늦을까 서두를 필요도 전혀 없다. 남편이 야간 근무로 회사에서 저녁을 먹을 때면 일부러 2시가 훨씬 넘어 집을 나선다. 오전의 숲이 내겐 마치 10대, 20대의 경쾌함으로 가득 차 보인다면 오후 4, 5시의 숲은 40, 50대의 무르익음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오후 4시 이후의 숲 냄새가 보다 진하고 와닿고 있는 요즘이다.



한 낮보다 다소 힘이 빠진 늦은 오후 햇살이 조용히 내게 말을 건넨다.

'여기까지 오느라 너나 나나 수고가 많았네.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모두 편히 쉴 수 있을 거야'

그래, 지금 이 순간이 오기까지 참 숨 가쁘게도 달려왔다. 매번 어찌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기만 했었는데 돌아보니 제법 멀리 와있다. 애썼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저물어 가는 저 해는 내일이면 또다시 눈부신 모습으로 떠오를 수 있지만 난 그렇지 못하다는 게다. 점점 더 시들어 갈 테고 겉으론 당당해 보여도 속으론 자식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겠지.



예전에 나는 오후 몇 시쯤의 햇살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땐 3, 4시쯤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4, 5시로 바꿔야 할 것 같다.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잠깐이다. 그렇게 흘러가는 게 인생이지 뭐 별 다른 삶이 있을까 싶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숲 길을 걷다 보면 알아서 스스로를 토닥거리며 셀프 위로를 건네게 된다. 그게 은근 효과가 있어서 울적한 마음은 이내 사라지고 내 안에 다시 에너지가 충만해지는 기분이 든다. 일요일 오전 브런치 연재를 끝마치고 오후에 숲을 찾을 때면 더더욱이다. 이번 주 숙제도 잘 마친 나에게 주는 상 같은 시간이랄까.



온몸으로 숲의 기운을 느끼며 천천히 걷는다. 중간중간 벤치에 앉아 준비해 간 커피와 간식을 먹는다. 쭉쭉 뻗은 편백 나무 숲에서 마시는 커피는 비록 내 맘대로 내린 핸드 드립이지만 늘 날 감동시킨다. 어느 카페의 통창도 이리 멋진 풍경을 혼자 조용히 감상하게 만들어 주진 못할 것이다. 발걸음을 이어 절에 도착하면 부처님께 인사부터 드린다. 작은 소망을 수줍게 말하거나 그동안 있었던 잘못에 용서를 구하며 반성의 시간을 가진다. 인사가 끝나면 절 뒤편에 있는 나만의 아지트에서 남은 커피를 마신 후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집으로 향한다.



한 번은 절 뒤 벤치에서 간식을 먹고 있는데 비가 몇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분명 내리쬐는 햇살을 피해 절에 도착했기에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갑자기 굵어진다 싶더니 떨어지는 속도가 순식간에 빨라졌다. 여름 장마철도 아닌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얼른 몸을 피할 곳을 찾아 뛰었다. 늦은 오후 사람 없는 극락전 처마가 눈에 들어온다. 그 아래에 몸을 피하고 떨어지는 빗방울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 소리에 집중하고 바람에 묻어 나는 촉촉한 비냄새도 깊이 들이마신다. 잃어버린 감성이 되돌아왔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작은 행복감에 순간 울컥해진다.



지난주엔 절에 도착해 대웅전에 들어가려니 문 옆에 작은 휠체어가 놓여 있었다. 들어가 보니 젊은 아빠가 몸이 다소 불편해 보이는 아이를 앉고 부처님과 마주하고 있다. 별생각 없이 반대쪽 구석으로 가 부처님께 인사를 드린 후 일어나 보니 어느새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대웅전 인사를 마치면 요즘은 관음전에도 꼭 들려 인사를 한다. 별 다른 이유 없이 그저 이곳의 관음상이 무척 아름답다는 생각에서다. 관음전 입구에 아까 본 휠체어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관음전으로 들어서자 이번엔 아빠가 아이를 그냥 바닥에 누인 채 혼자 관음상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일부러 보려 한 게 아니라 입구 쪽에 앉아 있으니 그들 옆을 지나칠 수밖에 없다. 아이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아려온다. 초등학교 1, 2학년쯤으로 보이는 아들은 혼자 앉을 수도 목을 가눌 수도 없이 보인다. 팔과 다리는 모두 자라다 말아 있다. 잘 생긴 얼굴로 그저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 얼른 시선을 거두고 구석으로 갔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저 부자의 행복을 기원하는 것뿐이다. 같은 부모로서 연민을 느껴서일까. 알 수 없는 눈물이 자꾸 흘려내려 코를 훌쩍이게 된다. 곧 아빠는 아이를 안고 자리를 뜬다.



그가 부처님에게 무얼 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그건 원망이 아니라 다짐일 거라 믿는다. 바로 그 소리 없는 다짐이 날 부끄럽게 만든다. 아이가 태어나고 지금까지 아빠로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을지 생각해 보면 나는 어찌하며 살아왔나 돌아보게 된다. 힘들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지냈건만 정말 그리 힘들었을까. 저 아빠 나이였을 때 나는 뭐가 그리 힘들다고 징징댔을까. 그가 짊어져야 할 인생의 무게가 나보다 더 무거울 거라 단정 지을 순 없다. 하지만 앞으로 남은 길이 그리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기에 집에 오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부디 두 사람의 앞날에 웃음이 가득하길 바랄 뿐이다.




오후 4시 이후 집에만 지내다 다양한 오후의 풍경을 보게 되니 요즘은 예전에 미처 보지 못한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 자신과 가족 생각만으로도 꽉 차 있던 마음에 이젠 한숨 돌릴 공간이 생겼나 보다. 작은 것에 감동하고 감사하기 시작했고 주위를 좀 더 넉넉한 마음으로 바라보려 노력하게 된다. 이 또한 세월이 내게 준 작은 선물이다. 비록 각자에게 주어진 삶이 다를지라도 다들 그 무게를 잘 버텨주길 바란다. 묵묵히 버티다 보면 그 끝에 웃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분명 볼 수 있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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