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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Feb 03. 2022

억울한 열 살 인생



그 녀석을 처음 본 순간 한눈에 보통내기가 아님이 직감되다. 눈빛이 남 달랐다. 초롱초롱하다거나 눈에서 레이저를 쏘는 듯한 그런 강렬함이 있다는 게 전혀 아니다. 오히려 쳐진 눈매 때문에 약간 흐리멍덩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어쩐지 불만에 가득 찬 눈빛이다. 그리 크지 않은 눈동자는 항상 위나 아래로 향해 있다. 입꼬리마저 아래로 쳐져 있는 데다 뭐가 못마땅한지 입은 한 발이나 나와 있다. 억울한 일을 당해 뭔가 따지는 듯한 그런 인상이다. 관상을 전혀 볼 줄 모르지만 순간 이 아이와 함께  시간들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이번에 새로 들어온 친구예요. 이름은 ooo구요"

복지사 선생님이 느닷없이 한 아이를 데리고 교실로 들어섰다. 매주 월요일 오후 한 복지관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을 위한 요리 수업을 진행하는 나는 주로 매달 첫 주에 새로운 친구들의 얼굴을 보게 된다. 근데 이 친구는 1월 수업이 이미 반이나 지난 시점에 수업을 듣겠다고 왔다. 나도 이곳에서 수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잘은 모르지만 보통 학기 중엔 고정 멤버들만 수업을 듣다가 방학 때 새로운 친구들이 몇 명씩 추가되고 다시 개학하면 원래의 인원으로 돌아가고 그런 것 같았다. 맞벌이 엄마든 전업 주부 엄마든 모두 방학 때는 힘들기 마련이다. 나도 방학 때마다 아이들과 집에서 하루 종일 함께 지내다 피아노 학원이라도 가주면 왠지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교실에 오자마자 아이는 스스럼없이 다른 아이들과 뛰어다니고 잘 어울렸지만 전반적으로 너무 산만하고 과격한 느낌이 든다.

"선생님, 이 형이 칼 들고 계속 따라와요"

그동안 우리 수업의 유일한 남자아이였던 1학년 A가 나에게 일러준다. 비록 플라스틱 재질이지만 수업 시간에 쓰는 조리용 칼까지 손에 들고 동생을 쫓아다닌 모양이다.  딴엔 같이 놀자고 한 행동 같은데 어째 벌써 느낌이 싸한 게 그리 좋지 않다.




그래도 지난 시간은 아이에겐 첫 수업이었고 비교적 간단한 요리라서 큰 문제는 없었다. 단지 딸기를 컵케이크 위에 꽃처럼 꽂아야 하는데 자기는 딸기를 싫어한다고 계속 투덜 됐다. 세상에 딸기를 싫어하는 아이라니. 이제껏 딸기를 싫어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참 특이한 취향이다 싶었다. 그런데 이 녀석의 말하는 투가 슬슬 신경에 거슬리기 시작한다.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할 말은 다 하는 편이지만 이 아이는 매사 공격적이고 불만이 가득 찬 말투다. 어차피 요즘 딸기도 비싼데 싫다는 걸 억지로 시킬 필요가 없겠다 싶어 그 녀석 접시에서 딸기를 얼른 치워주었다.

 



문제는 이번 주에 발생하였다. 7천 세대가 넘는 대규모 아파트 옆에 있는 곳이라 복지관에서 아이들을 위해 차량 운행을 해준다. 보아하니 차량이 여러 대다. 그러다 보니 일찍 도착한 차에 탑승한 아이들은 수업 시작 전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만 곧장 교실로 들이닥친다. 하지만 다른 차량에 탑승한 아이들을 기다려야 하므로 먼저 도착한 아이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자기들끼리 잘 논다. 수업 시작 시간이 다 되었고 하나둘 자리를 잡고 을 때 맨 앞에 앉은 A가 날 부른다.

"선생님, 여기 휴대폰이 있어요"

그 자리는 항상 A가 앉던 곳이라 누가 잠시 올려놓은 것 같아 별생각 없이 휴대폰을 받아 내 책상에 올려 두었다. 그때였다. 밖에서 놀고 있던 OO가 교실로 들어오더니 A가 앉은자리는 자기가 휴대폰으로 맡아놓은 자리라며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앞으로 정신없이 50분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나 자신의 멘탈을 위해 그 녀석이 앞자리엔 앉는 일은 좀 피하고 싶었다.

"어떡하지? 이미 A가 앉아 있고 늘 이 자리에 앉아 왔었는데 오늘은 OO가 그냥 다른 빈자리에 가서 앉으면 안 될까?"

아이를 달랜 후 데리고 빈자리로 향했다. 그냥 가만있을 아이가 아니란 걸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구시렁거리는 선에서 끝날 줄 알았다. 고분고분까진 아니더라도 2학년밖에 안된 녀석이 친구들 모두가 바라보는 자리에서 나에게 고함을 치며 달려들지는 상상도 못 했다. 혼자 흥분하여 뭐라 뭐라 고함치는데 너무 빨라 알아듣지도 못하겠고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러나 마지막에 들은 말은 정확히 기억한다.

"그러면 제가 억울하잖아요!"




이 녀석은 억울한 게 너무 많은 아이다. 이미 온몸에서 그게 묻어나고 있다. 양보한다는  또한 자기가 억울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왜 하필 자기가 그래야 하는지 모든 게 너무 억울해 죽는 10살짜리다. 유달리 남자 동생에 대해선 그 감정이 더 심한 것 같았다. 아이가 이렇게 되기까지 여러 요인이 있겠다 싶었다. 아이를 신문고 앞으로 데리고 가 북을 맘껏 두드리게 하고선  '네 맘 속의 억울함을 모두 말해 보거라'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 생겼다. 모든 아이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날 지켜보고 있다. 심지어 지난주부터 자원봉사 나온 사회복지학과 대학생도 뒤에서 숨을 죽이고 이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나도 한 성격 하는 사람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남의 새끼인 고작 10살짜리에게 화를 낼 수도 야단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버릇없이 구는 놈을 이번에 그냥 넘어가게 하면 앞으로도 계속 날 만만히 볼 것이다. 게다가 다른 아이들에게도 좋지 못한 선례를 남길 것이 분명했다. 이미 몇몇은 실실 나를 견주고 있는 중이다. 그다지 현명하지도 지혜롭지도 않은 나를 어째 이런 험난한 시험에 들게 했는지 누군가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나도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단 50분의 주 1회 수업을 위해 집에서 버스로 왕복 두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온다. 그것도 빈손이 아니다. 온몸에 무거운 재료들을 짊어지고 다닌다. 운전도 주차도 서툴지만 무엇보다 강사비가 적어 차를 끌고 오는 건 생각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경력이나 쌓고자 하는 일도 아니고 그저 봉사라는 큰 뜻을 품고 다니고 있는 중이다. 조금이라도 싸고 좋은 재료를 구입하려고 한 번의 수업을 위해 장도 보통 3번씩 본다. 월요일 50분의 수업을 위해 나의 일요일은 이미 반납했으며 내 품을 더 들여서라도 수업의 퀄리티를 높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1, 2 학년 상대 수업이라고 결코 소월 하게 준비하는 법이 없다. 그저 아이들이 즐거워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나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음 그걸로 된 것이라 생각했다. 근데 갑자기 엉뚱한 놈이 나타나서는 교실 분위기를 다 망가트리고 그저 좋은 선생님으로만 보이고 싶은 날 곤경에 빠트리고 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물론 다 큰 자식들만 있는 나에겐 초등학교 1, 2학년들은 너무 귀엽다. 나도 모르게 자꾸 아이들 궁둥이를 두드려 주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50분짜리 주 1회 수업을 담당하는 선생님이라도 수업 분위기를 흩트려 놓거나 위험한 행동을 했을 땐 야단을 쳐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예전 딸애 초등학교에서 봤던 나이 많은 한 여선생님의 히스테리컬 한 모습도 떠올랐다. 다른 아이들 눈에 야단치는 내 모습 또한 그리 비치지 않을까 살짝 두려웠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A야, 미안한데 오늘만 형아한테 네가 양보해줄래?"

oo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최대한 큰 목소리로 지금 선생님이 화가 몹시 나 있다는 걸 표시 냈다. A는 당장 가방을 챙겨 뒤 빈자리로 왔고 oo은 약간 기가 죽은 듯한 모습으로 본인이 그리도 원하던 그 자리로 갔다.




저학년 아이들이 과연 잘할 수 있을지 주말 내내 날 걱정에 사로잡히게 한 '삼색 샌드위치' 수업이 곧 시작되었다. 삐약이들은 선생님을 애타게 부르기 시작했고 난 그들 사이를 분주히 움직여야 했다. 칠판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아무리 설명을 찬찬히 반복해해도 몇몇 야무진 꼬맹이들을 제외하고는 다 부질없는 것들이다. 그저 선생님만 찾는다. 그 녀석도 좀 전에 자기 때문에 선생님이 화가 났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날 찾기 시작했다.

"이거 다했어요, 다음은 뭐해요? 네? 선생님! 네?"

그러나 확실히 여느 아이들이랑 다르긴 다르다. 다른 아이에게 순서가 밀리기 싫어서인지 요리하는 게 싫어서인지 뭐든 대충 해놓고 무조건 부르기만 한다. 옆에 가서 삶은 달걀을 지금보다 더 잘게 썰어라 하면 뭔가 사나운 말을 뱉고는 달걀에 무슨 원한이 있는 것처럼 칼로 달걀을 무섭게 다다닥 내리친다.

"OO야, 너는 왜 이리 사납지?"

꿀밤 한 대 먹이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참고 옆에서 도와주며 최대한 아이에게 다정한 투로 말을 건네본다. 아이의 대답은 예상 밖이다.

"우리 형은 더 사나워요"

그렇담 본인도 자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사납게 대하는 걸 알고 있다는 말이며 형은 또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는 부분이었다. 그럼 엄마가 많이 힘들겠다고 하자 아이는 그제야 속에 쌓아둔 모든 억울함의 원인에 대해 조금씩 내비치기 시작한다.

"아뇨, 우리 형은 나한테만 그래요. 할머니, 엄마, 아빠, 고모한테 절대 안 그래요. 아무한테도 안 그래요"




몇 마디 안 나눠 본 아이와의 대화에서 어떤 상황들이 이 10살짜리 인생을 이토록 억울하게 만들었는지 아주 조금은 짐작이 갔다. (물론 절대 다 믿을 수는 없지만) 그래, 그러면 나라도 억울하지. 나 역시 그런 일을 오랫동안 당해왔지만 나는 아이와 다르게 성인이었다. 나름 나에게 건설적인 방식의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었다. 하지만 oo은 아직 어리기에 본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거라곤 그저 다른 사람들을 향해 자기의 억울함을 공격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 말고는 없는 것 같았다. 그 아이에겐 양보란 또 다른 억울함이고 그래서 수업 시간 내내 다른 아이보다 더 큰 소리로 선생님을 불러댔다. 몇 마디만 나눠보면 조금이라도 파악할 수 있는 아이의 마음가족들은 너무 감정적이 되어서 어루만져 주길 힘든 걸까?






2월 계획서를 제출하기 전 다음 달 수강인원이 몇 명인지 파악되면 미리 알려 달라고 담당 복지사 선생님에게 부탁했었다. 드디어 선생님한테서 연락이 왔다. 2월 수업은 1월보다 3명의 친구가 더 늘었다고 한다. 지금도 힘에 부치는데 3명이나 더 늘었다고? 그 말은 다음 달엔 손질해야 될 재료도 고 갈 짐도 더 늘어나게 됐다는 거다. 당연히 내가 통제해야 될 아이 수도 더 늘어나고. 처음엔 인원수가 많아지면 시간을 한 시간 더 늘려줄 것처럼 복지관에서 얘기했었다. 2월엔 처음보다 인원이 2배나 더 늘어났는데도 그저 내가 힘들까 봐 더 이상은 신청을 받지 않겠다고만 선심 쓰듯 얘기한다. 인원수에 상관없이 시간당 강사료를 받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싶다. 배신감이 느껴진다. 조심스럽게 선생님께 oo도 수강 신청을 했는지 물어보았다. 다행히 2월엔 부딪힐 일은 없을 것 같다. 이기적인지 모르겠지만 주어진 50분이란 짧은 시간 내에 모든 아이들의 요리를 완성시켜야 하는 나는 한 명에게만 매달릴 여유가 전혀 없다. 안타깝지만 그렇게 되면 또 다른 억울한 일들이 생기게 된다. 아무쪼록 다음에 만나게 되면 그 아이의 마음에서 억울함이 좀 누그러지고 나에게도 아이의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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