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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Mar 08. 2022

오늘도 이렇게 위로를 받았습니다

살다 보면 한 번쯤 누군가로부터의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각자 받고 싶은 위로의 방식은 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내 맘을 좀 알아주고 공감해줬음 하는 거다. '그래, 그래서 힘들구나', '그것 때문에 슬프구나', '수고 많았네', '괜찮아, 아마 나라도 그럴걸'... 아무리 힘든 경우라도 그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듣게 된다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하지만 적시적소에 그 귀한 걸 듣기란 참으로 쉽지가 않다. 네가 잘못 살아와서 듣기 힘든 거라 내게 꾸짖는다면 어쩜 그것도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리 말랑말랑한 성격도, 모든 걸 포용할 수 있는 스펀지 같은 성격도 아니다. 좋고 싫음이 확실하고 심지어 예민하기까지 하다. 가끔 가식적이고 형식적인 게 아닌 진정한 위로가 그리워 우울해질 때마저 있다. 그러나 이젠 위로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붙들어 놓고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하게 하는 일 따윈 하고 싶지 않다. 일상에서 내게 위안과 위로를 주는 것들을 찾아 스스로 치유해보는 것도 꽤 괜찮은  방법이란 걸 깨달아 가고 있다.

 





"선생님, 이거..."

한 꼬맹이가 가방에서 제법 값나가는 초콜릿 과자를 꺼내 내게 내민다. 나 주는 거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왜? 선생님한테 왜 주는데?"

"오늘이 마지막이라서..."

세상에... 오랫동안 같이 수업한 것도 아니고 겨우 4번 하고 헤어지는 건데 그 마지막 수업이 마치는 순간 내게 이런 깜찍한 선물을 주다니. 꼬맹이의 마음이 너무 이뻐 나도 모르게 아이의 궁둥이를 두드려주고 있다.

'고마워, 선생님 생각해줘서. '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복지관 요리수업을 위해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제껏 근무했던 선생님들 중 단연코 최고라는 소리가 좀 듣고 싶었던 거 같다. 그 한 번의 수업을 위해 참으로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건만 복지관의 그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다. 생색을 좀 내고 싶었던 난 제풀에 그만 지친 꼴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아이의 선물이 사람 맘을 다잡게 만든다. 그 자그만 과자 한 봉지가 뭐라고 날 토닥토닥 위로해주고 있다. 그래, 너희들만 좋으면 나도 좋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에게 과자를 내밀며 부끄러워하던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혼자 내내 씩 웃는다.






이 소리는... 그 새소리가 분명하다. 휘파람새다. 드디어 다시 돌아왔구나. 그동안 얼마나 그리워했는데. 여전히 맑고 청아한 듣는 사람의 마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소리다. 몇 달만에 그 소리를 듣자 정말 내 마음속에도 봄이 찾아온 것 같다.





아침 숲 산책을 할 때면 오솔길 양 옆으로 대나무가 무성한 지역을 지나치게 된다. 어느 날 그 길을 걷다가 신비롭기까지 한 맑고 아름다운 새소리를 듣게 되었다. 가만 집중해 들어보니 아주 오래전 어디선가에서 들어본 적이 있던 소리다. 무릉도원의 복숭아나무 위에서 한 늙은 신선을 위해 노래 부르고 있는 듯한 그 새소리에 매료되어 그 이후 기억에 뚜렷이 각인되어 있던 거였다. 그 소리를 인지하고 나서부턴  매일 그곳을 지날 때마다 마음을 울리는듯한 휘파람새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그곳은 내가 '위로의 나무'라 이름 붙어놓은 나무가 있는 부근이다. 조용한 새벽 숲, 위로의 나무를 껴안고 멀리 광안대교를 바라보며 듣는 그 소리는 이 세상 어느 것보다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지난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 때쯤이었다. 매일 아침에 들을 수 있던 정겨운 그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혹시 숲 다른 곳에 잠시 날아갔나 그다음 날을 기다려보았지만 그날도 그다음 날도 아무런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몇 달이 지나고 얼마 전부터 반가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다시 왔구나. 그동안 어디 갔었니. 오늘따라 '위로의 나무' 바로 옆 대숲에서 지저귄다. 나무를 껴안고 눈을 감으며 그 소리에 집중한다. 마음이 잔잔해진다. 고마워, 내가 그동안 널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알아줘서. 그래서 잊지 않고 또다시 찾아온 거라고 믿을게. 내 마음을 알아준 것만 같은 휘파람새로부터 이제 다시 매일 아침 위로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한동안 연락이 되지 않던 친한 동생이 알고 보니 그동안 급하게 허리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가족을 위해 언제나 정성껏 음식을 하는 그녀가 입원하면 그의 외동이 소중한 아들과 남편은 꽤 곤란할 것 같았다. 평소 나도 그녀의 반찬이며 여러 음식들을 신세 져 왔는데 이번에 내가 그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기회가 온 것이다. 더구나 어릴 적부터 봐 온 그녀의 아들은 3월에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앞으로 그 녀석을 기회도 잘 없을 것 같았다. 요리 고수인 지 엄마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꽤 손맛은 있는 편이다. 앞으로 기숙사 생활을 잘하기 바라며 집을 떠나기 전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맘에 몇 번 음식을 해서 그녀의 아파트 관리실에 맡겨 두었다.




아이 기숙사 들어가는 일 때문에 맘이 쓰였는지 그녀는 예정보다 빨리 퇴원했다. 아직 앉으면 안 되는 그녀는 기어이 남편이 운전하는 차 뒷좌석에 누워 아이의 길을 동행하여 기숙사에 넣어주고 온 모양이었다. 이제 막 데려다주고 오는 길이라며 아이 학교가 있는 지역의 꽤 유명한 떡이라고 작은 상자를 하나 나에게 내민다. 뭐하러 이런 걸 냐고 한소리 했더니 내가 해준 음식을 남편과 아이가 맛있게 먹어서 뭐라도 사주고 싶었단다. 그렇게 치면 난 를 위해 아예 방앗간을 하나 차려야 된다며 일부러 이런 거 사지는 말라고 우리는 그런 사이가 아니라 했다. 집으로 돌아와 상자를 열어 떡을 하나 입에 넣어보니 이빨로 씹을 수고도 필요 없이 그냥 살살 녹아내린다. 고마웠다. 비록 내가 여태껏 얻어먹은 게 더 많았지만 내 작은 성의를 알아줘서.




그녀에게서 또 연락이 왔다. 그녀의 연락은 언제나 나에게 줄 것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번엔 고로쇠 물이란다. 그녀의 친정아버지가 고로쇠 농사를 짓는 지인에게서 구한 거라 했다. 파는 건 물을 섞는데 이건 나무에서 나온 원액 그대로임을 강조한다. 들기도 무거운 것을 그녀의 남편까지 대동하여 작은 카트에 싣고 왔다. 회복 중인 딸을 위해 아버지가 구해주신 그 귀한 걸 나에게 이리 많이 주냐고 하자 허리에 좋다며 형부 드시게 해란다. 세상에 누가 누굴 생각하는지.  허리나 걱정해라 핀잔을 주니 웃으며 자기도 많이 마신단다. 그깟 몇 번 음식 배달했다고 나에게 이렇게 뭘 많이 갖다 주면 정말 남는 장사라고 넉살을 부렸지만 결국 또 빈손으로 그녀의 선물을 받았다. 도대체 내가 신세를 갚을 기회조차 그녀는 주지 않는다. 덕분에 맛보게 된 입에 사르르 녹던 카스텔라 인절미도 비싼 고로쇠도 모두 고맙긴 하지만 무엇보다 별거 아닌 내 정성에 이렇게 후한 점수를 주는 그녀에게서 오히려 내가 진정한 위로를 받은 기분이다.






레몬글라스, 어쩜 이름도 이리 이쁜지. 내가 레몬글라스란 이름을 처음 접한 건 가족과 함께한 태국여행에서였다. 당시 비누 만들기에 한창 재미를 붙였던 때라 필요한 에센스 오일을 사기 위해 한 가게에 들어섰다. 향을 직접 맡아보고 살 수는 없었기에 그냥 이름이 이쁜 레몬글라스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 직접 말린 레몬 필과 함께 섞어 만든 비누는 그야말로 대 만족이었다. 이름만 보고 고른 선택이 이렇게까지 성공적 일 줄이야.




장을 보기 위해 마트를 가면 으레 할인코너를 기웃거린다. 신선 제품을 할인해 파는 곳에 레몬글라스가 작은 투명케이스에 들어 있다. 이름만 들어봤지 보는 건 난생처음이다. 근데 그 모습이 꽤 신기했다. 뭐라 해야 하나. 약간 마른 파 같다 해야 하나 마늘 순 같다 해야 하나. 손가락 마디 크기로 잘려 있던 그것은 다른 어떤 허브보다 비쌌다. 그 작은 케이스 하나에 삼천오백 원인데 날짜가 좀 지나 신선도가 떨어졌다고 천 원 스티커가 새로 덧 붙여져 있었다. 천 원 정도면 내가 시도해봐도 될 것 같았다. 가끔 처음 시도해보기 두려운 향신료 같은 음식은 이렇게 할인코너에서 사면 실패해도 별 미련이 남지 않는다.




근데 이걸 어디에 쓰지? 뭘 해 먹지? 사기는 샀는데 활용도가 좀 애매했다. 일단 입에 넣어보니 무슨 사탕수수처럼 꼭 질긴 섬유질을 질겅질겅 씹는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오, 진짜 레몬향이 난다. 이건 그냥 먹을 순 없고 차나 다른 요리에 향신료로밖에 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날 저녁 메뉴인 찹 스테이크에 야채랑 같이 집어넣고 요리했다. 그 결과는... 스테이크의 품격이 달라졌다. 레몬을 제법 많이 짜 넣은 듯한 고급진 맛이다. 레몬글라스, 그건 아주 매력적인 향신료였다.




이걸 또 사려면 가격 때문에 꽤 부담스러울 테고 그냥 남은 걸 물꽂이 해서 번식시켜보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되든 안되든 남은 것을 작은 컵에 물을 넣고 담가 두었다. 그런 후 열대 식물인지라 난방을 거의 하지 않는 우리 집에서 추운 겨울을 잘 나도록 햇볕과 물에 신경 써가며 정성을 들였다. 검색해보니 금세 뿌리가 내린다 했는데 내가 산건 신선도가 한참 떨어져 약간 말라있던 탓인지 그 귀한 뿌리 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게 죽은 건지 아직 살아 있는 건지 생사확인조차 쉽지 않던 것이 드디어 어느 순간부터 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느리지만 새 순도 조금씩 올라오고. 날씨가 더 따뜻해지면 이젠 흙에다 옮겨 심을 거다. 내 정성과 기다림을 알아준 레몬글라스를 바라보며 오늘 또 위안을 받는다. 마치 내가 마음 쏟은 만큼 반드시 결과는 나오게 된다는 가르침을 주는 것 같다.



기나긴 기다림후 드디어 레몬글라스에 뿌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실 레몬글라스도 모두 뿌리가 나온 건 아니다. 새순은 조금씩 다 나와 있지만 아직 뿌리가 나오지 않아 여전히 생사가 애매모호한 것이 대부분이다. 다른 이들과의 관계도 그렇겠지. 과연 내 맘을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건지 알쏭달쏭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이젠 내 맘을 좀 알아달라는 투정이나 애원 따위는 하지 않는다. 혼자서도 충분히 위로받을 수 있는 나름의 방식을 조금씩 일깨워가고 있으니깐. 그리고 혹시 모르지. 묵묵히 기다리다 보니 마치 죽은 것 같았던 레몬글라스에서 뿌리가 내려진 것처럼 언젠가 내 맘을 꼭 알아줬음 하는 누군가가 늦게 서라도 나를 진가를 알아봐 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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