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스스로를 향해 이렇게 묻곤 한다.
'요즘 어때? 괜찮은 거 같아? 만족해? 앞으로도 그냥 이렇게 살 거야?'
상황에 따라 아님 똑같은 상황이지만 내 변덕 때문에 그 답은 수시로 달라진다. 가장 최근의 대답은 이러했다.
'아니, 이렇게 살기 싫어. 지겨워'
그래, 뭔가 지겹고 따분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과 사람들이 지겹다 느껴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고 싶은데?'
가만히 내 안의 소리를 귀를 기울여 본다. 재미있는 일, 적어도 당장은 그렇지 못하더라도 하다 보면 뭔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일들을 하고 싶단다.
'그렇담 까짓것 재미있는 걸 찾아서 하면 되지'
재미있는 일을 하기 위해선 우선 그 반대의 것부터 하나씩 정리해야 했다. 그 딴것에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할 만큼 모든 게 넉넉하진 않다. 체력도 시간도 열정도. 그러나 무슨 일이든 시작은 쉬우나 끝맺기는 참 어려운 법이다. 오랫동안 이걸 계속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고민하던 일이 하나 있었다. 처음엔 너무 재미있어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던 거였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그 열정은 순식간에 사그라졌고 더 이상 나에게 어떤 감흥을 주지 않고 있다. 그 불씨를 살리려고 나름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루함과 따분함만 커질 뿐이다. 더 이상 해야 할 이유도 재미도 시간적 여유도 없다. 진작에 멈추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이유가 딱하나 있었다. 마음에 걸리는 누군가가 있었다. 내가 재미없어진 그걸 너무나 열심인 그 사람 때문에 오랫동안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근 1년 가까이 질질 끌려가고만 있었다.
이른 아침 숲을 거닐며 끊임없이 나에게 물었다.
'정말 그렇게 하기 싫어?'
'응'
'후회 안 할까? 게다가 네가 빠지면 분명 사람들하고는 어떻게든 거리가 생길 건데. 어쩜 그들도 그것 때문에 너랑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지 모르잖아'
계속 발목을 잡아왔던 것이 또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래, 사람들은 타고나길 영악해서 자기에게 뭔가 도움되면 알아서 접근한다지 않나. 나 역시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그 사실이 너무 싫다. 처음 관계를 맺을 땐 그런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 그 이유가 희미 해질 때쯤 그동안의 쌓은 우정과 신뢰로 그 연을 충분히 이어갈 수 있지 않나. 어떻게 항상 사람이 수단이 될 수 있는지 그게 화난다. 나를 그렇게만 여기는 사람들이라면 미안해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만약 그거밖에 안 되는 관계라면 정리하는데 어떤 두려움과 죄책감, 미련마저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고 어느 순간 흥미와 재미를 잃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내 삶에서 무조건 정리해야 될 대상으로 삼는 건 아니다. 잠시 지쳐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복지관에서 아이들에게 요리를 가르치는 일이 요즘 그러하다. 슬슬 그 재미의 정도가 둔화되고 있다. 순간순간 이걸 왜 하고 있냐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모든 악조건을 무시하고 그저 내 인생에 처음 시도해보는 낯선 일에 대한 호기심과 재미, 그리고 봉사라는 이유만으로 시작했던 일이다. 하지만 요즘 이거 하나에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요구된다는 걸 몸소 깨닫고 있는 중이다. 편하게 하려면 또 다른 방법이 있겠지만 나름 완벽주의에다 일만큼은 남한테서 질책받는 걸 못 견뎌한다. 넘쳐나는 의욕과 더 잘하려는 욕심에 너무 열심히 하다 보니 슬슬 지치기 시작했고 나도 모르게 하나둘씩 자꾸 불만이 생겨나고 있다. 숲을 거닐며 다시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럼, 네가 원하는 게 뭐야? 강사비를 더 받고 싶은 거야? 아님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은 거야? 그것도 아님 수업시간이 더 늘어나길 원하는 거야?'
분명 자잘한 불만과 요구 사항들이 있긴 했다. 이번엔 이일을 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런데 너무나 확실한 답이 나왔다. 재미있어서. 아이들이 완성해놓은 요리와 그들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면 나도 모르게 보람과 희열이 느껴진다. 순간 내가 지금 무얼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당장 도서관에 가서 다음 달 수업 계획을 위한 요리 관련 서적을 15권이나 빌려왔다.
지금 당장은 재미없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실력이 늘어 곧 재미가 붙어질 것도 있다.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영어 리스링 때문에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다행히 영어 공부에 일가견이 있는 브런치 작가님들이 많이 계셔서 도움을 받고 있다. 일단 추천해주신 유튜브에서 내게 맞는 걸 하나 선택했다. 그냥 듣기만 하는 건 나에겐 별 도움이 안 되는 걸 같아 얼마 전부턴 dictation을 열심히 하고 있다. 하는 내내 나의 귀와 뇌에 크나큰 장애가 있다고 매번 확신하고 있지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석 달이 지나면 무언가 달라져 있을 거란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될 거라 간절히 바라며 재미를 붙이려고 노력 중이다. 아니, 재미있을 거라고 나 자신을 끊임없이 세뇌시키고 있는 중이다.
피아노도 다시 시작했다. 15년 전 7살 아들에게 피아노를 사주며 둘이 나란히 학원을 다녔다. 집에 피아노가 있거나 학원에 다니던 친구들이 어릴 적 너무나 부러운 탓에 마음속 한이 되어 있던 바였다. 바이엘부터 시작하여 체르니 100번까진 어찌어찌했는데 더 이상은 버거웠다. 무엇보다 내 것임이 확실한 손가락들이 오랜 시간 방치된 탓에 주인의 말을 잘 듣지 않았고 두뇌 회전이 느려 악보를 빨리 보는 게 어려웠다. 분명 간절히 원하고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점점 스트레스가 쌓여만 갔다. 2년을 매일 같이 몇 시간씩 피아노를 연습하다가 그 뒤 십 년 넘게 연주자보단 그저 아이들 연주의 청중으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해왔다. 그러다 지난겨울부터 조금씩 다시 시작해 소나티네 한곡은 완성했고 두 번째 곡도 이제 거의 완성되어간다. 계속 날 배신하고 있는 손가락들을 설득과 회유를 통해 조금씩 내편으로 만들고 있다. 단지 아직 새끼손가락이 여전히 뜻을 굽히고 있지 않지만. 느리지만 그냥 내 속도대로 천천히 악보를 보며 한 소절씩 새로운 부분이 연주 가능하게 될 때마다 뭔지 모를 재미가 다시 느껴진다.
다음 주부턴 당구 수업과 펜 드로잉 수업도 있다. 지역구에서 진행하는 무료 수업이지만 경쟁률이 엄청나게 높은 것들이다. 그 경쟁률을 뚫고 수강 신청에 성공한 것들이라 수업에 애착이 더 간다. 그림의 경우 집에서 혼자 그리는 것이 좀 지루했기에 또 잠시 쉬고 있었다. 펜 드로잉 수업을 통해 여럿이 하다 보면 아마 지루함이 덜할 것이다. 어쩌면 같은 취미를 가진 새로운 인연까지 만날 수도 있고. 당구의 경우 남편 역시 반가워한다. 배워서 같이 당구 치러 다니잔다. 그러고 보니 나랑 여러모로 코드가 안 맞는 남편과 같이 할 무언가가 하나 생길 수 있겠다 싶다. 생각만 해도 모두 다 설레고 기다려지는 것들이다.
재미라고 해서 꼭 어떤 쾌락만을 추구하는 건 아니다. 나의 경우 그 일로 얻어지는 성취감과 보람, 기쁨에 더 가중치를 두고 싶다. 분명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거고 어쩌면 끝끝내 재미를 찾지 못해 몇몇은 또다시 돌아 나와야 되는 것도 있을게다. 하지만 힘들다고 그 일이 꼭 지루하고 따분한 것도 아니고 반대로 쉽다고 또 다 재미있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누군가에게 재미있는 그 일이 나에겐 고개를 젓게 하는 것일 수 있고 동시에 내가 재미있어하는 것이 다른 이들에겐 미스터리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아주 주관적인 것들이지만 나에게서 재미란 멈추지 않고 계속 성장하길 바라는 내 삶의 주요한 자극이자 동력이다. 그래서 요즘 항상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자세히 둘러본다. 어디 뭔가 재미있는 게 또 있으려나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