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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nkorwriter Aug 22. 2024

찔레꽃

꽁트 한마당 (2)

"예전에 내가 금융관련 잡지(은행계새행원등에 썼던 글을 발표하고서 복사를 하고 그것을   스크랩해 두었는데 세월이 지나가니 복사잉크가 날아가서 글씨가 흐릿하게 변해가고 있었다그냥 두면 영원히 사라질 것 같아 내 소중한 지난날의   ‘꾸민 이야기 솜씨’를 계속 간직하고 싶어 밴쿠버에서 발간되는 주간지 ‘투데이즈머니( U-레이디)’ 에 재생해 보았다이를 다시 ‘브런치’에 올린다.   배경이   1980년대 초,   중반이므로 현재 상황과 일부 불일치하는 점이 있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필자 주]"





“아빠가 싫어서가 아니란 말이에요. 다만 이제까지 1일 교사로 나온 학부형들이 모두 대학교수나 큰 회사 사장님들이었는데---“


 그래. 딸아이의 말이 옳아. 감히 대학교수나 사장님에 비할 수가 없지. 그러나 이제 어떻게 하겠는가? 솔직히 말해서 한권석 대리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일주일전. 고등학교 2학년인 둘째 딸 선미가, “아빠. 우리학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학부형을 1일 교사로 모시고 한 시간씩 강의를 듣는데요. 다음 번이 아빠 차례예요. 근데 아빤 어쩜 바쁘셔서 강의를 못하실지 모른다고 선생님께 미리 말씀 드렸어요. 잘했죠?”라고 쫑알쫑알, 삐줏삐줏 얘기를 꺼내자 그만 화가 벌컥 치밀어 “이 녀석아. 아빨 뭘루 알아. 그깐 한 시간 강의 내가 못할 줄 알고?”하면서 큰소리 친 게 화근이었다. 한편으로는 피붙이인 딸애가 아빠를 평가절하하는 듯도 해서 어찌나 섭섭한지 강의를 하겠다고 약속하고 말았다.


 어영부영 일주일이 지나 한대리가 1일 교사로 딸아이 학교의 교단에 서야 할 날이 내일로 다가오자 그때서야 다급해져서 “얘, 선미야. 내일 강의한다는 거 지금 취소할 수 없니? 아무래도 걱정된다.”하면서 딸의 눈치를 살폈으나 때가 늦었다.


 “거 봐요. 그래서 아빠가 참석 못하실 거라고 슬그머니 담임선생님께 연막을 쳐두었었는데 부득부득 하신다고 우기시더니---난 몰라요. 오늘 밤샘하시더라도 내일 한 시간 강의하실 내용을 준비하셔야 해요.”


 딸아이는 아예 못을 박았다. 이제는 피할 도리가 없었다. 내일이라---

 하긴 일주일전만 해도 오기, 순전히 그 놈의 오기 때문에 앞뒤 생각 없이 강의를 하겠다고 했다. 까짓 왕년에 군대 있을 때 부하들 앞에서 훈시하듯 하면 되지 하고 가볍게 여기면서 점주 주변 예금권유 다니랴, 친구들 만나 술 먹으랴, TV앞에서 밤 12시까지 씨름하랴, 제 할 것은 다 했다. 그러다 보니 상대는 군인들이 아니라 감수성이 예민한 여고생이 아닌가. 혹 실수라도 하게 되면 선미가 얼마나 창피를 당할 까 생각하니 이것 큰일이다 싶어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그래서 한대리는 새벽 2시까지 이것저것 교양서적을 뒤적이며 공부(?)에 열중했다. 학부형이라는 이름이 그냥 쉽게 붙여지는 것이 아니구나 생각하면서---


 이튿날 아침 선미 다니는 학교 교실. 10분이 지나자, 학생들의 자세가 조금씩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교실 뒤편에서 강의를 참관하는 학부형들 중에는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며 하품을 참느라 안간힘을 쓰는 사람도 있었다.


 “에---어---그래서---에---맹자님 말씀이---아니 참, 고, 공자님이든가? 좌우간 학이시습지(學而時習知)하면, 어---그러니까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아---어---어흠, 어흠”


 한대리는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금년에는 여름이 유난히 일찍 와서인지 교실창문을 다 열어두었어도 바람 한 점 없이 덥기만 했다. 더구나 엊저녁 늦도록 준비한 강의내용이 입에서 돌기만 하고 나와주질 않으니 답답한 가슴이 한대리를 더욱 덥게 하는 듯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한대리는 교단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시선을 엉뚱한 데로 돌리는 딸아이의 얼굴이 수치심 때문에 진홍으로 물들어 있었다. 한대리는 심호흡을 했다. 어디선가 찔레꽃 향기가 가녀린 바람에 실려 왔다. 언뜻 교실 밖으로 눈을 돌리니 아하, 학교 담장에 찔레꽃 넝쿨이 붉고 푸르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갑자기 주마등처럼 어떤 기억이 그의 머릿속으로 스며 들었다.


 “여러분, 학교 담장에 찔레꽃이 참 곱습니다. 자알 피어 있군요.”


 느닷없는 엉뚱한 소리에 여학생들의 웃음꽃이 번졌다. 비웃음 섞인 표정들이 돌았다. 


 “35년 전 이맘때쯤, 우리 학교 담장에도 찔레꽃이 참 잘 피어 있었는데---황해도 옹진반도에서 서울로 유학을 온 나는 여름방학을 맞았지만 대학입시준비를 위해 고향에도 가지 못하고 그냥 서울에서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머리도 식힐 겸 학교운동장에서 축구시합을 하고 있었는데---바로 6월 25일이었습니다.”

 6·25이야기가 나오자 학생들의 표정은 뭐 저런 따분한 이야기를 하는 거야? 하듯 시선이 흩어졌다. 그러나 한대리는 개의치 않았다. 머릿속에는 그 동안 잊고만 있었던 이야기들이 이때다 하고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싸이렌이 울리고 우린 전쟁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삼팔선이 뚫리고 인민군이 쳐내려 온다고 야단이었습니다. 나는 서둘러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것이 나의 꿈 많던 고교시절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집에 와 보니, 마을은 온통 불타고 잿더미였습니다. 삼팔선 가까이의 우리 마을에 인민군들이 들어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마을의 빨갱이들이 설치기 시작하면서 저지른 짓이었습니다. 내가 본 것은 학살당한 마을사람들의 처참한 시체뿐이었습니다. 꿈 많던 18세 소년의 가슴에 증오심이 불타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의 시선이 하나 둘씩 슬그머니 돌아왔다. 뒤에 있는 학부형들도 잡담을 멈추고 귀를 모으고 있었다.


 “살아남은 동네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우리는 유격대를 조직했습니다. 가슴에 찔레꽃처럼 붉은 피를 흘리며 죽어간 부모님과 어린 동생들 생각에 잠 못 이룬 밤도 많았습니다. 우리가족은 단순히 지주(地主)라는 이유로 학살당했기 때문입니다.

 우린 무기도 없고 일정한 지휘체계도 없었으며, 어떠한 군사훈련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옹진반도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환히 안다는 이점(利點) 때문에 인민군은 보이는 대로 사살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당시 미국 군 소속 하에 있던 ‘8240 유격부대’에 가담하게 되었습니다.”


 교실은 제법 진지해졌다. 딸아이의 맑은 눈망울이 뚫어져라 고 아버지를 응시하고 있었다. 청아한 눈동자에 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어리고 있었다.


 “우리는 전마선을 타고 용호도, 기린도, 창령도, 대·소청도, 백령도 등을 누비며 괴뢰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한바탕 신나게 습격하고는 지도에도 없는 작은 섬으로 숨어버리는 우리들에게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지요.

 전쟁이 막바지에 달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괴뢰군이 철수한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그들과 마지막 접전을 벌였습니다. 이제는 네놈들이 물러가는구나! 그러자 그 동안 잊고 있었던 모든 설움이 복받쳐 올랐습니다. 비명에 간 가족들--- 그리고 빼앗긴 학창시절---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울려 나로 하여금 겁도 없이 그들을 향해 치닫게 했습니다. 놈들은 내게 집중사격을 가했습니다. 다리에 통증을 느끼고 쓰러지는 순간 어디선가 찔레꽃 향기가 강하게 내 코로 스며 들었지요.”


 한대리는 말을 멈추었다. 눈물이 핑 돌고 코끝이 찡해졌다. 짐짓 학생들에게 그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를 교실 창문 밖으로 돌렸다. 학교 담장에 흐드러진 찔레꽃을 잠시 바라다 보았다. 짧은 순간, 숙연해진 학생들로 하여 교실은 정적이 흘렀다. 시선을 다시 학생들에게 돌리면서 한대리는 왼쪽 다리를 서서히 걷어 올렸다. 


 “여섯 발의 총알을 몸 여기저기에 맞았는데 기적적으로 살아났어요. 아마도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 둥 한 사람은 살려야겠다고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 중 세발이 다리뼈에 박혀 무릎 아래를 완전히 잘랐어요. 지금 보시는 이 다리는 의족, 가짜 다리입니다. 하지만 생활하는데 별로 지장은 없어요. 전쟁 후에는 국가의 도움으로 은행원이 되었어요. 비록 이 나이에 대리밖에 못 되었지만---그러나 선미와 같이 귀여운 딸을 낳고 다시 평화로운 가정을 이룬 것에 만족합니다. 단 한가지 미안한 것은 전쟁 때문에 많이 배우지를 못해서 여러분들에게 좀 더 좋은 이야기를 들려 드리지 못한 것이 안타까---“


 미쳐 말이 끝나기 전에 학생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학부형들도 따랐다.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들도 더러 있었다. 선미 옆에 있는 여학생이 일어서서 박수를 쳤다. 모두들 따라 일어섰다. 수정 같은 딸아이의 눈에서 맑은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한대리는 찔레꽃 향기가 유난히도 더 진하게 가슴속 깊이까지 스며들어 오고 있음을 느꼈다. (1985년 6월 ‘새 행원’ 발표 작품)

l  6·25전쟁 참전용사님들께 존경심과 감사의 마음을 전해 드립니다.(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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