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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인생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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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nkorwriter Jul 26. 2024

노 시인의 시집

시가 있는 에세이 (2)

노 시인의 시집

     

       복잡한 도심

       살기에 바쁜 얼굴들이 긴장하며 오가는 

       광화문 네거리

       버스를 기다리며 나는 

       8순 노 시인의 시집 한권 사들고

       첫 장 들쳐 읽을 기대에 

       가벼운 흥분을 느꼈다.

       이 도심에 속하지 않는 이처럼

       여유로워졌다.

     

       “성공학 개론” 을 찾던 20대

       “돈버는 비결” 을 찾던 30대

       어느새 세월의 빠른 바람 속에 

       날려 보내고

       “중년의 건강관리” 를 찾게 된 40대 중반에

       어인 일인가

       노 시인의 시집 한권에 이리도 

       가슴 뛰고 있음은 

     

       인생살이 험한 고개 넘다가

       넘어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 넘다가

       뉘 부르는 소리에 문득 

       뒤돌아  보니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그렇게 울던 소쩍새“

       내 영혼 순수하던 10대

       그때 울던 소쩍새 거기 있었네

      

       돌아오지 않는 세월의 뒤안길

       그 향수에 눈물 젖어 

     

       아, 나도 모르게

       소쩍새를 노래하던,

       지금은 세월의 빠른 바람 속에서 곱게 풍화된

       노 시인의 시집에

       손이 갔었나 보다

     

       봄 더디 오는 도심의 4월 초순

       봄꽃은 내 마음속에 벌써

       화알짝 피어난다.                     (96. 4. 20) 



 초등학교 5학년 때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대통령 할아버지 생신 축하 편지쓰기에 내 편지가 뽑혔다. 경무대로 이승만 대통령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4.19 혁명이 일어나 무산되었다.


 대구 계성중학교 때 글쓰기를 했는데 국어선생님이 잘 쓴다고 교내 백일장에 참여하라고 하셨다. 지금 문단에서 활약하는 중견시인 정호승과 나, 그리고 소식을 알 수 없는 박명호란 친구가 서로 번갈아 가면서 입상을 했었다. 부상으로 구내매점에서 학용품이나 과자 등과 바꿀 수 있는 상품권을 받는 재미로 백일장이 있을 때마다 참여했다. 힘들었던 고교시절, 대학시절에도 글을 썼고 직장에 들어와서도 사내보에 계속 글을 썼다. 

 그러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돈 벌고 출세하는데 글쓰기가 무슨 보탬이 되는가? 그래서 펜을 꺾었다. 그리고는 혼탁한 삶 속으로 영혼을 던졌다.


 40대 중반을 넘어서며 뒤를 돌아볼 기회가 주어졌다. 앞만 보고 달리다가 그만 미끄러지면서부터였다. 내가 추구하던 것들이 사라지고 나니 내 가슴에 남은 것은 바람 뿐 이었다. 그래서였다. 나는 잠시 멈추어서 돌이키지 못하는 세월을 뒤 돌아 보았다.


 실용서적을 즐겨 찾던 서점에서 문학서적 쪽으로 발걸음이 옮겨졌다.

나는 생전 돈 주고 사 본 적이 없었던 시집 한 권 사 들었다. 그리고는 읽고 또 읽었다. 서 정주 시인의 인생이 그 시 구절 마디마디에 담겨 있었다.

 나는 다시 펜을 들기 시작했다. 1996년 그 해 나는 문학공간에 시로 등단하였다. 늦었지만 순수했던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밴쿠버에서도 신춘문예가 있어 수필로 등단하였다. 글쓰기가 분명 돈 되는 일은 아니지만 이국에 살다 보니 짙어지는 외로움을 모국어로 토해내는 후련함이 좋아서 계속 글을 쓰게 된다. 

 50대 중반을 넘어 가고 있는 요즘, 그리운 추억들은 한 두 조각씩 흩어져 버리고 육신은 점차 늙어 가지만 펜만 들면 영혼은 점점 젊어져 가는 느낌이 든다. 


 외로운 타국에서의 삶, 새로이 불씨 일구는 문학으로 하여 풍성하다.


<되돌아보니>


40대 중반에 다니던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권고 받았다. 인생 다 살은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새파랗게 젊은 시절. 그때는 ‘이 나이에 무엇을 해 먹고 사나’ 하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힘든 낮과 밤. 문학으로 위로 받았다. 그냥 삶의 넋두리 같은 시가 양산되었다. 그러나 남긴 족적이 있어 마음 흐뭇하다. 내가 나에게 축하한다. 잘 버티었다. 잘 견디었다. 이제는 마음의 평안을 누리며 남은 인생 잘 살아라. (2024년 7월 21일. 일요일. 밴쿠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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