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인생 03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ankorwriter Jul 26. 2024

아내의 출타 사흘째

시가 있는 에세이 (3)

아내의 출타 사흘째

     

     

      “ 쌀 네 컵, 물 다섯 컵, 너무 많이 씻으면 밥 맛 없어져요.

        냉장고에 계란장조림, 불고기, 오징어무침, 깻잎절임,

        콩자반, 그리고 당신 좋아하는 골뱅이 무침도 해 뒀어요. 

        당신 아들, 간식으로 과일 주시고 과자 너무 많이 

        먹지 않도록 해 주세요. 모처럼 부자父子간에 대화 많이

        하세요. 매일 전화 할게요.”  

     

        아내가 무슨 일로 일주일간 지방에 갔다. 아내는

        포스트 잇 쪽지에다 깨알같이 집 비운 사이 주의할 점을

        써 두고 갔다. 아무 걱정 말고 다녀와. 문제없어. 총각 때 

        나도 자취생활 많이 해 봤거든-------

     

        사흘째.

        궁상맞게 비는 왜 와

     

        아들과 별로 대화하지 못했다. 밥 짓기 귀찮아 라면 끓여 먹고 자장면,

        양념통닭, 피자 나부랭이 시켜 먹었다. 집안이 절간이다. 아들은 어쩐지

        어깨가 축 늘어져 보인다.  나도 그렇다. 하아, 겨우 사흘째인데

     

        한 십 년 못 본 것처럼 

        아내가 그리워진다. 

     

        부자지간에 전화통만 쳐다보며

        눈이 빠진다.

        목이 빠진다.                        (96. 3. 21) 

     


 IMF 이후 직장을 그만두면서 어느새 나도 ‘나도족’이 되었다. 아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나도 같이 가, 나도 따라 갈게’ 하는 40 ~ 50대 퇴직가장의 일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패션디자이너들의 지방출장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당시 아내는 모 의류회사의 패션디자이너로 근무했었는데 지방 소비자들의 패션 선호경향을 조사하러 가게 되었었다. 그러니 거기까지는 따라갈 수 없었다.

 “그래 잘 다녀 와” 하고 보냈지만 사흘이 한계였다. 심지어 잔소리까지 그리웠다. 그렇게 긴 일주일은 난생 처음이었다. 생각해보니 결혼 이래 아내가 그렇게 오래 곁을 떠나 있었던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아내와 선본지 두 달 만에 결혼한 것은 아내의 순진함 때문이었다.

두어 번의 연애에 실패하고 쉰 번째도 더 되는 맞선에서도 평생을 함께 할 반쪽을 차지 못하였던 나는 여자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해 버렸었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나더러 눈높이를 낮추라고 했지만 눈높이 문제가 아니었다. 평생을 함께 해야 할 사람이라면 처음 만남에서부터 호감이 가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남녀의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이 대개 그러하듯이 내가 좋으면 여자 쪽이 싫다하고, 나는 싫은데 여자 쪽은 좋다하고--이런 엇갈린 만남들이 서른둘 되도록 이어 졌었다. 종래는 나도 지치고, 부모님도 힘이 빠지셨다.

 “ 장가는 니가 가는 것이니까 이제는 니가 알아서 해라.”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힘을 좀 빌리기로 했다. 직장부근의 영락교회에서 수요일 저녁예배마다 참석하면서 기도했다. 하나님. 부잣집 딸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절세미인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꽃 좋은 봄밤, 비 오는 여름밤, 달 밝은 가을밤, 눈 내리는 겨울밤을 평범한 삶의 희로애락을 이야기하며 함께 지새울 수 있는 여인이면 족합니다. 평생을 살아도 그리움에 사흘을 못 견딜 그러한 여인을 제게 허락하시옵소서. 그러면 나는 그녀를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으로 만들 것입니다.


 아내는 천성이 명랑했다. 세상 고뇌는 혼자 다 진 듯 살아가던 내게 아내는 삶이 괴로움이 아니라 즐거움이란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내가 꿈꾸었던 대로 아내는 그늘이 없었다. 아내의 밝음은 오랫동안 쌓였던 내 안의 어두움을 지워주기 까지 했다. 밴쿠버에 와서 생전 처음 해보는 장사를 하면서도 그랬다. 물론 아내도 사람이니 구름 낄 때가 없지 않았지만 오래 간 적이 없었다. 그러한 성격은 한 줄기 빗방울에도 폭우를 생각하는 나를 잘 어울러 주어왔다.


 요즘 잠잘 때 아내의 얼굴을 살핀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구하기 위해 교회에서 기도하던 내 행복 만들기의 약속이 물질적인 측면에서는 물거품이 된 듯 하여 안타깝다. 이마의 주름이 나 때문인 듯 하여 가슴 아프지만 좋은 꿈꾸는 듯 환한 얼굴이 나를 안도케 한다. 

 아내의 미세한 감정 변화도 내게 파도처럼 감지되는 이국생활, 그녀 없이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일상이 내겐 평안으로 다가온다.


- 하나님, 제게 이 여인을 허락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되돌아보니>


아들이 벌써 10여 년 전에 결혼해서 자기 가정을 이루니 우리 부부는 둘만 남았다. 세계 여행 다니면서 알콩달콩 오순도순 잘 살자 했더니 웬걸, 늙으면서 자라는 흰머리와 함께 고집도 무성하게 숲을 이룬듯하다. 아내의 깔끔한 성격이 나의 얼렁뚱땅에 태클을 건다. ‘으이구. 증말’ 하다가도 아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니 복종만이 ‘장수의 길’임을 진작 깨닫는다. 젊을 때는 사나흘 견뎠는데 지금은 반나절도 못 견딘다. 수저는 어디에 있고, 김치는 어디 있고, 밥은 어떻게 덥히고, 전자레인지는 어떻게 사용하고--- ‘내가 손자 둘 키워요’ 하는 아내 말에 수긍이 간다. 지금이라도 부엌일 좀 배울까 하다가. ‘어차피 이 오빠가 먼저 갈 터인데’ 하면서 게으름 피운다. 여자의 평균수명을 남자보다 더 길게 잡은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냥 마누라 보살핌 받다가 세상 하직하는 것이 나의 마지막 행복이지 싶다. 


(2024년 7월 21일. 일요일. 밴쿠버에서)





이전 02화 노 시인의 시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