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인생 04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ankorwriter Jul 26. 2024

일말의 양심

시가 있는 에세이 (4)

일말의 양심



       붐비는 지하철 3호선 

       운 좋게도 빨리 좌석에 앉았다.

       ‘ 하나님 감사합니다 ’

       가방에서 성경책을 꺼내 읽었다.


       어디선가 박자 음정 맞지도 않는

       찬송가 소리

       둘 다 얽은 얼굴, 맹인 부부가

       구슬픈 이중창으로 적선을 구하며

       내 앞을 스치는데


       나는 갑자기 졸리듯 하품한번 하고

       점잖게 눈을 감는다. 속으로는,

       ‘ 흥. 하나님을 팔면서 구걸을 해 ? ’

       ‘ 빨리나 지나가지 걸음은 왜 저리 느려 ’


       저만치 찬송가 소리는 멀어지고

       동전 한 푼 적선 않은 것에 대한 당위성만 찾다가

       주변 사람이 자꾸 나를 힐끗거리는 것 같아

       그만 읽던 성경책 덮고


       내려야 할 곳이 아닌 역에서 서둘러

       내려 버렸다.                         (96. 3. 21)



 밴쿠버에도 전철은 있다. 여기 사람들은 ‘하늘 열차(Sky Train)’ 라고 한다. 그러나 교민들끼리 이야기할 때는 정겹게 그냥 전철이라고 말한다. 한국처럼 지하 운행구간은 별로 없고 지상 운행구간이 대부분이다.


 나는 밴쿠버 전철이 좋다. 첫째는 대부분 고가레일 위로 운행되기 때문에 차창 밖으로 그림같이 펼쳐지는 녹색도시의 경치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3년 전 이민답사 왔을 때는 가을이어서 단풍이 아름다웠다. 워터프론트 역에서 킹조지 역까지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면서 연신 카메라의 셔터를 늘러 대던 촌스러움도 이제는 좋은 추억이 되었다.

 둘째는 붐비지 않기 때문이다. 출퇴근 시간에는 여기도 붐비지만 서울만큼 살인적이지 않다. 어떤 때는 1~2분 간격으로 다니니 너무 간격이 짧아 다음 차량이 앞 차량 역 구내 빠져나갈 때 까지 기다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니 서울처럼 출퇴근 시간에 전철 타고 내리며 파김치 될 일도 없다.    

 셋째는 전철 표 한 장으로 90분 동안 대중버스나 Sea 버스 (다운타운과 북 밴쿠버를 왕래하는 내륙운송수단)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어서이다. 그랜빌 역은 충무로 역, 버라드 역은 명동 역, 워터프론트 역은 서울 역 하면서 밴쿠버와 친숙해지고, 지리도 익히느라 종점에서 종점까지 왕래하며 이민 초기에는 꽤나 자주 이용했다.  


 마지막으로, 밴쿠버 전철 안에는 잡상인이나 구걸하는 사람이 없다. 


사람이 별로 없으니 장사도 안 될 터이고 못사는 이민자들 천지니 구걸도 먹혀들지 않는다. 더구나 전철 경비요원들이 그런 행위를 못하게 말린다. 승객들은 적어도 그런 행위로 야기되는 피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서울 전철 안에서는 힘들었었다.

잡상인이야 뭐라고 떠들던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구걸행위는 그럴 수 없었다. 두 다리가 잘린 사람, 팔 없는 사람, 꾀죄죄한 얼굴의 갓난 아이 들쳐 없고 시한부 생명의 가난한 남편 약값 구걸하는 젊은 엄마,  고아, 맹인 부부 ----

 이런 사람들이 적선을 요구할 때마다 양심에 도전을 받았다.

‘이거 뭐 한 둘이라야지 ---’

‘나 먹고 살기도 힘겨운데---’

‘적선하면 주변 사람들이 너 잘났다 하는 표정으로 쳐다들 보더라 ---’

‘정부에서는 뭘 하나. 김정일이 퍼 줄 돈으로 빈민구제나 하지---’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적선을 해도, 하지 않아도 화가 났었다.


 밴쿠버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깨끗하고 조용하고 아늑하고---


 그러나 가끔은 슬프지만 치열한 생존경쟁이 있는 서울이 그립다. 다정한 벗끼리 소주한잔 나누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다 막차 전철시간에 맞추어 허둥대던 추억이 그립다. 연로하신 분이 내 앞에 서면 이 나이에 내가 자리를 양보해야 하나 고민하던 작은 양심의 갈등이 그립다. 무엇보다도 삶에 버림받고 내팽겨 쳐진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에 대한 몸부림이 그 안에서 전개되면 때로는 조는 척 하지만 때로는 분연히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불쌍한 이들에게 동전 몇 푼 쥐어주고 내 흐린 양심을 달랠 수 있었던 서울 전철 안이 그립다.     <2004.06.29. 플러스뉴스>    

                

<되돌아보니>


최근 한국에 간 것은 2023년 10월이었다. 지하철망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웬만한 경기도 지역도 다 다닐 수 있었다. 옛 추억에 잠기는 것도 잠시. 여전히 출퇴근시간의 지하철은 '지옥철‘이었다. 옛날에는 어떻게 살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지하철에 반짝 행상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구걸하는 사람들은 보지 못했다. 한국이 잘 살아서인지, 지하철공사에서 잘 단속해서인지. 나는 전자 임을 믿기로 한다. 


마침 경로석에 자리가 나서 아내와 둘이 앉았더니 맞은 편 노인이 나를 째려본다. 그리고는 혼잣말로 ‘요즘 젊은 것들은 도대체 경로사상이 없어’ 한다. 문제는 그의 혼잣말이 내 귀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나이보다 내가 젊게 보이는 것이 죄인가. 야구모자에 청바지 입고 있으니 경로석에 앉을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보였나? 허지만 낯선 사람으로부터의 눈총에 참을 내가 아니다. 내리면서 한마디 했다. ‘아저씨. 나도 70노인이요’. 했더니 아저씨 왈. ‘70도 나인가?’ 자기는 90이 다 되어 간단다. 그의 눈에는 내가 청년으로 보였나? 시력이 좋지 않은가 보다. 하면서도 괜히 기분이 좋다. 






이전 03화 아내의 출타 사흘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