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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인생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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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nkorwriter Jul 28. 2024

독도

시가 있는 에세이 (6)

독도


이대로 두어요

하늘이 처음 열리고

땅이 제 모습 들어낼 제부터

이 몸은 배달님의 것 이었지요


이대로 두어요

순결한 이내 몸

한 때는 버림 받은 듯

찾는 이 없었지만

외로움은 천성이라

우 천년 홀로 소박데기로 지냈어도

이 몸은 늘 배달님의 것 이었지요


이대로 두어요

꿈도 꾸지 말아요

당신이 내 순결을 유린한다면

천지신명 노여움 어찌 감당할 터예요

보세요. 50여 년 전 나가사끼, 히로시마

당신의 욕심으로 자초된

불벼락 잊지 않았겠지요


이대로 두어요

날 넘보다 당신은

동해바다 용왕님 노여움 타서

아예 모래한 알 못 남기고

침몰해 버릴지 몰라요


그러니

그 죽도(竹島)니 뭐니

죽도 밥도 안 되는 헛소리

죽도(竹刀)로 죽도록 얻어맞기 전에

제발 정신 좀 차리고


다시는 입 밖에 내지 마세요.


 밴쿠버에 와서 얻은 유일한 즐거움 중에 하나가 고등학교에 다니는 것이다. 나이 50 중반에 무슨 고등학교냐고 주위에서 말하지만 여기에 뿌리를 박고 살려면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야 하겠다는 자각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다니는 밴쿠버 성인교육원 이스트 다운타운 센터는 슬램 가에 위치해서인지 여느 성인교육센터보다 동양인이 비교적 적다. 유럽 이민자나 퀘백 등지에서 온 프랑스어 권, 밴쿠버 출신이라도 어쩌다 학업기회를 놓친 백인 또는 원주민인 퍼스트 네이션 계열의  캐나다인들이 제법 있다.  그러니 수업시간에 교사들은 동양인들의 청취능력은 생각하지 않고 상당히 빠른 속도로 강의 한다.


 뿐만 아니라 쉬는 시간에는 자기들 끼리 잡담을 주고받으며 낄낄거리는 데 동양인이 끼어들면 이내 흩어져 버린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들이 인종차별을 하느라고 그런 것이 아니고 말 잘 못하는 동양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자체가 성가시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끼리 나누는 속어표현을 동양인이 어떻게 이해하랴. 

 그러다 보니 자연히 얼굴색이 비슷한 사람 옆에 앉게 되고 그 중에서 나보다 아홉 살이 더 많지만 초록동색의 심정으로 일본인 캔과 친해졌다. 금년부터 노령연금을 받는다는 그는 30 여 년 전에 배낭여행 왔다가 여기에 주저앉게 되었다는데 주유소를 하다가 이혼당하는 바람에 그만두고 지금은 혼자 산다고 했다. 이웃 나라 사람이고 그의 처지도 불쌍해서 그와는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었는데 이번에 독도 문제가 불거지면서 그와 나는 서먹서먹한 관계가 되었다.


 1941년생이라면 일본패전 당시 네 살의 어린아이였을 터인데 어떻게 역사교육을 받았는지 독도는 수백 년 전부터 일본 땅이었고 우리가 강제로 점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작은 섬 하나 가지고 양국 정부가 싸울 것이 아니라 6개월 씩 서로 번갈아 가면서 독도를 관리하는 것이 좋지 않으냐고 자기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었다. 천생이 경상도 태생이라 나는 열을 올려가며 독도는 수천 년 전부터 한국 땅이었다고 주장하였지만 우리가 그렇게 굳게 믿는 것처럼 그들의 역사왜곡이 그들 백성들로 하여금 이미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의식을 굳게 심어 놓은 듯 하였다.

 이대로 방치한 체 세월이 흐른다면 일본의 한국 침략은 ‘조선의 근대화를 돕기 위한 것’이고 전범들은 ‘민족의 영웅’이고 동해는 ‘일본해’이고 독도는 ‘일본 땅인 죽도’라는 그들의 주장이 어느새 당연시 되어 한국은 속절없이 무뢰한 나라로 낙인찍힐 듯하다. 더구나 내가 캔과 논쟁할 때 나는 큰소리로 조리 없이 떠들고 그는 조용하고 차분차분하게 이야기하니 주변의 타민족이 모두 캔을 두둔하는 듯 했다. 마치 작금의 한일 외교상황을 재연하는 듯 했다.

 재발 한국 정치인들이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다가 문제가 불거지면 핏대를 올리는 식의 그런 외교정책을 펴지 말고 끈질기게 우리의 주장이 정당함을 펴나가는 슬기로운 외교정책으로 우리 땅, 우리 자존심을 지켜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절실하다.  


<되돌아보니>


일본. 가깝고도 먼 나라. 나는 해방되고 5년 후에 태어나서 일본인들이 한국인(당시는 조선인이었겠다)들에게 한 짓을 교과서에서나 배웠다. 교육은 무서운 것. 독립 애국지사 영화를 보면서 일본에 대한 미움의 싹을 키워 왔다. 독도 문제도 그렇다. 부득부득 자기 땅이라고 우겨대는 심사를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남의 땅에 와서 살아 보니, 동아시아권 사람들은 도매금으로 차별받는다. 코로나가 중국 우한에서 세계로 퍼지자 밴쿠버에서도 동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과 박대가 비일비재했다. 캐나다에서 오래 살아온 나도 아직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서로 말하기 전에는.  


동병상련이니 서로 위로하고 아껴줘야 하는 데, 그게 쉽지 않다. 물론 사람 못된 것은 국적 때문이 아니고 그 사람의 본성 때문이다. 일본인도, 중국인도 선량하고 호의적이고 착한 사람들이 많다. 잘 지내려고 노력하되 금기시 되는 것은 과거사다. 원수가 되려면 독도문제나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야기를 꺼내면 된다.


그러나 타국에서는 그저 유색인종일 뿐이다. 그나마 요즘 위로되는 것은 일본의 경제력이 한국이나 도진개진이라는 것. 언젠가는 우리가 앞설 날이 올 것이다. 


피할 것은 피하고, 도울 것은 도우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코케이시언(백인을 지칭) 땅에서 백년해로 하는 것. 이제 한국인은 지구촌의 주역으로서 배포와 아량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2024년 7월 23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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