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인생 07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ankorwriter Jul 29. 2024

시가 있는 에세이 (7)

        꽃 


       시들지 않는 꽃은 없다.

       늙지 않는 젊음은 없다.


       세월 흘러 꽃의 자태 사라지면

       기억 속에 남는 것은 꽃의 향기


       세월 흘러 젊음의 자태 사라지면

       추억 속에 남는 것은 사랑의 향기


       시들지 않는 꽃은 없다.

       늙지 않는 젊음은 없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을 말하라고 하면 주저 없이 30대 초반이라고 할 것이다. 성숙되지 않은 10대와 안정되지 않은 20대를 보내었지만 적당히 타협하고 체념하고 포기하게 되는 40대, 50대에는 아직 도달하지 않은 순간들. 한국 남자들의 부모님에 대한 4대 필수의무라는  졸업, 병역, 취업, 결혼을 모두 무사히 수행한 나이. 꽃으로 치면 화알짝 피기 전, 계절로는 초여름, 아직 꿈이 남아 있으며 세상을 향한 뜻을 세우고 과감하게 이루어 나가려는 의지와 패기가 남아 있는 나이. 


 나는 서른둘에 부모님을 떠나 가정을 이루었다. 서른셋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얻었다. 서른넷에 처음으로 바다건너 크고 아름다운 나라(美國)를 보았다. 이래도 괜찮은 건가 싶을 정도로 행복이 한꺼번에 밀려 왔었다.

 직장인 은행에서는 차장을 바라보는 고참대리로 내가 없으면 은행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가졌었다. 더 높은 곳을 향한 야심 찬 기대로 눈은 반짝거렸고 그때 나는 이 세상의 중심에 서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해외연수관계로 3개월 여 머물렀던 뉴욕에서 현지 교민인 오촌 당숙이 ‘장래를 생각해서 미국에 그냥 머물러 살지 않겠느냐’고 제의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었다.

“저는 아직 조국에서 할 일이 많습니다.”

일제 강점기 만주벌판을 말달리던 독립투사들처럼 나는 조국이 나의 희망찬 미래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럴 때가 나의 30대였다.


 2006년 어린이날인 5월 5일. 수원 공군전투비행단 비행장에서 열린 에어쇼 도중 추락한 전투기 조종사 김도현 대위의 나이는 서른셋이었다. TV에서 분향소에 설치된 그의 영정사진을 보았는데 탤런트로 나간다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미남이었고 늠름하였다. 아름다운 여인과 가정을 이루었고 두 아들을 두었었다. 비행기술은 공군 최고 수준이었고 소령진급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30대의 은행 고참대리가 은행장을 꿈꾸었듯이 30대의 공군대위는 어쩌면 참모총장의 꿈을 꾸었을지도 모른다.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남자나이 30대 초반은 그럴 나이였다는 것을 한 세월 보낸 50, 60대 한국남자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런 김대위가 창공에서 꿈을 접었다. 공군에 의하면 ‘지상 500피트의 낮은 고도 비행이었지만 비상탈출 하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김대위의 시신상태를 확인한 결과 왼손은 속도조절레바를, 오른손은 조종간을 잡고 있었다고 한다. 추락하는 순간에도 김대위는 기체를 정상적으로 운항하기 위하여 끝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기체를 포기하고 비상탈출 하였더라면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기념일을 자축하고, 연일 훈련하느라 같이 놀아주지 못했던 두 아들과 마냥 뒹굴고 뛰면서 평범하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한 순간들을 누렸을 터인데---

 ‘지금 비상탈출을 하면 기체는 방향을 잃고 어린이들을 포함한 1,300여명의 관람객들이 있는 곳으로 돌진할 것이다. 많은 사상자들이 날 것이고 내 아들 건우와 태현이 또래의 아이들이 희생될 것이다. 그럴 수는 없다. 내 한 몸 희생한다면 내 아들들은 한 아버지를 잃겠지만, 많은 아이들이 무사히 부모님 품으로 돌아갈 것이다. 용서해라. 건우야, 태현아. 비겁한 아버지로 일생을 사느니 용감했던 아버지로 평생 너희들 가슴에 살아 있을게.’

 그랬을 것이다. 죽음이 눈앞에 닥치면 모든 생물은 본능적으로 회피하기 위해 비이성적인 행동도 하기 마련인데 김대위는 그 본능적 삶의 욕구를 뛰어 넘었다. 살신성인, 인간으로서는 최고의 정신적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 내 자신보다도 남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은 김대위는 했던 것이다.


 김대위가 가던 날, 밴쿠버의 5월 첫 주말은 비와 바람으로 얼룩졌었다. 화사했던 벚꽃들은 보도위에 흐트러지고 개나리, 진달래도 고개를 떨어뜨렸다. 대신 신록의 잎사귀들이 교목과 수목을 장식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봄꽃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계절이 흐르면 꽃들은 사라지지만 우리는 그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를 모두 기억한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계절이 바뀌면 새로운 자태와 향기로 부활할 것임을 우리는 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희망이기도 하다. 꽃들의 부활이 있기에 우리는 시련의 겨울을 견디어 나간다.


 봄꽃처럼 짧지만 큰 인생을 살았던 김대위, 아니 김소령. 그는 떠났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부모님과 친인척, 동료, TV를 보며 함께 눈시울 붉히던 이웃과 먼 곳의 동족들 가슴속에 까지 그가 남기고 간 사랑의 향기는 진하게 퍼져 나갈 것이다. 그리고 새 봄이 되면 다시 우리들 가슴 속에서 소중하게 피어 날 것이다.  



<되돌아보니>


봄꽃 서로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며 경쟁하듯 피어나지만 어느덧 추하게 시들어가며 꽃잎은 땅에 떨어져 사라진다. 젊은 날의 미모, 부와 권세와 지위, 이런 것들 가진 사람들은 나는 얼마나 부러워하고, 시기하고, 때로는 미워했던가. 그러나 이제 시들어가는 시점에서 보니 다 부질없다. 그저 산보할 때 다리 덜 아프고, 컴퓨터 화면이 더 이상 침침해 보이지 않고, 볼일 좀 더 시원하게 보고, 스테이크 맛있게 먹도록 치아가 더 이상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 일, 일, 일, 일, 일, 일. 주 7일이 일요일인 노후. 그저 화려했던 시절 생각하며 한숨이나 쉬기보다는 무언가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작년부터 고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캐나다에서 나는 박사 출신 고등학생이 된 것이다. 


손주뻘 되는 젊은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니 내 가슴은 다시 뜨거워진다. 고3(Grade 12)까지 공부하게 되니 영어에 자신감도 생기고 해서 요즈음은 노년층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기초생활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죽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나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에 더해, ‘남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이다. 늘그막에 나는 공부로 승부하겠다. 적어도 내가 이 세상 떠날 때 내 손자는 기억하리라. 할아버지는 항상 책을 보면서 공부하던 사람이었다고.


(2024년 7월 26일 금요일)





이전 06화 어무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