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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인생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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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nkorwriter Jul 30. 2024

어떤 투표

시가 있는 에세이 (8)

 어떤 투표


 망국적 지역감정 타파 

 선봉이라고요?


 안보를 담보로 한 위협에 

 굴복하지 않았다고요?


 흥청대는 선심관광, 향응 제공

 유혹 뿌리쳤다고요?


 일류대학 못 나왔지만 

 진솔한 정치인이 될 것 같아 보여서요?


 아닙니다. 아니예요.

 그래서 당선이 유력한 ‘갑을당’ 후보대신

 무력한 ‘병정당’ 후보에게 한 표 던진 게---


 다만 ‘갑을당’ 후보의 이름이

 쥐꼬리 봉급 받는 선량한 월급쟁이

 먹고 싶은 것 못 사먹고

 입고 싶은 것 안 사 입고

 구두쇠 노랑이 소리 들어가며 모은 돈


 알뜰하게 모은 내 돈, 내 피 같은 돈 빌려가서

 두 배로 불려 주겠다고 굳게 약속하고

 떼어먹고 도망가 소식 한 자 없는 

 그 철면피와 이름이 

 똑 같아서 그만.


 당신도 내 경우라면

 별 수 없었을 겁니다.


 어릴 적 중소도시 국회의원 출마자 선거 합동유세장은 동네잔치 분위기였다.

국회의원 선거는 지역별로 선거유세가 열렸고 주로 학교운동장을 이용하였는데 유권자들은 누구를 지지하던 유세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TV도 없었고 라디오도 흔치 않았던 50년대 후반의 선거유세는 그것 자체로도 하루를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 행사였다.


 유세장 한편에서는 으레 각 출마자들의 선거운동원용 천막이 쳐지고 그 아래는 막걸리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누구를 지지하든 상관없이 어른들은 여기저기 몰려다니며 술판에 끼어들었고, 간혹 후보자가 열변을 토하면 지지후보가 아니더라도 ‘자알 한다’ 하며 박수를 쳐주기도 했었다. 유세전후에 무명가수들이나 사물놀이 패들의 공연이 있었고 음악에 맞춰 남녀노소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하면 유세는 아예 뒷전이었다. 어릴 적 기억속의 선거는 그렇듯 신명나는 것이었다.


 흥겹고 정다웠던 선거에 대한 추억은 70년대 후반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고향이 아닌 서울에서 살았고 어린 시절과 달리 선거권을 가지고 있었다. 차츰 정치에 대해 눈을 떠서 후보자들에 대한 지지성향이 확고해 짐에 따라 선거는 더 이상 흥겹지 않았다. 내가 지지한 후보자가 낙선되면 마치 내가 패배한 것 같았고 직장동료건 이웃이건 당선된 상대방 후보자를 지지한 사람들을 보면 괜히 심술이 나곤 했었다. 선거는 차츰 사람과 사람을 갈라놓는 원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5월 31일은 한국의 지방선거일이다. 바깥에 나와 있으니 내 특권을 행사할 수 없어 아쉽다. 나는 서울시 강남구에서 오래 살았었는데 지방선거가 시작되면서 투표를 할 때 서울시장과 구청장은 소속 당을 보고 찍었고 시의원, 구의원은 사실 고백하건데 투표당일의 내 기분에 맞는 아무에게나 표를 던지곤 했었다.


 그런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다. 한 아파트에 살던 내 친구 하나는 지금까지 지지해 오던 정당 후보에게 찍지 않고 상대당 후보에게 한 표를 던졌다고 한다. 사람이 변했느냐고 했더니 지지 정당 후보를 보는 순간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자기 돈 떼어먹고 자취를 감춘 사람과 이름도 같고 얼굴도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사람일 리가 없다. 세상에는 닮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비교적 이성적이라는 그 친구도 벽보에 붙은 얼굴을 볼 때 마다 화가 나서 못 견디겠더라 는 것이다.  


 선거를 한다면서 후보자의 정책을 꼼꼼히 살펴본 유권자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지역, 출신학교, 정당, 심지어는 얼짱, 몸짱, 입짱까지 보는 어처구니없는 세상이 되었다. 무슨 가치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선택하는 것일까. 그런 면에서는 하느님이 편하시겠다. 손바닥 보듯 위에서 밤낮없이 훤히 내려다보고 계실 터이니. 우매한 보통사람들이야 아무래도 후보자에 대한 개인 선호도에 감정적 요인이 게재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는 한국의 유권자들이 개인감정 버리고 정말 지역발전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인가 생각해 보고 투표했으면 한다. 일꾼들을 잘 뽑아 사는 지역이 발전하면 나라도 발전하고, 그러면 해외에 나가있는 교포들의 위상도 점점 높아질 것이 아닌가. 결혼상대 고르듯이 잘 생각해 보고 투표하시기를 부탁드린다.  


<되돌아보니>


한국인은 세계 어디에 가서 살더라도 정치적 관심은 여전히 모국에 매여 있다. 사는 나라의 시민권을 가져, 국적 상으로는 더 이상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선거철만 되면 모국의 상황에 관심이 뜨겁다. 자기가 사는 동네의 연방의원, 주의원, 시의원 선거는 관심 없다. 아예 선거조차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차츰 한인들에 대한 신경을 덜 쓴다.


밴쿠버지역만 하더라도 한인 인구가 8만이라는데 정치인이라고는 겨우 코퀴틀람지역에 시의원 한 사람 있다. 몇 년 전 의학을 전공한 제인 신이라는 30대의 신인 정치인이 한인 밀집지역에서 BC 주의원에 당선된 적이 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 했던가. 알게 모르게 한인사회를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많이 했다. 


그런데 그 소중한 한인 정치인을 한인사회에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다. 그녀는 가정의로써 MD, 즉 메디컬 닥터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녀를 의사라는 뜻에서 닥터 신이라고 불렀는데, 박사(Ph. D)가 아니면서 닥터로 불리는 것을 묵인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한인 언론에서 꼬집기 시작했다. 그것을 차기 선거에 출마하는 상대당 후보가 이용한 것이다. 제인 신은 거짓말 하는 사람이라고. 말이 번지자 그녀는 사퇴했다. 아까운 정치인을 잃게 되었다. 대만 교포는 인구 3만인데 연방정부, 주정부, 시정부 의원이 여럿이다. 서로 똘똘 뭉쳐 후보선발에 자기네 사람을 적극 지원한다. 달라도 참 다르다. 


이번 10월에 치러질 주의원 선거에 폴 최라는 젊은 검사시보가 남부 메트로타운 지역에 출마한다. 그는 이민 1.5세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15년간 경찰간부로 있었고, 변호사 일을 했으며, 연방검사 시보로 발탁된 전도유망한 30대이다. 잘 하면 주정부 장관 뿐 아니라 수상까지 바라볼 수 있는 실력자이다. 우리 한인들이 이번에는 기필코 우리의 의사를 대변할 정치인을 선발해야 한다. 윤씨가 어떠니 이씨가 어떠니 하면서 입에 거품 물고 따지다가 종내는 밴쿠버 바닥에서 평생 원수로 지내지 말고, 이번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곳의 정치에도 관심을 가지고, 한인 후보를 당선시킬 수 있도록 한마음 한 뜻으로 후원해야 겠다.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는 이를 위해 생긴 애국가 가사이다.


(2024년 7월 27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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