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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인생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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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nkorwriter Aug 11. 2024

인생

시가 있는 에세이 (10)

       인    생


       봄날은 갔다.

       여름날도 갔다.

       가을날 훌쩍 가면

       겨울날 이내 온다.


       오고 가는 나날들도

       종일토록 바람 불고

       눈 내리고 비 오더니

       늦은 밤 잠시 맑아

       흑공단 하늘지붕

       별빛 고작 잠시 반짝


       그리고 겨울날도 

       모질게 긴 겨울날도

       서럽게 다 가버리면

       꽃피고 열매 맺던 나의 나무에

       봄날은  봄날은 

       나의 봄날은


       다시는  다시는

       오지 않는다.                  


 지방선거바람에 묻혀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았지만 투표일인 5월 31일 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징역 10년, 벌금 1000만 원, 추징금 21억 원의 법정선고를 받았다. 환자복을 입은 초췌한 모습을 보니 1970 ~ 80년대 젊은이들의 정신적 지주(mentor)였던 그의 몰락이 가슴 아프다. 


 김 회장은 내가 20대 대학생이었던 시절인 1976년도에 대학생이 뽑은 ‘한국의 인기 100인’에 선정되었었다. 1960년 한성실업이란 무역회사 말단사원으로 입사했으나 1967년에 김 회장은 단돈 500만 원으로 대우실업을 창립하여 그룹 규모로 성장시켰으며 대우 그룹을 국내 재벌 랭킹 2위로 끌어올린 ‘대우 신화’의 주인공이었다. 처음에는 섬유 수출 회사로 시작했으나 이내 각종 무역업과 조선, 자동차 사업으로 분야를 넓혔으며 1990년대에는 전 세계로 진출해 대한민국과 대우의 브랜드와 제품을 파는 ‘세계 경영’을 실천하기도 했다. 


1999년 대우그룹이 무너지기 전에 국내에 41개 계열사가 있었던 반면에 해외에 396개의 회사를 두고 있었다는 사실만 봐도 대우그룹과 김 회장이 우리나라 경제에 차지하고 있던 위상이 얼마나 컸던 가를 알 수 있다.  


 1989년에 그는 ‘내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라는 부제를 달고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자서전을 발간했다. 그 당시 나는 안정된 기존 은행을 뒤로하고 신설은행 창립준비요원으로 연일 야근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러나 그의 책 서문 중에서 “젊은이들은 항상 새로움에 도전하는 기상을 가져야 한다. 또한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미래를 맞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젊은 세대들은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내일을 짊어질 수 있다.”라는 글을 읽고 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제각기 다른 금융기관에서 모인 사람들과 ‘일류은행’을 만들어 보겠다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함께 나가는 일이 무척 힘들었지만 김 회장의 말대로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면서 ‘비전과 미래’를 가지고 열심히 일했었다.


 그 당시 그의 나이가 53세였으니 지금의 나와 비교하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을 이루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삶이 부럽지는 않다. 별 볼 일 없는 탤런트를 가졌었지만 내 몫을 열심히 살았고, 남들도 다 겪은 인생풍파를 나름대로 견뎌왔다. 소중한 자산이라고 하던 일부 부하직원들로부터 지명수배를 당하던 수모도 겪지 않았고 잘잘못에 대한 시시비비를 정정당당하게 받아들이며 선후배 및 동료직원들의 아쉬움 속에 한국에서의 인생을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밴쿠버에서 문학을 사랑하며 이웃과 함께하며 믿음을 지켜나가는 보람된 삶을 살고 있다.    


 김 회장의 나이 69세라고 한다. 이번 선고에 항소한다고 하지만 예전처럼 살 수 있는 기회는 없어 보인다. 그의 자서전 중 “시간을 아껴야 한다. 시간은 한 번 밖에 없다. ---그러므로 한 순간이라도 소홀히 보내선 안 된다. ---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만큼 나쁜 일은 없다.”라고 쓴 구절이 있다. 그에게 남은 시간도 아껴 써야 할 만큼 짧다. 한국의 경제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이라는 불명예 속에 늙고 병들어가는 그의 많지 않은 여생을 위해 감히 이렇게 당부드려 본다.


 당신은 한 때 젊은이들의 우상이었습니다. 예전 같은 화려한 인생을 살 수 없더라도 당신은 당신을 얽매던 사슬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건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렸습니다. 후회와 자책감과 번민에서 벗어나 마음 밭을 경작하며 고고하고 깨끗하게 사십시오. 그것이 철창 안이 되던 밖이 되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고통과 번뇌와 회한의 짐을 끝까지 지고 산다면 철창 밖에 있더라도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과거를 던지십시오. 껍질에서 깨어나십시오. 부활의 인생을 얻으십시오. 당신을 바라보며 살았던 그 시절의 젊은이들은 지금은 모두 중장년이 되어 갑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교훈을 주십시오. 다시 자서전을 쓰십시오. ‘세월은 짧고 인생은 충만하다’라는 제목이 어떠한지요. 왜 실패한 인생을 살았는지 언급하시고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인생을 값지게 장식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 보여주십시오. 끝까지 우리들의 당당한 멘토로 남아 주실 것을 기대하겠습니다.(2006.10.06)


<되돌아보니>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법정스님이 말했던가. ‘인생’이란 자작시에 주식회사 대우 설립자 김우중 회장에 대한 나름대로의 평을 쓰던 때가 18년 전. 2019년 그는 떠나고, 나는 늙어가고 있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뭐라고 감히 김우중 회장에 대해 이러저러하게 살아가라고 훈수를 두었나. 물론 밴쿠버 주간지에 쓴 칼럼이니 그가 읽었을 리 만무하고, 그저 아는 척 타향에서 비평가 연한 내가 지금 부끄럽다. 


 우리는 그의 ‘몰락’에 대한 비밀을 알 수 없다. 정치인들의 작간에 희생되었다고 하면 금방 ‘음모론’이라며 벌떼같이 덤벼든다. 세상은 민낯 그대로 보이지 않는다. 박정희 대통령은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지도자이나 어떤 이들에게는 독재자로 인식된다. 이승만 대통령은 나라를 일으키고 6.25 전쟁에서 패하지 않도록 유엔군의 파병을 이끌어낸 훌륭한 건국대통령이나 누군가에게는 역시 독재자요 친일지도자로 치부된다. 모든 ‘공’은 온데간데없고, ‘과’만 뻥튀기되어 후세에 전달되고 있다.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사람에 대한 평가는 달라진다. 이는 오랜 세월 동안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기면 충신, 지면 역적’이다. 등거리외교를 펼쳤던 광해군을 인조반정으로 몰아내지 않았더라면 ‘삼전도의 치욕’을 겪었을까? 영변 핵시설을 사전에 폭격하여 없애자는 미국의 제의를 받아들였더라면 과연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존속되었을까?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은 모두 젊고 건강할 때 일이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하면 남은 생을 보람 있고 건강하게 잘 살아갈 것인가 하는 생각뿐.  지지고 볶고 하는 세상사에 관심을 끊어 버리고 싶다. 기쁘고, 행복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분노하고 하는 순간들. 다 지나간다. 그게 인생이다. (2024년 8월 4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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