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인생 11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ankorwriter Aug 18. 2024

예의바른 견공

시가 있는 에세이 (11)

예의바른 견공


단대 천안 캠퍼스 가는 저수지 아래

조밀한 논밭이 있고

논두렁 가로질러 개울이 있다


개울 위론 고작 

사람 하나 건널 수 있는 

외나무다리 있다


시골 강아지 한 마리

나 건너려는 시늉보고

먼저 건너시라는 듯 

꼬리 흔들며


다소곳이 맞은편에서 

기다리고 있다


충청도 땅에서는 

미물도 양반이다   


 센트럴 파크 부근의 고층아파트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엘리베이터에서 아내와 이야기하고 있는데 초등학교 5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 하나가 우리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어? 너 한국아이구나. 너 여기 사니? 반갑다.”

얼핏 보아 중국아이려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국말로 인사를 들으니 반가웠다.

 “너 캐나다에 온지 얼마나 되었니?”

어른에게 깍듯이 인사하는 걸로 보아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되리라고 생각했다.

 “저 여기서 태어났어요.”

또렷한 한국말로 대답을 들으니 아이 부모가 아이를 참 예의바르게 키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밴쿠버에 와서 한동안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은 남녀 노소간에 경어가 없다는 것이었다. 새파란 젊은 놈이 반백 넘은 내게 헤이 가이(guy), 버디(buddy) 하지 않나. 어른이 말 하는데 허어(huh)? 하지 않나. 한국에서 영어회화 배우면서 손윗사람하고 이야기할 때는 예스, 써(Yes, Sir) 또는 예스, 마담(Madam) 이라고 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원어민 강사에게 들었는데 정작 여기 와서 보니 반드시 그대로 지켜지지는 않는 듯 했다. 오죽하면 내 이름이 막 불리는 게 싫어서 저들 편한 데로 영어이름을 하나 지었을까. 손자뻘 되는 아이들이 ‘헤이 원배’라고 부르는 것 보다 ‘헤이 데이빗’이라고 부르는 편이 훨씬 내 듣기에 편해서였다. 그렇다고 이들이 무례하거나 막되어먹어 보이지는 않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예의란 주로 손아랫사람이 손위 사람에게 대하는 태도로 평가되는데, 이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지켜야 할 규범 내지 법도 즉 에티켓을 그들의 예의로 생각하고 있었다.


 예컨대 처음 이민자 무료 영어교육반에서 교사를 ‘선생님(teacher)’라고 불렀더니 정색을 하면서 이름을 불러달라고 했다. 선생님(teacher)은 직업을 지칭하는 것이니 봉사를 받기 위해 식당에서 웨이터(waiter)를 부르거나 비행기 안에서 스튜어디스(stewardess)를 부를 수는 있지만 선생은 학생들을 가르치지 봉사하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Sam, Tom 하며 학교 선생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고 해서 에티켓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수업시간에 핸드폰을 끄지 않거나 동족끼리 모국어로 떠들며 이야기하는 것이 선생의 수업을 방해하니 에티켓이 없는 행위라는 것이다.


 백인 캐나다인 부모들의 경우 자녀들이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 엄하게 에티켓 교육을 시킨다고 한다. 아이들을 빨리 키워 독립시켜야 하는데 남들과 어울려 잘 살아가려면 에티켓을 잘 지켜야 하니 때로는 매정할 정도로 철저히 가르친다. 그래서인지 식당에서 백인아이들은 얌전하고 조용하게 식사를 하고, 다음 사람을 위해 출입문을 붙잡아 주고, 공원에서는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줄서기도 잘 하며,   전철에서 노인들이 들어오면 조는 척 하는 대신 반드시 자리를 양보한다. 남의 말 가로채며 끼어들지도 않고 양해도 없이 불쑥 남이 가는 길 가로지르지도 않는다.  

 허나 모든 백인아이들이 다 그런 것만은 아니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는 결손가정이나 극빈자 집안 아이들은 참 무례하다. 밥 굶더라도 아이들 교육만큼은 잘 시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다. 이민자 부모들은 장차 이 사회에 뿌리박고 살아야 할 자녀들에게 여기 식 생활규범을 잘 가르쳐야 할 것이다. 특히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부모들은 한국식 예의범절 뿐 아니라 서양식 에티켓도 잘 교육시켜야 할 터이다. 부모 친구들이 방문했는데도 소파에 들어 누워 “하~이”하는 아이들 보는 것도 한심하지만 바로 뒤에 사람이 따라 들어오는데도 문을 잡아주지 않고 탁 놓아버리는 태도도 무례하다. 콩 심은데 콩 난다고 했으니 아이들을 잘 가르쳐야 부모도 대접받는다. 아무리 명문대를 다니고 석사 박사를 받은 들 무엇 하겠는가. 예의도 모르고 에티켓도 없으면 개만도 못한 것을.  (2006년 6월 19일)


<되돌아보니>


영어에는 딱히 존댓말이 없다. 그렇다고 백인들이 노인들을 존경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답할 때 '선생님(Sir/Madam)'을 덧붙이냐에 따라서 태도를 가늠한다. 영어에 존댓말이 없으니 젊은이들하고 격의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좋은 데, 어떤 때는 너무 가림이 없이, 마치 친구에게 하듯 떠들면 슬며시 정나미 떨어진다. 손주뻘 되는 녀석들이 맞먹으려 들면, ‘한국에서라면 버르장머리를 고쳐줄 터인데’해보지만 소용없다. 


반대로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사람들과 허물없이 이야기 할 수 있어 좋다. 열 살 넘은 사람과 친구먹자고 하면 한국에서는 큰일 날 일이지만 영어권 사회에서는 오히려 좋아한다. 80먹은 노인네가 스무 살짜리에게 '내 제일 친한 친구(My best friend)'라고 하는 것을 가끔 보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사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의범절이란 가르침이 중요하지만 천성적으로 타고난 경우도 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상냥하며, 어른을 깍듯이 공경하고, 공중질서를 잘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피부색을 불문하고 그런 사람을 만나면 참 기분이 좋아진다.  


천성적으로 타고난 성품에다 가정교육마저 훌륭하다면 금상첨화이다. 해서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 손자에게 한국식 예절을 가르치고 있다. 다문화사회인 밴쿠버에서 열등민족 소리 듣지 않으려면 어릴 때부터 예의범절을 가르쳐야 한다. 이게 조부모의 도리이다. (2024년 8월 10일 토요일)














이전 10화 인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