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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인생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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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nkorwriter Jul 26. 2024

바쁜 아침

시가 있는 에세이 (1)

 아내 출근시키고

  아들 등교시키고

  설거지 하면서 

  남행열차 콧노래

     

  남자들은 모두

  전쟁터 나가듯

  굳은 얼굴로

  전철 지하철

  일반버스 좌석버스 

  마을버스 합승택시

  자가용 속에 있는 

  아침

     

  봉두완의

  라디오 정보센타 들으며

  꿈길 출근한다.

  40代 후반 中年이

  대책 없이

  평생 바친 직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걱정해 주는 봉두완 씨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내 잘 두어서

  꿈속에서 출근하는

  바쁜 아침.             (95. 8. 2)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확실히 그렇다.

나는 강도 산도 완전히 바뀌어버린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


사람에게 일생 세 번의 기회가 있다고 한다.

사소한 기회는 사람이 만들어 가지만 큰 기회는 하늘이 만든다.

위기도 마찬가지다. 기회와 다른 것은 일생 세 번으로 족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따라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다 보면 위기가 기회로 변해 있는 경우도 있고 기회가 위기로 바뀌어 지는  경우도 있다. 10년 전 내 경우가 그랬다. 은행원이었던 나는 당시 기회라 생각하고 신설은행으로 직장을 옮겼었다. 그러나 거기서 위기를 맞았다. 

뿌리가 약했던 신설은행은 IMF경제위기를 맞아 10년을 못 넘겨 퇴출되었고 나도 당연히 직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출근할 곳 없어 혼자 집에 있는 나날들이 무척 쓸쓸하고 외로웠다. 그러나 외롭고 쓸쓸한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다.


IMF를 전후하여 금융기관을 비롯한 많은 기업들에 구조조정 바람이 불면서 40~50대의 직장인들이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옷을 벗기 시작했다. 독설로 유명한 봉두완 아나운서가 방송 때마다 그런 현실을 걱정해 주었다. 


우스운 것은 나도 옷 벗은 처지에 남이 줄줄이 옷 벗으니까 동지가 생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심경이 좀 편해졌다.


그리고 10년 후


나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제 3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사는 것이 빠듯하다. 생활비는 밑 빠진 독 물 붓기인데 버는 것은 쥐꼬리다.

이 상태로는 가진 돈 바닥나겠다.


그런데 이상하다. 여유만만이다. 

나와 같은, 아니 나보다 더한 상처를 간직하고 사는 교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비록 살기는 어렵지만, 용기와 위로를 주는 이웃들이 하나, 둘 생겨나니

타국살이가 덜 외롭다.


앞으로 내가 할 일은 지금의 위기를 멋지게 기회로 만들어 내 인생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다.


나를 지켜보고 있는 많은 응원군을 위해서라도, 한 뼘 한 뼘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되돌아 보니>


1995년 8월 2일에 쓴 시에 2004년 8월 6일에 에세이를 덧붙였다. 그리고 20년. “모든 것은 다 지나가리라”는 말이 실감난다. 내 나이 일흔 넷. 서서히 삶의 흔적을 정리해 나갈 때이다. 이런 사람이 이 지구촌에 살다 간다는 것을 ‘브런치’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어 몇자 끄적여 본다. 돌아보면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의 추억이 더 아름답다. (2024년 7월 21일. 일요일. 밴쿠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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