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9도ㅣ오선지

by 온도계

재즈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멋진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을 생각에

점점 스며드는 묘한 떨림은

잠시 여행을 시작한 기분이었다.

귓가에 흐르는 선율에 몸을 맡기려 할 때면

말소리와 울음소리가 음표 사이로 스며들어

나를 비웃는 듯 무심하게 툭툭 건드렸다.

이내 다시 집중해 보지만

마치 타인이 던진 작은 쓴소리에 집착하듯

주변의 작은 소리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건

나의 연약함을 반증하는 듯했다.

그래서 눈을 감았다.

울음소리가 마치 하나의 악기처럼

하모니를 이루기 시작했다.

완벽한 소리는 서로 어우러진 소리였고

그것은 하나의 호흡으로 응축되었다.

실수의 얼룩이 오점이 되어 남겨진

우리들의 인생은

깨끗한 오선지에 음표를 그리듯

수많은 점으로 시간을 담아내는 것과 같다.

그렇게 만들어진 우리들의 악보는

웃음과 울음이 뒤섞인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득 채워진다.

인생이란

내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오선지 위에

한음씩 채워나가는 작곡가의 고통이

예술이 되는 과정과 같다.

언젠가 그 악보의 검은 점들은

눈을 감고 추억하는 미소가 될 것이다.

재즈의 밤, 내 귓가에 울려 퍼졌던

울음소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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