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
개요 드라마 미국 111분
개봉 2012년 11월 29일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Clint Eastwood
1. 오프닝 Opening
이 영화는 새벽의 기척 속, 한 노인의 거친 숨결로 문을 연다. 꿈속에서 그는 힘차게 달려오는 검은 말을 본다. 힘찬 근육과 생생한 발굽의 울림, 그 질주는 젊은 날의 그를 닮아 있다. 그러나 눈을 뜨는 순간 현실은 냉혹하다. 화장실에서 한참을 씨름해야 하는 소변 한 줄기, 관절이 삐걱거릴 때마다 새삼 느껴지는 쇠락의 그림자 그리고 작은 일에도 버럭 목소리를 높여야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괴팍함. 영화는 이렇게 그가 붙잡고 있는 자존심이 얼마나 불안한 기둥인지 일찌감치 예고한다.
꿈속의 말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스의 생애에 남은 트라우마와 뒤엉킨 기억의 형상임이 나중에서야 밝혀진다. 한때 그는 야구계를 주름잡던 명 스카우터였다. 누구의 눈보다 먼저, 어린 선수의 손끝에 감춰진 미래를 발견할 줄 알았던 사내. 그러나 이제 그의 시력은 흐려지고 그의 직감은 의심받으며, 그의 삶은 서서히 경기장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있다. 나이는 은퇴를 재촉하지만 자존심은 그것을 끝내 허락하지 않는다. 노쇠와 고집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그는 아직도 ‘야구’라는 언어로만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노인이다.
그런 그에게 하나뿐인 딸, 미키가 있다. 아버지의 무뚝뚝한 손길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자라난 그녀는, 이제 세련된 수트를 입은 변호사가 되어 대도시의 빌딩 숲을 누빈다. 누구보다 날카로운 논리와 차가운 지성으로 무장해, 최연소 파트너 변호사의 자리에 오른 인물. 하지만 성공의 무게 뒤에는 언제나 공허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것은 아버지와 나누지 못한 긴 세월, 대화 대신 침묵으로 채워진 세월에서 비롯된 빈자리이다.
영화의 오프닝은 이렇게 대비와 단절을 동시에 보여준다. 져버린 아버지와 막 피어나는 딸, 퇴색한 눈과 빛나는 눈, 종이처럼 부서지기 쉬운 노인의 하루와 번쩍이는 법정의 현란한 언어. 그러나 둘을 다시 한번 같은 자리에 불러 세우는 매개체가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야구’이다. 이 스포츠는 단순한 경기 이상의 무게를 지닌다. 아버지와 딸 사이에서 야구는 언어이자 기억이며, 상처와 화해를 동시에 불러오는 매개체이다.
주인공의 아침은 단순한 노인의 하루가 아니다. 그것은 무너져가는 자존심이자 동시에 딸과의 관계를 통해 다시 변화를 꿈꾸는 인생의 마지막 기회이다. 영화는 오프닝의 몇 장면만으로 이 이야기가 단순한 스포츠 영화가 아니라 늙어가는 인간의 존엄과 사랑의 회복에 관한 서사임을 속삭인다. 마치 흐려진 시야 너머로 아직 포착되지 않은 변화구 하나가 마지막으로 휘어져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는 듯 관객은 이미 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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