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윤희에게》가 건네준 오래된 겨울의 답장
녹지 않는 마음의 온도
– 영화 <윤희에게>가 건네준, 오래된 겨울의 답장
겨울은 내게 오래 접어두었다가 끝내 부치지 못한 마음의 편지가 첫눈처럼 다시 흩날려 돌아오는 계절이다. 마음의 동요는 마치 오래된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하얀 입김처럼 조용히 내게 파문을 일으킨다. 시간이 지나 희미해졌다고 믿었던 마음의 잔향들이 차가운 공기를 따라 가볍게 흩날리다가 어느 순간 눈송이처럼 내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끝내 다 말하지 못한 감정들, 붙이지 못했던 편지들. 그런 마음들이 포근한 첫눈의 결 속에 숨어 있다가 불현듯 되살아나 겨울의 새벽처럼 투명한 빛으로 가슴 한가운데를 가만히 적신다. 나는 오랫동안 그런 감정들을 이미 지나간 계절의 그림자 정도로만 여겼다. 어느 정도는 정리되었다고, 나를 더 흔들 일은 없을 거라고도 믿었다. 그러나 어느 겨울, 갓 내린 눈 위를 밟을 때 들리던 바스러지는 작은 소리만으로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서서히 깨어나는 순간이 있었다. 그 무렵 마주한 영화가 임대형 감독의 <윤희에게>였다. 화려한 장면도, 극적인 감정의 파도도 없는 영화였지만 오히려 그 고요함이 오래 닫아두었던 내 마음의 문을 아주 살짝 그러나 분명하게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오래된 눈처럼 쌓여 있던 마음
영화 속 오타루에는 새로 내린 눈보다 거리의 굳은 눈이 더 눈에 띈다. 카메라는 그 단단한 눈을 오래된 침묵처럼 비춘다. 스무 해가 지나 도착한 편지를 손끝으로만 만지작거리며 쉽게 펼치지 못하는 윤희를 보며, 나는 묘한 울림에 잠시 숨을 골랐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장면인데 그 정적이 오히려 더 많은 말을 건네는 듯했다. 편지를 다 읽은 뒤에도 윤희의 표정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눈썹 끝의 미세한 떨림, 고요한 숨의 변화 하나로도 그녀의 겨울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나도 언젠가 그렇게 흔들렸던 시기가 있었다는 걸 갑자기 떠올렸다. 두려웠고 서툴렀고, 무엇보다 너무 어려서 마음을 꺼낼 용기를 갖지 못했던 그날. 전해지지 못한 말은 오래 뒤틀린 채 남아 얼음처럼 내 안의 한 구석을 차갑게 점유했다.
말하지 못한 감정이 데려오는 계절
살아가다 보면 어떤 마음은 시간이 지나도 흐려지지 않는다. 겉으로는 잊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거리의 눈처럼 조용히 굳어 마음속 더 깊은 곳에 남아있다.
이 영화를 보며 나는 내 안의 숨겨진 감정들을 매만지게 되었다. 누구에게든 쉽게 말할 수 없었던 감정, 그 당시의 나는 감정을 드러내는데 취약했고 누군가와 기억을 공유한다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 주저함은 결국 한마디 말조차 꺼내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러는 동안 내 마음은 점점 더 마음속 동굴로 숨어들었다. 영화 속 윤희와 쥰이 오래도록 침묵 끝에 서로를 다시 만나듯, 나 또한 언젠가는 ‘말하지 못한 나’와 마주해야 했다. 그 오래된 감정이 나를 붙잡아온 이유를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사랑을 허락받아야 한다고 믿었던 시절
영화는 단순히 두 사람이 다시 이어지는 이야기를 넘어, 왜 그들은 그렇게 오래 침묵해야 했는지 묻는다. 어떤 마음은 그 자체로 이미 조심스러운데, 사회가 만든 기준과 관습, 시대의 분위기 같은 것들이 그 마음을 또 한 번 숨기게 만든다. 그 장면을 보며 오래 전의 한 친구가 떠올랐다.
자신이 누구를 사랑하는지를 스스로도 ‘허락받아야 한다’고 믿으며 괴로워하던 친구. 동성이라서 안 된다며, 종교가 달라서,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가족들이 반대하던 이야기들. 사회적 편견과 보수적인 제도로 인해 어떤 관계는 그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며 쉬이 혐오당한다.
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의 마음에 ‘승인 도장’을 받기 위해 오랫동안 빙판길을 걸어야 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왜 허가를 받아야 했을까. 그 질문은 영화 속 윤희에게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오래 울림을 남겼다.
마음의 봄은 결국 스스로 열어야 한다
영화의 결말에서 두 인물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서로의 마음이 닿았음에도 완전히 같은 곳으로 걷지 못하는 현실적이고 쓸쓸한 엔딩. 그 장면은 조용히 내게 말하는 듯했다.
'겨울을 끝내는 문을 여는 일은 결국 너 자신의 몫이다.'
나는 그 말을 받아 적듯 오래 묵혀 둔 감정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오랫동안 지나간 계절로만 치부했던 그 마음은 사실 한 번도 끝나지 않았던 것. 그 감정에 아주 작은 답장을 써보기로 했다. 누구에게도 보내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건 타인이 아니라, 오랫동안 침묵 속에서 기다려온 나 자신에게 보내는 답장이니까. 그 순간, 오래 붙잡혀 있던 내 겨울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아직 겨울에 머무는 마음들에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말하지 못한 감정이야말로 우리를 가장 깊은 겨울 속에 오래 머물게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겨울을 녹이는 힘은 다른 누구도 아닌 천천히 용기를 모으는 자기 자신에게서 온다는 것.
오타루의 얼어붙은 눈처럼 쉽사리 녹지 않는 마음이 있다면 그건 그 마음이 잘못된 탓이 아니라 지나온 계절이 유난히 길고 차가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는 적어도 스스로만큼은 그 마음을 풀어주어도 되지 않을까?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는 방식으로, 가장 따뜻한 체온으로. 얼어붙은 진심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봄은 반드시 찾아온다. 그 봄은 거대한 변화의 순간이 아니라 '내 마음은 결국 너야'라는 조용한 인정에서 피어나는 작은 해빙(解氷)과도 같다. 눈 속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녹아 나오는 물길처럼, 가장 낮고 부드러운 용기에서 시작되는 계절.
그리고 이 세상엔 여전히 사회의 찬 공기 속에서 사랑을 온전히 말하지 못한 채 걸음을 고르고 있는 연인들이 있다. 세상의 편견과 혐오는 때때로 새로 내린 눈을 함부로 시커멓게 짓밟고 지나가는 발자국처럼 그들의 마음을 깊이 헝클어놓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바란다. 그들의 사랑이 더 이상 짓밟히는 눈이 아니라 스스로의 모양을 잃지 않고 공중에서 반짝이며 떨어지는 눈송이처럼 자유롭고 단단하며 무엇보다 아름답기를.
아직 겨울의 찬 기운이 남아 있더라도 서로의 손을 덥혀주는 작은 체온 하나만으로도 눈은 기적처럼 녹기 시작한다. 그저 그렇게— 부드럽게, 조용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이 겨울 세상의 모든 사랑이 축복받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