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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팡지게 눈이 내리면

겨울, 그리고 첫눈

by 소담


스스로를 감성이 풍부하다고 믿어왔지만,

정작 첫눈의 기억만큼은 아무리 떠올려도 또렷하게 잡히지 않는다.


살아오며 수많은 눈을 반가워했고, 설렘으로 가득한 겨울들을 보냈다.

하지만 그동안 ‘첫눈’만을 따로 기억해 둘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래서 첫눈에 대한 추억의 곳간이 이렇게나 텅 비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분명 특별한 순간이었을 텐데, 특별하게 받아들인 적은 없었던 것이다.


그저 그런 겨울날,

옴팡지게 눈이 내리면 발자국으로 기찻길을 만들어 ‘사랑해’라는 글자를 완성했고,

아이들과 눈썰매를 타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을 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첫눈이 내리던 날들은 늘 조용했고, 별일 없이 지나갔다.

문자와 목소리로 첫눈 소식을 전하며 들뜬 마음을 나누었을 뿐,

정작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긴 기억은 남아 있지 않다.


내가 사는 지역에 눈이 드물게 오는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첫눈이라 해봐야 잠시 흩날리다 마는 정도였고,

눈답게 소복이 내려앉은 적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니 첫눈이 특별한 추억으로 남아 있지 않은 건 감성의 결함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온 환경의 결과일 터.


하지만 올해는 조금 다르게 보내고 싶다.

기억 속에 분명하게 기록될 만한 첫눈을 맞이하고 싶다.

내가 살아온 어느 겨울보다, 조금 더 온전히 바라보고 느끼며.


사실 어떻게 맞이해야 ‘첫눈’이 내 인생의 특별한 첫눈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특별한 추억은 대단한 사건에서가 아니라,

마음을 다해 바라보고 느끼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


우리는 종종 특별한 날만을 기억하려 애쓰지만,

사실 특별하지 않은 날들로 삶을 더 풍성하고 단단하게 채운다.

첫눈 또한 그러할지 모른다.


올해의 첫눈은

나를 잠시 멈춰 세우고,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게 해주는 근사한 날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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