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살아가는 북한엄마의 수요일 이야기
북한엄마의 아날로그 놀이 소환하기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다. 이제 곧 겨울이 오려나보다. 유럽의 겨울밤은 길고 어둡다. 영국이나 독일보다는 날씨가 좋다고는 하지만, 남프랑스의 겨울밤도 길고 춥다. 마음에 허전함이 많은 나에게 유럽에서 맞는 겨울은 특히 더 춥게 느껴지는 것 같다. 내가 겨울을 싫어하는 것도 있겠지만, 외국에서 맞는 겨울은 육체적인 추위보다 정신적인 추위가 더 크다. 밤이 길어지니, 과거에 빠져 있는 시간도 길어지고, 생각도 많아지는 것 같다. 잡다한 생각의 대부분은 별 쓸모없는 생각이지만, 번민으로 이끌고 마음에 불안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오후 다섯 시면 해가 지기 시작하고, 아침 아홉 시는 되어야 날이 밝아지는데, 전기도 없던 과거에 이 긴 밤을 삶에 대한 고민으로 채우다 보니, 유럽의 철학이 발달한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아… 한국인들도 삶에 대한 고민이 깊고 진취적인 민족인데 왜 유명한 철학자가 없을까. 그런 생각도 잠시 해본다.
어제는 수요일이었다. 프랑스 초등학교까지 수요일에는 학교가 없다. 아이들이 있는 프랑스의 맞벌이 부부들의 최대 고민은 학교가 없는 수요일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의무교육은 만 3세부터 시작된다. 유치원을 école maternelle이라고 부르는데, 아침 여덟 시 반까지 등교를 하고, 네 시 이십 분부터 하교한다. 3세 아이에게 하루 여덟 시간은 참 긴 시간이다. 그래서 수요일에 쉬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맞벌이 부부들은 수요일에 쉴 수 없으니, 보모를 고용해 아이들을 맡기거나, 혹은 시에서 운영하는 centre aére라는 방과 후 교실로 보낸다. centre aére는 등록하려는 아이들이 워낙 많아서, 대기표를 받거나, 인맥을 동원하거나, 집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라도 자리가 났다면 보내야 한다. centre aére는 무료로 운영되는 기관은 아니다. 프랑스는 아이들의 양육으로 인해 지출되는 비용은 세대소득에 비례해서 국가 지원비용을 받을 수 있다. 지난해 봄에 나도 큰 아이를 등록했었는데 10회 기준으로 80유로 정도 지출했던 것 같다. 점심값과 간식비가 포함된 가격이니 비싸지 않은 편이다. 낯선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의 아들은 딱 한 번 가고 이후로는 가지 않았다. 소득이 높은 부모들은 사립 기관을 이용하는데 한 달에 200유로 정도 든다고 했다.
현재 나는 매주 수요일, 아이 둘을 내가 직접 돌보고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매일 공원으로 가서 다른 엄마들과 함께 아이들을 돌봤는데 작은 아이가 세 살이 되고, 큰 아이가 다섯 살이 되니 이제 공원에는 아기들만 있다고 하며 가기 싫어한다. 그래서 올 가을 학기부터 아이들을 매주 수요일마다 운영하는 학원에 등록했다. 큰 아들은 유도를 하고 싶다고 해서 유도학원에 보내고, 둘째 딸은 음악놀이 교실에 보냈다. 아이들을 학원에 데리고 다니는 역할은 주로 내가 맡아서 한다. 프랑스는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재택근무가 일반화되었다. 남편이 주 이틀인 수요일과 금요일은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덕분에 가끔 급할 때 도움을 받기는 한다. 그래도 아이들을 돌보는 주된 역할은 내가 하게 되는 것 같다. 수요일은 그야말로 내가 택시 기사다. 작은 아이를 데리고 음악교실 다녀오고, 바로 점심을 먹인 후 큰 아이를 데리고 유도교실을 다녀온다. 음악놀이 교실은 내가 사는 도시 동쪽에 위치해 있고, 유도교실은 서쪽에 있다. 우리 집은 남쪽에 있다. 그야말로 동서남북으로 아이들을 픽업해야 하는데 매주 수요일만 되면 이게 엄마에게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도 아이들의 택시 기사 노릇이 그나마 편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툭하면 아파서 간호사 역할을 했었는데, 그때만큼 힘들지는 않다. 아이들은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자주 앓는다. 장염, 감기, 인후염, 수족구 등등 온갖 병치레를 하는데 나는 세상에 이렇게 많은 돌림병이 있는지를 모르고 살았다. 큰 아이가 학교에서 돌림병을 옮아 오면 큰 아이가 나을 때쯤 둘째가 앓는다. 그렇다면 1~2주는 그냥 아이들 간호하는데 시간을 다 보낸다. 아이들이 하루 이틀 아프고 말면 참 좋겠지만, 가끔은 일주일씩 병치레를 할 때도 있다. 다행히 나는 맞벌이를 하지 않아 시간이 자유로운 편이었던 덕에 두 아이를 돌볼 수 있었지만, 가끔 힘에 부칠 때는 일하는 엄마들은 어떻게 할까 싶은 생각도 들고, 그들에 비하면 그래도 나는 낫다고 위안을 얻기도 했다. 둘째는 오빠 덕분에 면역이 일찍 형성된 건지 덜 아프다. 학교 시작한 지 두 달이 되어가는데 얕은 감기 두 번 걸린 것 빼고는 크게 드러눕지는 않으니 말이다.
딸아이는 아직 세 살이라 낮잠 시간이 있다. 요즘은 딸아이가 육체적으로도 마음적으로도 변화를 맞이하는지 응석도 늘고 떼도 늘었다. 낮잠 시간을 거르면 아이들은 피곤해지고, 피곤한 아이들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떼를 쓴다. 그래서 낮잠 시간을 꼭 지켜주는 편이다. 다행히 남편이 집에서 원격근무를 하는 덕에 오후 시간은 아빠와 단둘이 보낸다. 딸아이는 아들과 달리 언어 감각이 좋은 편이다. 그래서 표현을 참 잘한다. 가끔은 내가 놀랄 만큼 본인의 마음을 잘 드러낸다. 그래서 나는 딸에게 아들보다 관대하다고 남편에게 핀잔을 자주 듣는다. 마음먹고 버릇을 고쳐주려고 해도 그게 잘 안된다. 딸아이의 어른스러운 감정 표현과 미안하다는 반성, 애교에 녹아버려서 결정적인 순간에도 주체 못 하고 헤헤 웃어버리는 엄마가 된다. 이게 결국에는 아이의 성장에 방해가 될 것 같기는 한데 자식이라는 게 뭔지 한 번 화를 내게 되면 마음이 불편하고 죄책감이 든다. 하루 종일 기분도 안 좋다. 그래서 왼만하면 화를 내지 않고 안에서 조절하고 말로 타이르려고 노력하는 편인데도 잘 안 될 때도 있고, 나만의 교육 가치관은 있지만,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것 같다.
기사 노릇으로 보내는 수요일이지만, 수요일 오후는 나와 큰 아들과 단둘이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다. 큰아이와 둘째는 25개월 차이다. 갓난쟁이 둘째를 챙기느라 나도 심신이 지쳐 있던 까닭에 큰아이에게 오빠 역할을 강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이 시점에서 든다. 25개월이면 아기인데 말이다. 이제 나도 마음의 여유를 찾은 것 같다. 유도는 보통 오후 세시에 시작하는데, 작은아이 낮잠 시간에 맞춰 주느라, 아들과 나는 일찍 출발하는 편이다. 오후 한 시 반이나 두시쯤 되면 유도교실에 도착한다.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를 아들과 나 둘만 함께 보내야 한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그 시간을 이용해 특별한 '기억의 시간’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프랑스는 아이들에게 핸드폰이나 텔레비전을 보여주지 않는 부모가 많다. 그래서 나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는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그래서 나는 북한에서 놀던 추억의 놀이들을 소환하기로 했다. 엑상프로방스에는 소나무가 유독 많다. 건조한 기후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유도교실 주변에 건조된 솔잎들이 잔뜩 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솔잎들을 모아 각자 옆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솔잎 싸움’을 한다. 북한에서 했던 놀이인데, 솔잎의 잎사귀를 벌려 끝부분에 각자의 솔잎을 걸어서 당기는 놀이다. 솔잎이 끊어지면 지는 거다. 아들은 이 놀이를 참 좋아한다. 솔잎 놀이가 지루해질 타이밍쯤 되면 우리는 멀리 보기 놀이를 한다. 가장 멀리 볼 수 있는 나무 이름 맞추기 놀이를 하는데, 나의 아들은 아는 나무라고 해 봤자, 플라탄, 소나무, 참나무 등등 몇 개 안 된다. 가끔은 나무 이름을 짓기도 한다. ‘멀리 보기’ 놀이가 지루하면, 자치기 놀이, 딱지 접기 놀이, 딱지치기 등등 한국에서 유행했던 놀이나, 북한에서 어릴 때 놀았던 놀이들을 직접 몸으로 체험해 보면서 노는데, 나도 참 그 시간이 즐겁다.
두 아이 양육하면서 동심이 조금씩 소환되는 느낌이 든다. 내 나이가 30대 중후반인데 아이들이 없었더라면 언제 이렇게 마음 놓고 행복하게 웃어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른들의 마음이 현실적으로 변해가고 점점 상막해지는 것 같다. 나도 20대까지만 해도 열정도 있었고, 꿈도 컸었다. 결혼해서 30대가 되니 현실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게 되었다. 두 아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은 더 많은 소유에 무게 중심을 두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수요일에 학교가 없어서 일을 할 수 없으니, 학기 초에 수업 스케줄을 짜는데 여간 애를 먹은 게 아니었다. 일단 수요일과 주말은 아이들을 챙겨야 하니, 할 수 있는 일의 선택의 폭도 좁아지고, 아이들을 돌보는 시간을 유동적으로 쓸 수 있는데 무게 중심을 둘 수밖에 없었다.
지난 몇 주간 큰아이와 클래식하고 아날로그 한 시간들을 보내면서, 아이들이 크는 건 금방이고, 시간도 지나면 다시 붙잡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들인데, 나름의 의미를 발견해 가며 소소한 행복들로 채워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다음 주부터는 2주간의 아이들의 가을 방학이 시작된다. 가을 방학 시간에는 또 어떤 놀이들을 준비해서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추억할 수 있는 '추억의 놀이’들로 채워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나는 남한에서 MZ세대라고 불리는 30대 중후반인데도 우리 윗세대의 어린 시절과 비슷한 놀이밖에 해 주지 못해 미안할 때도 있다. 요즘 엄마들이 인기 있다고 하는 촉감놀이를 해 주려고 파스타를 삶아 내놓았던 적 있었다. 아이들이 손으로 짓이겨서 버려진 국수를 보니 죄책감이 들었다. 북한에서 굶주림을 겪었던 나에게 음식을 낭비한다는 건 내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 번 시도하고 다시는 안 했다. 그 대신 공원에서 나무 잎사귀를 주워보거나, 흙을 만져보게 했다.
엄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아이들의 양육 방식에 크게 영향을 준 것 같다. 어떤 놀이든 아이와 엄마가 함께 즐겁게 할 수 있어야 진짜 놀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개인적인 사심이 담긴 합리화에 대해 변명하는 중이다. 엄마는 최선을 다하고 있고, 반성하고 있고,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가고 있고,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이 엄마가 자식을 위하는 마음을 알아준다면 감사한 거고,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전혀 서운하지 않을 것 같다.
너희와 보내는 이 시간들은 나에게 소중한 시간이고, 내 삶에 채워가는 이 작은 행복들로 너희들은 평생에 할 효도는 이미 다 한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