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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경 Jan 22. 2024

만국의 문과생이여, 안도하라.

『최소한의 과학 공부』 서평

독서란 저자가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개념과 상황독자가 이미 가지고 있는 개념이나 형상(이미지)으로 치환하여 이해하는 행위다. 배경지식까진 아니더라도 우리는 내용과 연관된 형상이나 메타포를 토대로 책을 이해할 수 있다.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에마뉘엘 상데는 분석철학서 『사고의 본질통해 모든 개념의 기저에는 유추능력이 자리하고 있고, 어떤 사고도 과거의 정보 없이 형성되지 않는다고 말다. 저들의 말을 적용하면 독자는 새로운 개념을 기존 기억과 치환 때 유추를 주로 활용 것이다.


여하튼 책을 이해하려면 새롭게 접한 내용을 치환할 기존 개념이나 형상이 필요하다. 독서에 도움이 되는 개념형상은 보편적이고 기본적일수록 유용하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에 대한 필수 개념과 형상을 갖고 싶은 독자에게 『최소한의 과학 공부』추천한다. 『최소한의 과학 공부』는 과학이 의학, 정, 경제, 철학과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오늘날에 이르렀는지 서술한 과학사 책이다. 단순히 기본적 지식을 나열한 과학 도서는 많다. 반면  『최소한의 과학 공부』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첫 번째로 『최소한의 과학 공부』는 근대~현대 인류사의 흐름이 담겨있다. 만약 이 책에 과학이 현재와 같은 위상을 갖기 시작한 근대 뉴턴 물리학부터 양자역학까지 이어온 과학사만 담겼다면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진 않을 것이다. 『최소한의 과학 공부』에서는 과학과 인문학의 통섭을 담았다. 『최소한의 과학 공부』는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어떻게 근대 시민혁명에 영향을 주었는지, 계몽주의와 실용주의가 어떻게 융합되어 근대과학 정신의 토대가 되었는지, 인류가 어떻게 중세 목적론을 극복하고 기계론을 천명했는지 자연스레 설명한다.


두 번째로 『최소한의 과학 공부』는 개념을 본질적으로 재정의한 점이 돋보인다. 양서와 탁월한 책은 엄연히 다르다. 양서는 흥미롭고 유익한 지식 잘 나열한 책이지만, 탁월한 책에는 현상에서 이끌어낸 본질이 담겨 있. 『최소한의 과학 공부』 읽다 보면  현상을 본질적으로 재정의한 탁월함을 느낄 수 있다. 과학이 자연철학에서 벗어나 자연과학으로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되는 과정을 과학의 민주화와 대중화라고 표현하고, 인터넷 혁명을 설명하며 혁명을 정의한 부분, 온실 효과를 설명하며 과학의 본질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 그 예다. 특인문학과 과학의 통섭지식 확장의 측면보다는 시원으로의 회귀로 보는 관점은 저자의 탁월한 통찰을 보여준다.


세 번째로 『최소한의 과학 공부』는 가독성이 뛰어나다. 군더더기 없고 담백한 문장들은 과학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춰준다. 적절한 비유는 이해를 돕고, 친  방식은 흥미를 돋운다. 계몽주의를 문과생의 정치 프로젝트와 이과생들의 과학적 사유 결과비유하고, 인터넷 역사를 설명하기 위한 챕터 도입부에는 런던 올림픽 개막식이 등장한다. 이외에도 참신한 비유와 친근한 표현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여 읽는 중간중간에 피식 웃게 된다.


이제 『최소한의 과학 공부』를 보기로 결심했다면 꼭 4부 철학 파트부터 읽기를 권한다. 이 책의 진수는 4에 담겨 있다. 철학이 모든 학문의 뿌리인 만큼 철학으로 설명한 근대~현대 과학의 큰 흐름을 먼저 잡고 난 뒤 1부부터 읽는 것이 이해하는 데 수월하다. 예컨대 4부는 총론이고 1, 2, 3부는 각론과 같다. 1, 2, 3부 곳곳에도 의학, 정치, 경제 분야마다 시대정신이 특색 있게 드러나기도 하고 또 유사한 모습을 보이며 같은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묶이는 것을 보면 인류사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통섭과 흐름이 『최소한의 과학 공부』 주요 테마이자 장점이다.


『최소한의 과학 공부』에도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세상에 조금 더 빨리 나와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투정이다. 내가 『최소한의 과학 공부』를 먼저 읽었다면, 치환을 통해 난해한 과학책들을 쉽게 그리고 깊게 이해했을 거라고 확신한다. 책에서 한 내용이 새롭더라도 해당 분야의 어느 사조에 해당하는지, 인류의 지적 흐름 중 어느 부분에 대한 서술인지 알면 훨씬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 배대웅 님은 특히 본인과 같은 문과생들에게 과학 공부의 유용함과 즐거움을 알려주려고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을 읽은 문과생으로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만국의 문과생이여, 안도하라.

『최소한의 과학 공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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