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머 남편과 계약직 공무원 아내-23

홋카이도 이야기(05)

by 글쟁이게이머 L군

Y양과 처음으로 떠나는 해외여행으로 찾아간 겨울의 홋카이도.

전 세계적인 눈축제가 열리는 고장답게, 초겨울이 막 지난 시점임에도 이미 온 세상이 하얀색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Y양은 홋카이도 유학생 출신답게(?) 삿포로를 중심으로 하는 유명 관광지는 뒤로 미루고, 바로 산골짜기에 숨겨진 진또배기 온천료칸을 예약해 두었다고 하더군요.


이미 적잖은 눈이 내렸고, 이동하는 중에도 상당량의 눈이 내렸지만 철저하게 눈길 대책을 해둔 차량이었기에(4륜+스노 타이어 등등) 생각보다 운전은 할만했습니다.


중간중간 안전 운전하는 저를 눈보라 속에서 냅다 추월하는 차량들도 있었지만, 뭐 그건 눈과 함께 살아가는 현지인 포스(?)라고 해야겠지요.


‘눈길에서 추월하는 놈은 미 X 놈이다’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던 겨울 홋카이도 교외 지역의 도로


그렇게 적지 않은 시간을 운전하니, 산골짜기에서 영업하고 있는 오래된 료칸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주차를 하고, 주차장 바로 옆에 사람 키보다 높게 쌓아 올려진 눈을 보면서 잠시 감탄한 뒤, 체크인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직원분에게 ‘눈이 제법 많이 내렸네요’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그분께선 ‘그래도 올해는 적게 오는 편인데요?’라고 하시더군요. …어메이징 홋카이도.


이후 안내받은 방에서 짐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료칸에서 준비해 준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홋카이도의 자연을 가득 품은 다양한 식재료와 신선한 해산물 등을 즐길 수 있었던 식사는 아주 만족스러웠죠.


그리고 기대하던 대망의 온천은…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뜨거운 노천온천에 들어가서, 머리 위로 떨어지는 눈을 맞으면서 즐기는 온천욕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탕 속에 들어가 있게 하는 마력이 있었습니다.


여행의 최종목적, 이것 하나만을 위해서 간다고 해도 아무 불만이 없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던 겨울 홋카이도 산속에서 즐기는 노천온천


그렇게 료칸에서의 즐거운 시간을 마친 뒤, 아침이 되어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려는 순간, 예상치 못한 문제가 저희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주차장에 대놨던 차량이 눈에 말 그대로 파묻혀 있었던 것이죠. 다행히 길은 그럭저럭 다닐만한 상황이었지만, 밤 사이 쏟아진 눈은 차를 완벽하게 뒤덮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일상다반사인지, 너무나 당연하게 제설용 삽과 빗자루들이 주자창 한켠에 준비되어 있더군요. 네, 자기 차량 위의 눈은 알아서 치워야 하는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이번 여행을 시작할 때 쌓여있는 눈을 보면서 ‘어차피 내가 치울 것도 아닌데’라면서 희희낙락했던 것을 후회하면서, 저는 제설장비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오만 욕을 하면서 차를 눈 속에서 파내기 시작했죠.


강원도에서 군생활 하던 시절 겪었던 트라우마가 되살아나는 느낌이 들었지만 어쩌겠습니까. 저 말고 할 사람도 없는 것을.


그런데 세상일 참 재미있는 것이, 나중에 Y양이 말하기를 저에게 ‘이 사람, 제법 괜찮을지도?’라고 생각했던 순간 중 하나가 바로 저 눈 속의 차량발굴작업(?)이었다고 하더군요. 익숙한 손놀림으로 제설삽과 빗자루를 사용하던 모습이 제법 믿음직해 보였다나뭐라나.


물론 Y양에게 점수를 딴 것은 매우 기쁜 일이었지만, 또 하고 싶지는 않은 일입니다.


그놈의 제설 작업으로 트라우마 생기는 건 군대에서 겪은 것만으로도 지긋지긋하니까요. 군필 남자분들이라면 제가 왜 이러는지 120% 공감하실 겁니다.


…상상만 해도 싫다… 진짜로…


-계속


지금도 눈이 오거나 내린 풍경은 아주 좋아합니다. 단, 제가 아주 따뜻하고 뽀송한 상태이고, 그 눈을 치울 필요가 없다는 전제 하에서 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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